깨진토기의 축복-요약 및 interaction paper
I. 서론
미완성 교향곡
우여 곡절 끝에 교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9월 26일까지 리포트를 작성하여 내기로 했다. 제출 기한을 10월 중순으로 알고 있던 나는 이 책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하나 필사를 해 가며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그 증거는 내 개인 카페인 다음포털의 “예림의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출 기일이 다음 주 수요일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교회 사역 일을 제외하면 단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겨우 2장 “창세기에서 야곱의 중요성: 야곱 이야기의 개관적 이해” 까지 정독을 마친 상태였다.
나는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 방법은 읽지 않은 부분 대충 읽고 포인트만 정리하여 그럴싸한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부분을 잘 정리하여 리포트를 내는 것이었다. 전자는 내 학문 철학 상 용납 할 수 없는 짜깁기 리포트였고, 후자는 미완성 리포트인 것이다. 교수님이 이런 미완성 리포트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원하신다면 차후에(아마도 학기가 끝날 즈음에) 완성된 리포트를 내고 싶다.
필사한 부분을 다시 정리하여 본문을 요약하고, 정독하는 동안 궁금증이나 의문점, 나의 생각들을 정리한 것들 중에 세 가지를 정리하여 interaction을 하려 한다. 그런데 interaction은 스승과 제자 간에 feedback이 이루어져야 온전해 진다. 이 리포트를 통하여 그러한 기쁨이 있기를 기대한다.
서문
필자는 개정판 서문과 초판 서문을 함께 실었다. 개정판 서문에는 이 책이 "야곱,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으로 출판되었던 책에 몇 개의 소논문을 추가하고, 교정을 좀 더 자세하게 봐서 새롭게 펴낸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이전의 제목으로 펴냈을 때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쉬움이 큰 것은 책의 제목이었다. 내러티브 이론을 공부하고, 또 그 책을 쓰는 내내 필자는 성경의 인물들이 현제 21세기를 살아나가는 우리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이라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아 왔다. 그래서 "야곱,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제목을 떠올렸을 때 참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교정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나의 글의 핵심이 조금 다른데 있으며, 그것이 나의 학술 연구와 저술 작업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우선 성경은 우리 인간이란 존재의 "타락의 큼"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슬픔 대신 화관을 쓰고, 재 대신 기쁨의 기름을 몸에 바를 수 있는 이유(사 61:3)는 하나님의 "구속의 큼" 역시 사실이라는 점이다. 나는 인간의 "타락의 큼"과 하나님의 "구속의 큼"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내러티브적 분석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전 책의 마지막 교정 단계에서 새로 떠올린 제목은 ‘깨진 토기의 축복’이었다.”
이어서 저자는 초판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배경과 이유, 그리고 첫 책을 있게한 많은 지인들에 대한 고마움의 뜻을 전하면 서문을 맺는다. 그의 서문을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이 책은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사용하였던 서사학이라는 방법론 중 특히 등장인물의 묘사방법에 대한 이론을 따로 떼어내어 야곱 이야기의 본문(창 25:19-35:2)에 적용해 본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서사학적 성경 분석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집필하고자 한다. 이 책은 그 중 첫 열매이다. 필자가 등장인물의 묘사방법에 대한 소개를 필자의 첫 번째 책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이런류의 책이 시급히, 그리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우는 학생들이 서사학이라는 이론을 좀 더 재미있게 배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한국에서 지난 수 년 간 강의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학생들은 서사학적으로 성경을 풀어나가는 강의를 좋아하고, 또 거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서사학 이론 자체를 가르칠 때면 학생들이 매우 어려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두 가지 반응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려는 의도에서 쓰였다. 학생들이 서사학 이론의 일부를 적용한 이 책을 일고 서사학 전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으면 한다.
부모님, 박필순 집사님과 정정자 권사님께, 아내 박서영과 세 아이에게, 사회복지법인 동명원 이사장이신 김화자 권사님에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출판국장 이신 천석봉 목사님과 현재 엘림교회의 담임목사이신 김상동 목사님에게, 엘림교회 성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은사이신 김정우 교수님께, 고 레이몬드 딜라드 교수님, 트렘프 롱맨 교수님, 고든 맥콘빌 교수님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들어가는 말
저자는 유명한 가수 밥 딜런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란 영화를 소개함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의 주장은 복잡다단한 인물을 한 명의 배우의 연기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처럼 한 사람의 일생을 한 가지로 정의한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1부의 바탕이 된 야곱 강의를 하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다. 야곱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얼굴들을 갖고 있는가?
저자는 성경 본문이 펼쳐 보이는 야곱의 이런 모습 속에는 흔히 사경회에서 부흥사들이 목에 핏줄을 세우면서 강조하는 얍복 강에서의 극적인 변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28장의 벧엘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이나 35장의 벧엘에서의 하나님과의 재회가 그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만들어주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야곱의 삶은 어느 한 가닥으로 정리하기 힘든 모습들을 많이 감추고 있다. 그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할 때마다 독자들은 이 야곱이란 인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야곱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속에서 드러난 야곱의 삶을 비현실적으로 단순화시키려고 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성경 이야기를 자신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길들이려고 하지만 길들여진 성경은 더 이상 성경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성경을 읽는 최선의 방법은 성경이 말해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해석하는 방법은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은 성경이 묘사하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각 부와 각 장 그리고 각 부의 부록의 의도와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1부의 2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을 통해서 나는 창세기 25:19-35:29에 나오는 야곱 및 기다 등장인물들을 이 서사학적인 등장인물의 묘사방법을 가지고 살펴볼 것이다. 우선 2장은 야곱이라는 인물의 중요성, 그리고 야곱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몇 가지 원칙들에 대해서 간략한 논의를 할 것이다. 그리고 3장으로부터 9장까지는 1장과 2장의 이론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해서 세부적인 본문에 대한 분석을 할 것이다. 1부의 부록인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들"은 야곱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인 "축복"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필수이기도 하지만 축복이란 주제 자체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2부인 "성경의 인물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의 글들은 내가 예전부터 창세기를 연구하면서 모아온 창세기 본문 자료들, 이미 발표한 글들 중에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보조 자료들, 그리고 위의 각 장의 내용 속에 집어넣기에는 한계가 있는 글들을 따로 모아 놓은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성경의 다른 본문들에도 내가 이 책에서 사용한 서사학적 등장인물 묘사방법 이론들을 적용함으로써 성경 등장인물들의 참모습을 잘 읽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힌다.
II. 본문 요약
1부. 야곱, 깨진 토기의 축복
1장.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방법들
내레이터가 자신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큰 범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범주는 "직접적 묘사방식"이며, 두 번째 범주는 "간접적 묘사 방식"이다. 흔히 이 용어들 대신에 "말해주기(telling)"과 "보여주기(showing)"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직접적 묘사 방식은 등장인물이 과연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 내레이터가 직접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내레이터가 등장인물의 성품에 대해서 직접 규정을 한다. 둘째, 내레이터의 직접적 묘사는 등장인물의 외모 등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외모에 대한 묘사는 보통 간접적 묘사방식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것을 직접적 묘사로 분류해야만 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셋째, 내레이터는 등장인물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규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묘사와 관련하여 다음의 몇 가지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예전의 이론서들은 간혹 구약이 "원시적 내러티브"에 속하며, 이러한 "원시적 내러티브"의 특징은 등장인물을 다루는데 있어서 주로 직접적 묘사방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에서 나온 주장이다. 둘째,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구약의 내러티브들 속에는 직접적 묘사방식이 여전히 등장하기도 한다. 구약이 이처럼 직접적 묘사방식을 드물게나마 사용하는 이유는 이 묘사방식이 가진 효율성 때문이다. 셋째. 직접적 묘사를 통해 언급된 등장인물의 특성들은 대부분 플롯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접적 묘사방식의 경우 내레이터는 등장인물의 외모, 장신구, 말, 행동 등 등장인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객관적으로 제공해 주는 역할만을 한다. 그리고 이 정보를 취합하여 해당 등장인물이 정말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임무는 독자들에게 남겨놓는다. 이 방식은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촉발시키기 때문에 독자의 시각에서는 훨씬 더 흥미롭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레이터가 등장인물의 성격에 대해서 명시적인 언급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확히 해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즉 간접적인 묘사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때로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이런 간접적인 묘사방식은 내러티브 저자의 창의성과 재능에 따라 무수히 많은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첫째, 등장인물의 외모 등의 외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는 주로 간접적 묘사방법에 해당된다. 하지만 앞에서 다룬 직접적 묘사방식의 두 번째 항목에서의 외모에 대한 묘사와 이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직접적 묘사방식의 외모 묘사는 독자의 주관에 따라 전혀 다른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 내레이터가 권위를 가지고 단언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간접적 묘사방식에서의 외모에 대한 언급은 객관적인 사항을 내레이터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제시하는 경우에 국한된다. 둘째, 등장인물들의 개인적인 소품들이나 기타 그들과 관련된 물건들 역시 등장인물의 속성에 대해서 간접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셋째, 등장인물의 이름 역시 등장인물의 속성을 나타내는데 일조할 수 있다. 넷째, 간접적인 묘사방식의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의 말투다. 다섯째, 등장인물의 동작, 몸짓, 버릇, 습성 등의 행동 역시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심중을 드러내주는 간접적인 증거로 작용할 수가 있다. 여섯째, 한 등장이물들이 다른 등장인물에 대해 내린 평가나 언급, 그리고 등장인물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내린 평가나 언급 역시 간접적 묘사에 해당된다. 일곱째, 등장인물의 성격은 다른 등장인물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당히 복잡한 간접적 묘사방법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간접적 묘사방법들은 큰 분량의 본문을 활용해서 인물묘사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앞의 방법들과는 차이가 난다. 첫 번째 방법이 소위 "내러티브 유비"란 것이다. 이것은 내러티브들 사이의 비슷한 점을 가지고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 "타입신((type scene)”역시 등장인물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를 위해 성경의 내레이터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타입신"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들이 각각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통해서 그 등장인물의 속성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이 더블 플롯은 관련 본문들 간의 거리상의 밀접성이 큰 만큼 그 기법의 세부사항들 역시 상당히 정교하다.
두 묘사 방식의 결합이 가능하다. 직접적 묘사 방식과 간접적 묘사 방식은 서로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레이터는 직접적 묘사방식과 간접적 묘사방식을 적절히 안배하여 양자가 서로 상응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이 등장인물에 대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 두 가지 묘사방식은 협력을 통해 등장인물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증진시킨다.
여기서 궁금증은 위에서 다룬 여러 가지 묘사방법들이 과연 등장인물의 성격에 대해 어느 정도나 확실한 정보를 제공해주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하위 단계의 확실성을 제공해 주는 것은 외모나 행동 등의 사항들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비록 등장인물의 어떤 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독자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추론할 여지를 남겨둔다. 중간 단계의 확실성을 제공해 주는 것은 등장인물 자신이 직접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한 말이나 또는 등장인물들이 그에 대하여 한 말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앞의 외모 등에 대한 정보보다는 확실성에 있어서 더 고급스러운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한 말들이 결코 모든 경우에 다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등장인물의 말은 그의 내면의 진실을 말해주기보다는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가 있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독백은 그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한 말보다는 더 확실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독자들은 그 등장인물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동기를 여전히 추측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최고의 단계는 내레이터가 등장인물의 태도, 감정, 성격, 동기 등에 대해서 제공해주는 진술들이다. 대체로 내레이터의 이러한 진술은 분명한 사실로 인식해도 된다. 그러나 때로는 등장인물의 태도, 감정, 성격 등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 내레이터는 그냥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해줄 뿐 동기나 원인 등에 대해서는 독자가 곱씹어 보아야 할 수수께끼로 남겨두는 경우들도 있다.
이처럼 내레이터가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정보들은 확실성의 정도에 있어서 각각 차이가 있다. 또한 이처럼 확실성의 정도가 다양한 정보들을 취합해서 내레이터가 정말 등장인물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고, 또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이해하는 몫은 독자에게 남겨져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오직 내레이터와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을 할 때에만 본문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독자가 수동적인 수용체의 역할만 할 때에는 독자가 어들 수 있는 것은 가공되지 않은 정보들의 무의미한 집합체일 뿐이다. 성경 본문, 그리고 내레이터는 독자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독자는 기억해야 한다.
2장. 창세기에서 야곱의 중요성 및 야곱 이야기의 개관적 이해
이 책에서 우리는 성경 내레이터들이 묘사하는 등장인물들 가운데 야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볼 것이다. 우선적으로 야곱이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는 본문에 대한 이해를 잘 해야 한다. 본문의 구성 및 속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야곱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왜 야곱인가? 성경 내러티브의 등장인물의 묘사방법들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야곱만큼 적절한 대상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과 더불어 구약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본문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과 더불어 구약에서 가장 다채로운 성격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야곱과 다윗 이 둘은 구약의 인물들 중 모세를 제외하고는 가장 방대한 분량의 본문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모세는 이 둘과 달리 그의 인생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이자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좀 정형화된 모습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모습은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방법의 연구대상으로는 부적절하다. 반면에 다윗과 야곱은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퇴장하는 순간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중에서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야곱은 다윗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분량 면에서도 야곱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분석방법의 샘플로 다루기에 적절해 보인다. 이렇게 볼 때 구약의 등장인물 중 이 책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야곱이라고 생각된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중요성을 설명해 본다. 창세기 11:27-50:26까지의 본문을 아브라함부터 요셉에까지 각 인물의 등장과 죽음을 기준으로 해서 나누어보면 그 구조를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각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본문 상으로, 그리고 연대기 상으로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있다.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들 속에서 두드러진 인물은 단연코 아브라함과 야곱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야곱이 아브라함보다 더 중요성을 띤다. 반면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과 자기 아들 야곱 사이에 끼어서 존재감이 상당히 작다. 요셉의 경우 그가 등장하는 본문은 이삭보다 상대적으로 길기는 하지만 그의 삶은 야곱의 삶과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겹친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관찰사항들을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브라함의 죽음(25:1-18)은 야곱의 탄생(25:19-26)과 아예 맞닿아 있다. 따라서 이삭이 독자적으로 활동한 순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내러티브상으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야곱과 요셉의 경우 37-50장에서 이 둘의 활약상은 상당 부분 겹친다. 사실 요셉만이 무대 위에서 독자적인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것은 38-41장 정도다. 나머지 장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 야곱이 무대 위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그는 42장에서 재등장한 이후 창세기 50장 전반부까지, 즉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거의 계속해서 등장한다. 따라서 그는 25-50장까지 창세기의 절반이 넘는 장들 속에서 거의 계속해서 주인공, 혹은 중요인물로서 등장한다. 셋째, 창세기 37-50장의 소위 요셉의 이야기 속에서도 언뜻 보면 주인공이 요셉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그는 야곱과 열두 아들들이 애굽 고센에 안착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데 있어서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일 뿐이다. 넷째, 플롯의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창세기 이후의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사람은 야곱이다. 그가 낳은 열두 명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장들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요셉이라는 인물이 독자적인 중요성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종속된 인물이라는 점은 그와 그의 아버지 야곱의 죽음 기사를 통해서 확인된다. 여섯째, 창세기에서 그 중요성을 견주어보면 야곱에게 유일하게 필적할 만한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본문의 분량에 있어서는 그도 역시 야곱에게 밀린다.
본 책에서 다루는 야곱 이야기의 범위는 25:19-35:29까지 만으로 하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25:19-35:29는 야곱이라는 인물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까닭에 한 인물의 다양한 모습에 비추어서 성경 내레이터가 제시해주는 등장인물의 묘사방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좀 더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필자의 생각에서 볼 때25:19-35:29의 본문이 성경 내레이터의 등장인물의 묘사방법을 좀 더 집약적으로 모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분석의 깊이와 효율성을 생각할 때 25:1-50:14에 이르는 본문은 너무 방대하다. 이 방대한 본문을 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도의 세밀함으로 모두 다루고자 한다면 독자들은 흥미를 느끼기보다 오히려 부담을 느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본문을 제한하기로 한다.
야곱의 이야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야곱 이야기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항상 엄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사항은 야곱 이야기의 플롯의 뼈대를 제공해주고, 각 에피소드들의 존재 이유 및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창세기의 본문에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창세기 전체, 그리고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항상 축복이란 주제가 들어있다. 셋째, 그러나 축복이 족장들의 죄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면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축복이란 주제의 이면에는 인과응보란 주제가 깔려있다. 물론 모든 축복의 이야기에 인과응보란 주제가 기계적으로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과응보 역시 축복처럼 족장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III. interaction
야곱은 다중인격?
야곱의 일생을 통하여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비록 똑 같지는 않지만 많은 변화와 풍파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은 나로 하여금 야곱에게 연민을 느낄 정도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야곱의 성격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가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이 출생에서부터 그의 성격을 결정짓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먼저 출생하고자(장자가 되고자) 리브가의 배 속에서부터 싸우는 사건이다. 이때에 벌써 야곱은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패배의 쓴 경험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이다. 그들이 어머니 배 속에서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야곱의 태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의 삶 속에서 다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는 저자가 말한 대로 변화무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인격적으로도 매우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야곱은 형 에서를 꾀어서 장자권을 빼앗았고,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으며, 삼촌 라반에게도 거짓말과 속임수를 삶의 무기로 삼고 살았던 인물이다. 더구나 그는 아내를 넷씩이나 두었다. 당시 풍습이 그렇다곤 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결혼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 아닐까? 심지어 야곱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의 고민은 이 모든 야곱의 불합리한 생애가 하나님의 섭리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형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았을 때 하나님은 기뻐 하셨을까? 어머니의 부추김에 편승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채는 것을 하나님은 왜 묵인하셨을까?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더구나 이렇게 불의한 자를 왜 하나님은 끝까지 보호하시며, 책임지시고,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으셨을까? 마지막으로, 그가 4명의 아내를 두어 12명의 아들과 더하여 딸을 낳았는데 그를 과연 선하시고, 신실하시고, 거룩하시고, 공의의 하나님께서 오히려 벌하지 않으시고, 축복하시는가?
배운 바에 따르면 이렇게 자격도 없고 오히려 형벌을 받아 마땅한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은혜를 드러내기 위하여 이러한 역사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셨다는 것이다. 이 말이 정답일지는 모르나 그러나 반대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택정 안에 속해만 있다면, 나의 삶은 아무러치도 않다는 말인가? 물론, 저자는 2장 끝에서 “인과응보”의 원리를 들어 하나님의 섭리의 의문성을 방어하고 있다. 야곱의 잘못된 삶은 그의 생애 가운데서, 그리고 그의 자손들의 삶 가운데서 그 보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논제로 넘어가보자.
자신의 죄를 전가시킨다?
저자는 2부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축복이 족장들의 죄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면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축복이란 주제의 이면에는 인과응보란 주제가 깔려있다. 물론 모든 축복의 이야기에 인과응보란 주제가 기계적으로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과응보 역시 축복처럼 족장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주장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저자는 부연 설명에서 야곱의 죄로 인하여 그의 가족과 그의 후손들에게 까지 하나님의 징계가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각자의 축복과 저주는 각자의 신앙의 태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필자가 말하는 “인과응보”의 원리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 주변의 인물들 예를 들어 아버지 아삭, 그의 형인 에서 그의 네 명의 아내들, 그의 12자식들의 축복과 저주는 그들 각자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부모의 영향이 환경적으로 그의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본인의 죄를 타인(자식에 까지도) 전가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을 살펴 볼 때, 모범적인 인생을 산 후손에게서 패역한 인생이 나올 수 있으며, 망나니 같은 삶은 산 조상 아래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물을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인과응보란 주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염소를 들었는데, 이것은 너무나 억지스러운 감이 있다. 인과응보란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야곱이 염소 새끼의 가죽을 재료로 썼다고 해서 그의 후손들에게 염소와 연간 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 다는 것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일종의 “나비효과”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염소라는 짐승은 그 시대에 목축업을 하는 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귀한 제산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그 털을 이용한 속임수로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이었고, 요셉의 형들은 숫염소의 피를 뭍인 것이고 유다는 염소새끼로 그의 담보를 되찾으려 한 것이었다. 나는 저자의 인과응보는 동의하지만 그 예를 든 염소 이야기는 부자연스럽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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