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최신구약개론 요약(시편~옐미야애가서)

예림의집 2013. 3. 18. 20:40

<시 편>

 

역사적 배경 구약의 시편의 역사적 배경은 첫째, 단일 저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모음집, 둘째, 개별적인 시들 그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루기가 어렵다. 시편은 150개의 개별적인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편은 한 번에 쓰인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로부터 포로시대 이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쓰였다(대략 일천년). 이 책의 역사적인 배경은 다시 전체로서의 이 책 및 이 책의 부분 부분인 개별적인 시들이 구약의 전 시대 동안 가지각색의 가능성에 열려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복잡해진다. 또한 개별적인 시들은 정경 시대 중에 갱신작업(updating)을 받았다. 개별적인 시들조차도 정경 시대 중에 열려 있었거나 동적이었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시들을 어느 한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키는 것이 시들 자체의 의도와 어긋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시들은 역사적인 내용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시편들이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계속적으로 사용되는데 있어서 기여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개별적인 시들의 모호한 역사적 배경을 재구성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회적 배경 시편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 시가 구약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편이 더 낫다. 시편은 “고대 이스라엘의 찬양집”으로서의 기능을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 증거는 이 시들 자체의 내용들로부터 나온다. 어떤 시들은 직접적인 진술을 통해 시편의 예배적 배경을 증거하고 있다(시 5:7; 66:). 또한 시편과 현대의 찬송가 사이의 유사성을 볼 때 이해에 도움이 된다. 시편의 시들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반응들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역사서들이 시편의 시들의 용도에 대해서 약간의 단서들을 제공해 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사무엘 상 2장의 한나의 기도, 요나서 2자의 요나의 노래). 결론적으로 시편은 고대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대중 예배의 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문학적인 분석

①장르: 시편은 하나의 모음집이다. 150개의 시들을 일곱 개의 장르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 장르들은 책 속에서 전혀 조직적이거나 연대기적으로 배열되어 있지가 않다. 전반적으로 무계획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곱 개의 장르로는 ①찬양시(hymn) ②애가(lament) ③감사시(thanksgivings) ④확신의 시(Psalm of Confidence) ⑤회상시(Psalm of Remembrance) ⑥지혜시(Wisdom) ⑦제왕시(Kingship Psalm) 이다.

②시편의 구조: 우리가 알고 있는 시편은 150개의 독립된 시로 이루어졌다. 그 중 현재 나누어져 있는 몇 개의 시가 실제로는 하나의 시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있다(시편 9편과 10편, 42편과 43편). 학자들은 현재의 시편에 들어있는 시들의 순서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견해들을 제시했지만 그 어느 것도 설득력이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시편은 정경이 만들어지던 시대 동안에는 개방되어 잇고 동적인 책이었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시들은 일천 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첨가되었다. 때로는 일군의 시들이 한 번에 시편에 더해지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편의 시들을 배열하는 가장 통상적인 방법은 저작권이다. 고라 자손의시(시편 42-49), 아삽의 시(시편 50, 73-83), 다윗의 노래 등이 그 예이다. 두 번째 방법은 제의적인 기능에 근거한 것이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시편 120-134편), 하나님을 우주의 왕으로 선포(시편 93, 95-99편) 등이다. 시편은 다섯 개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하나의 송영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 거기에 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에 차이가 있다. 제 1권은 여호와의 이름을 선호(여호와 272, 엘로힘 15)하고 있으며, 제 2권은 엘로힘 선호(여호와 74, 엘로힘 207)하고 있다. 다섯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유는 오경이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왜 이 책들이 현재 나뉘어져 있는 부분에서 나뉘어져 있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학적인 메시지 시편의 신학적인 메시지에 대한 논의 또한 다음 두 가지 점 때문에 어렵다. 첫째, 150개의 독립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조직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고, 둘째, 이 시들이 하나님께 노래로 드린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중들이 하나님께 아뢴 말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편이 정경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시편의 이 말씀들 역시 인간의 중개를 통해서 주어졌다.

①언약적 기도서: 구약과 시편의 초점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다.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적 표현들(목자, 용사, 아버지, 어머니, 왕, 남편)을 통해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나누시는 관계의 특정 측면들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언약이 이러한 관계를 표현해 주는 가장 포괄적인 이미지이다. 시편 기자는 자신을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을 때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다고 인식한다.

②시편의 논변적인 기능: 시편의 시들은 그 당대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직면한 중요한 위험은 우상 숭배이다. 시편은 고대 근동의 종교로부터의 무차별적인 차용이 아니라 오히려 의도적이고 논변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대 근동의 실존 않는 신들보다 뛰어나신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증진시키고자 한다.

③신약으로의 접근: 누가복음 24장 44절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편에 대해 언급하신다. 신약의 기자들은 예수님과 시편 사이의 이러한 연결점을 인식했다. 신약에 많은 부분이 시편에서 인용되었다. 신약의 저자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편을 인용했다. 그러나 시편이 좁은 의미에서의 예언은 아니다. 시편은 시편 기자와 예수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시편에서 고대되었다. 또한, 신약 시각 속에서의 시편은 예수의 노래들로, 그의 영화로움을 나타내주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불릴 수 있다. 또한 현대의 기독교인들의 고난의 표현으로서 기도로 드려진다.

 

<잠 언>

 

어떠한 면에서 잠언서는 구약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구원의 행위나 언약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깊이 연구할 때 얼마나 심오하고 신학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적 배경 잠언서는 각기 다른 시대의 저자들이 각기 다른 시대에 쓴 수많은 문헌들의 모음집이다. 그 각각의 부분들은 그 자체의 저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표제들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지혜 있는 자, 아굴, 르무엘 왕, 솔로몬 등이 지혜서의 원천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책속에 솔로몬의 이름에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다. 솔로몬이 공헌한 부분은 10:1-22와 25:1-9:27에 국한 된다.

잠언서는 모음집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쳐서 쓰였다. 그러나 익명으로 된 부분들도 있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저자들도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 책이 쓰였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솔로몬과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 작업에 의한 부분만이 확실한 기반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이 책의 다른 부분의 연대를 단지 상대적으로라도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학적인 분석 잠언서는 뚜렷한 윤곽을 갖고 있는 책이다. 잠언 1-9장과 10-31장을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지혜 강화들을 담고 있고, 후반부는 짧고, 핵심을 찌르는 경구들로 이루어져 있다. 최종적인 편집자는 독자들에게 각 부분의 서두에 표제 등의 구분선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것들을 통해서 잠언서가 실제로 하나의 모음집인 것을 파악할 수 있다. ①머리말(1:1-7) ②지혜에 대한 긴 강화(1:8-9:18) ③솔로몬의 잠언들(10:1-22:16; 25:1-29:27) ④지혜자의 잠언들(22:17-24:34) ⑤아굴의 잠언들(30장) ⑥르무엘 왕의 잠언들(31:1-9) ⑦현숙한 여인에 대한 시(31: 10-31)

 

내용 분석

①머리말(1:1-7): 머리말은 첫째, 이 책 전체의 표제를 제공해 주다(1:1). 둘째, 이 책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혀준다(2-6절). 셋째, 이 책의 토대를 밝혀준다. 이 머리말의 저자에 따르면, 관계가 윤리를 앞선다.

②지혜에 대한 긴 강화(1:8-9:18): 이 책의 뒷부분은 경구라는 전형적인 잠언 형식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처음 아홉 장은 좀 더 긴 형태의 잠언들을 담고 있다. 강화는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첫째, 어떤 선생이 자기 아들(제자들)을 가르치는 형식이나 의인화된 지혜가 가신에 대해 외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강화들은 10장 이후에 따라 나오는 잠언들에 종교적인 토대를 제공해 준다.

③솔로몬의 잠언들: 두 개의 표제(10:1; 25:1)가 이 본문의 잠언들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밝히고 있다. 거의 전부 짧은 이행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때때로 확대된 형태의 지혜에 대한 명상이 들어 있기도 하다. 대조평행법이 특히 많이 등장하여, 동일한 진리를 두 가지 반대의 시각에서 밝혀준다. 이 양식의 사용은 잠언의 중심 주제들 중의 하나, 즉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대비라는 주제와 잘 들어맞는다.

④지혜 있는 자들의 말씀들(22:17-24:34): 이 부분은 독자들이 “지혜자의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하고 있는 22:17에 의해서 분명하게 구분되어진고, 그 다음 부분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25:1)에 의해서 끝이 난다. 이 부분은 “이것들도 또한 지혜 있는 자들의 말씀이라(2:23)”은 설 명구를 중심으로 두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민감성(22:22-23), 부의 덧없음(23:4-5), 음탕한 여자를 피할 것(23:26-28), 게으른 사람에 대한 비웃음(24:30-34) 등 솔로몬의 잠언들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⑤아굴의 잠언들(30장); 르무엘 왕의 잠언들(31:1-9); 현숙한 여인에 대한 시(31:10-31) 잠언서는 세 개의 비교적 짧고 독립적인 부분으로 끝을 맺고 있다. 아굴의 잠언은 번역하고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회의적인 어조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호소를 함으로써 해결된다. 르우엘 왕의 잠언들은 사실상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전수된 것이다. 왕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가 하는 것에 관심인 반면에 현숙한 여인에 대한 강한 인상의 알파벳 두운시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여인은 잠언 8장의 지혜 여인과 연관이 있다. 히브리 성경에서 룻기와 잠언서와 아가서의 배열은 의도적인 것이다. 이 세 책은 남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능력 있는 적극적 여성 인물들을 제시하고 있다.

 

신학적인 메시지 잠언서는 하나님이나 구속사나 언약에 대해서 명백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잠언들은 삶에 대한 좋고 실제적인 충고들이거나 삶에 대한 통찰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잠언 9장에서 지혜는 이미 이 책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존재가 된다. 지혜는 하나님과 자신의 간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속성 및 목적에 대해서 상고했다. 지혜와 우매를 의인화 시켜 대조하고 있다. 9장을 지나면 개별적인 잠언들이 실제로 얼마나 깊이 신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지혜와 우매 사이의 선택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 이상의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된다.

 

신약으로의 접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잠언서를 “금언(金言)”들의 모음집으로 생각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성경 상담학”의 자료집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개별적인 잠언들은 반드시 전체 책의 맥락 속에서, 그리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 속에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개별적 잠언들을 정경적인 배경에서 떼어내서 좋은 조언들을 얻기 위해 책을 뒤지는 식의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신약의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를 육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혜는 신약에서 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이다.

 

<전 도 서>

 

역사적 배경: 저작 연대 및 저작권의 문제

①전통적 견해: 이 책의 중심적인 화자에 대한 밀접한 연구로부터 시작된다. 코헬렛(Qohelet 전도자)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익명이다. 이 이름의 어근이 되는 동사는 “불러 모으다(assemble)”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불러 모으는 사람”으로 직역할 수 있다. 코헬렛이 솔로몬의 별명임을 보여주는 단서들은 첫째, 그의 이름의 어근 둘째, 코헬렛 자신이 스스로를 왕이자 다윗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있다(1:1-2). 솔로몬을 코헬렛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보고, 그 저작 연대를 주전 10세기로 보는 견해이다.

②비평학적 견해: 대부분의 비형학자들은 이 책을 이스라엘 역사상 후기의 것이라고 본다. 그 중요한 논거는 언어와 문체이다. 전도서의 어휘와 구문법을 후기 히브리어 및 아람어와 비교하고 난 이후에 어떤 학자들은 이 책의 연대를 아주 후대로 잡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레데릭스에 의하여 이러한 근거들은 설득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주 이른 시기의 성경 본문의 전승과정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으므로 그 전승과정에서 언어를 각 시대에 맞게 개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한 방법으로 코헬렛의 언어와 헬라 사상 사이의 유사성을 보이고자 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모호하다.

③대안적 견해: 이 책에 들어있는 두 가지 다른 목소리를 다 고려하는 해석을 택하게 되면 이런 식의 가설이 필요 없어진다. 이 책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코헬렛이 솔로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다른 단서들이 눈에 띈다(1:16; 1:12). 이 책의 배경 또한 솔로몬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비참과 허무의 시대(1:2-11), 솔로몬 시대의 영광이 사라짐(1:12-2:26), 이스라엘에 죽음의 시대가 시작됨(3:1-15), 불의와 폭력이 현존하고 있으며(4:1-3), 이방인에 의한 폭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5:7, 9-19),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8:9) 하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공정하고 자연스럽게 해석할 때 그 안에 두 개의 목소리, 즉 코헬렛과 두 번째 지혜자의 목소리가 들어 있으며, 후자가 이 책의 내용을 통괄하는 내러티브의 목소리다. 코헬렛이 아닌 제2의 화자가 이 책의 저자이고, 구약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문학적인 분석

①구조: 전도서는 프롤로그(1:1-11), 코헬렛의 긴 독백(1:12-12:8), 간략한 에필로그(12:8-14)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코헬렛을 삼인칭으로 언급하는 것에 의해서 이 책의 본문과 구분되어 있으며, 양자가 합쳐서 코헬렛의 연설을 둘러싸고 있다. 코헬렛의 연설은 삶의 의미에 대한 자서전적인 반추로 이루어져 있다. 코헬렛의 생각이 어떤 자세한 흐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고대 근동의 자서전 전승들 가운데 잘 알려져 있는 문구로 시작하여, 문학 속에서 가상화된 솔로몬이라는 인물을 활용하고(1:13-2:26), 연설의 두 번째 부분으로의 전환점 속에서 일종의 약술의 역할을 하는 내용(6:10-12)이 들어 있다. 그리고 결론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12:1-7)로 끝을 맺는다.

②장르: 성경이나 고대 근동의 문헌들 중에는 전도서와 정확하게 같은 형태의 문헌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도서에 나오는 질문들과 비슷한 질문들이 고대 근동의 다른 문헌에 나오기는 한다.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와 그리스의 고대 문헌들도 코헬렛의 연설과 비슷한 사고방식 및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전도서를 테두리를 가진 액자 형 자서전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신학적인 메시지 잠언서의 가르침과 코헬렛의 가르침을 비교해 보면, 전도서는 충격적인 책이다. 잠언은 지혜와 많은 수의 가족과 장수에 대해서 찬양하는 반면, 코헬렛은 허무하며, 의아하다. 전도서에는 많은 후렴구가 나오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것으로써, 코헬렛의 연설을 앞뒤로 감싸고 있다. 이 책의 정경성에 대한 고대의 논의를 촉발시키고, 해석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는 강한 허무주의적 색체이다. 전통적인 접근 방법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에필로그에 호소함으로써 두 번째 질문에 대답을 한다. 에필로그는 우상 숭배를 회개한 솔로모니 자신의 불경건한 시절의 방황들을 회고하면서 내린 결론들이다. 그가 하나님을 떠났던 과거(해아래 살던 때)에는 삶이 무의미했지만, 그러나 마지막을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12:13).”라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코헬렛의 연설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들과 비교해 볼 때 모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통적이고 회의주의적인 가르침들은 솔로몬이 반항적이던 시절의 것들이며, 따라서 정통적인 신학이 아니다. 우리는 문학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전도서에서 두 가지의 목소리, 즉 코헬렛과 익명의 지혜 선생의 두 가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익명의 지혜 선생은 프롤로그를 통해 이 책을 소개하며, 에필로그 속에서 코헬렛에 대한 평가를 제공한다. 코헬렛은 의심이 많고, 회의적인 반면에 익명의 화자는 정통적이며, 이 책 속의 긍정적인 가르침들의 원천이다. 이 책의 두 번째 저자이자 내재적 저자는 간략한 표현들을 사용해서 구약의 메시지를 요약해 준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순종과 미래의 심판에 대한 바른 이해로 초대한다.

 

신약으로의 접근 전도서는 신약에서 전혀 인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서 8:18-22에 이 책의 메시지가 암시되어 있다. 여기서 “허무”라는 단어는 “헛됨”을 말한다. 코헬렛은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의 빛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세상에 대한 평가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절망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코헬렛은 하나님의 존재는 믿으면서도 그의 사랑과 관심은 의심했다(5:1-7). 그 결과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코헬렛의 메시지는 이 책이 전달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코헬렛이 겪었던 허무와 헛됨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 예수는 지혜, 수고, 사랑, 삶의 의미를 회복시키셨다.

 

<아 가 서>

 

이 책의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혀졌다. 이 책은 성적인 내용을 뚜렷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문학적인 분석

①장르: 이 책의 해석의 역사와 관련해서 두 가지 주제가 장르의 문제와 관련해서 다루어진다. 첫째, 이 책은 희곡인가, 아니면 일련의 사랑의 시인가? 둘째, 이 책이 알레고리인가 하는 것이다.

희곡이라고 보여 지는 이유는 현대의 많은 아가서 번역본들이 난외 여백에 화자가 누구인지를 명시해 줌으로써 이 책을 희곡으로 해석하는 견해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자의 표시가 원문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표시해 주기 위해 이것들을 이탤릭체로 표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시들은 이 책을 희곡으로 해석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주의 깊게 연구를 해 보면 이러한 희곡적인 접근 방법은 이러한 화자에 대한 표시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명료한 것이 아니다. 희곡적인 접근방법을 지지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등장인물을 두 명으로 보는 입장과 세 명으로 보는 입장이 존재한다.

사랑의 시로 보는 견해는 아가서와 고대 및 현대의 사랑의 시 사이의 유사성을 추적한 비교적 최근의 연구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아 왔다. 아가서가 사랑의 시들을 느슨하게 연결시켜 놓은 모음집이라는 것이 점점 더 의견의 일치를 얻어가고 있다. 사랑의 시로 보는 견해의 약점은 이 책 속에 꼭 서른한 개의 시가 있다는 것을 확정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가서는 결국 노래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하나의 노래(a Song of Song)이다. 아가서 안에는 많은 시들(노래들)이 있다.

②알레고리적인 해석의 문제: 알레고리는 최근까지도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이 책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주도적이고 거의 독보적인 방법이었다. 유대인 학자들은 이 책이 여호와와 이스라엘 간의 사랑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해석했으며,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책이 메시야주의적인 것이며,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엡 5:22-33). 이른 시기의 기독교의 해석 역시 알레고리적이다.

알레고지적인 접근 방법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것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에는 이 책의 성애적 표현들을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하도록 해주는 단서들이 전혀 없다. 단지 그 시대의 문화적인 선입견에 의해서 본문의 원래의 의미에 대해 편견을 갖게 했으며, 그 결과 아가서를 성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영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들었다. 아가서는 인간의 경험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는 시이기 때문에 성경의 지혜 문학의 또 하나의 예임이 분명하다. 잠언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언약 관계나 그 독특한 역사, 혹은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언급도 잘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정경적인 맥락에서 해석할 때 이 책은 성이라는 인간의 중요한 경험 영역에 대한 신적인 통찰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남녀 간의 강렬한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이 시는 결혼한 사이를 전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역사적 배경 저작권과 저작연대의 문제는 지금까지 미루어져 왔다. 아가서가 하나의 통일된 내러티브가 아니라 노래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시편과 같이 다른 시대의 다른 저자들로부터 나온 시들의 모음집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열어 놓는다. 저작권과 관련해 솔로몬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의 애매한 표제를 저작권에 대한 하나의 교조주의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에는 이 문제를 확실하게 확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제에 대한 신중하고 가장 좋은 가설은 잠언처럼 이 책에 나오는 시들 중 다는 아니지만 그 중 몇 개가 솔로몬의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신학적인 메시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간의 성적인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의 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가서는 성에 대한 타락을 고쳐주는 정경서이다. 이 책은 성이 선하고 유쾌한 것임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준다. 결혼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은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대부분의 본문은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서 찬미한다. 현실의 삶 속에서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문제들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시들(5:2-6:3)은 사랑이 기쁨만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가서는 정경상의 성교과서 이상의 것이다. 이 책은 성에 대한 성경신학적인 연구에 기여를 하고 있다. 동산에서의 성관계는 우리들에게 에덴동산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아가서를 볼 때 우리는 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동산에서 있지만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d 책이 주로 인간의 성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또한 우리들에게 우리와 하나님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결혼이라는 이미지는 구약에서 아주 잘 사용되고 있는 비유적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결혼 언약과 아주 유사한 관계를 자기 백성들과 맺으셨다. 이 관계는 이스라엘에게 배타적인 충성을 약속해 주는 것과 아울러 그러한 배타적인 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반항해서 행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와 이혼하려고 했다.

 

신약으로의 접근 신약은 아가서의 이러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에베소서 5:22-23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예수와 교회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가르친다. 결혼 관계속의 친밀성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성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아가서가 원래 인간의 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배격하지 않는 한 아가서를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관계에 대한 시로 읽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 사 야 서>

 

이사야서는 구약의 책들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광휘가 있는 책이다. 신약의 저자들이 예수 및 교회의 성격에 대해 논할 때 이사야서에서 자주 의존했기 때문에 이 책은 기독교의 성경 해석사 속에서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주전 8세기 말과 7세기 초에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의 저작이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비평학자들에 의해 최소한 두 명 혹은 세 명 이상의 저자의 산물이라고 보는 견해의 도전을 받았다.

 

역사적 배경

①저작권 문제:

전통적인 접근 방법 아모스의 아들(1:1), 8세기의 선지자, 히스기야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이사야가 이 책 전체의 저자라고 보았다. 이사야는 적어도 산헤립의 사망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생존했다(37:38).

비평학적 접근 방법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비평학자들은 이사야의 통일성을 의문시하기 시작했으며, 이 책을 40장의 처음 부분을 기준으로 해서 그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분리시켰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와 제2 이사야를 구분 짓기 시작했다. 이사야서 40-46장이 다른 저자의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첫째, 역사적 상황. 둘째, 신학적인 차이. 셋째, 언어 및 문제에 근거한다.

전통주의의 대응 비록 소수이기는 했지만 유대교와 기독교의 많은 학자들은 이 책의 통일성을 옹호하는 견해를 견지했다. 그들은 이 비평적으로 일치된 견해가 기초하고 있는 개별적인 논거들을 논박하고, 이 책을 묶어주는 공통된 주제와 어휘를 제시하며, 포로기 이전 시대의 다른 선지자들이 이사야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그 견해를 약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성경의 무오성과 무흠성을 주장하는 복음주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또한 이 책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속하며, 이 책 전체가 이사야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말하고 있는 신약의 언급들 역시 중요함을 주장하였다.

②시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거민이었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주전 740 6:1)에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했으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시대까지 그 사역을 계속했다(1:1). 비곡 이 책의 표제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가 산헤립의 죽음을 기록한 것을 보았을 때 아마 므낫세의 치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주전 696-642). 그는 어떤 여자 선지자에게 장가들었으며, 최소한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7:3; 8:3). 그는 웃시야의 치세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사람이다(대하 26:22). 그는 앗시리아 제국이 세력을 얻어가던 시기에 살았다.

 

신학적인 메시지

①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서의 하나님: 이스라엘이 처음에 국가로서 부름을 받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명하신 바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4-45)”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인 사명이 실현된 적이 없었다. 이 백성이 여호와의 도덕적인 완결성을 무시하고서 무사할 수는 없었다.

②구원자이자 구속자로서의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성은 또한 그분께서 자신의 약속들에 충실하실 것을 의미했다. 그는 이 백성을 많은 열방 강국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③남은 자 사상: 이사야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자 구원자이며 구속자로 그리고 있는데 그 결과는 남은 자 사상으로 표현된다. 남은 자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재난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인류 혹은 하나님의 백성이 계속 보존되어지는 데에 있어서 중심핵이 된다.

④여호와의 종: 이사야서 40-66장의 종의 노래들은 하나의 집합으로, 혹은 개별적인 노래들로 간주되어 왔다. 이사야서의 종은 국가 이스라엘을 뛰어넘는다. 이 종은 한 개인으로, 그는 한 여인에게서 날 것이며, 백성 가운데서 뛰어난 자가 되고, 야곱 족속을 회복시키고,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할 것이다(44:2; 46:3; 49:1)

⑤여호와의 신: 선지서들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능하게 하는 영이다. 하나님의 신은 지혜와 총명을 준다(11:2). 하나님의 신에 기름부음을 받은 여호와의 종은 좋은 소식을 선포함으로 반응을 한다(61:1). 이사야에서의 하나님의 신은 혼란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다(1:2).

⑥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구분하는 기준중 하나는 선지자의 말이 성취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기준의 전제는 자신의 계획들을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도들이 성취되도록 역사의 과정을 지배하신다는 생각이다.

 

문학적 분석 이 책의 첫 부분은 주로 이스라엘에 임박한 심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1-12장). 두 번째는 이방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초점을 맞춘 신탁들이 길게 나온다(13-35장).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미래의 축복을 기술하는데 할당되어 있다(40-66장).

 

신약으로의 접근 신약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자주 이사야에게 의존했다. 세계요한, 예수의 동정녀 탄생, 사람들의 마음의 완고성 등이 그것이다. 예수는 이사야의 고난 받은 종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동일시는 그가 배척당하고 고난을 당한 점과 그의 치유의 이적들에 의해서 설명된다. 또한 이방들에 대한 예수의 선교의 근거가 된다(9:1-2; 마 4:13-16). 예수께서 유명해 지는 것을 피하신 점과 이사야의 소명 당시의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예수님의 영광이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는 성경해석에서 특별히 중요한 책 이상의 것이다. 이 책은 장엄함과 광휘를 가진 책이다.

 

<예 레 미 야 서>

 

예레미야서는 선지서들 중에서 가장 큰 책이며, 소위 십이 소선지서들을 합친 것보다 더 길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약의 인물들 중 가장 파악하기 쉬운 사람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 풍부한 역사적, 전기적 자료들을 갖고 있으며, 선지자 자신이 스스로의 성격을 자신의 수많은 기도들 속에서 드러내 주고 있다.

 

역사적 배경

①정치적인 상황: 예레미야는 앗시리아 제국의 멸망 후 유다가 주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인 야만의 부활과 격랑 속에서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그 격동의 시절을 목도하였다. 예레미야서는 국수주의, 편집증, 친바벨론계와 친이집트계의 갈등, 유다의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투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 속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②선지자 자신: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는 요시야 13년(주전 627/26년; 렘 1:2)에 그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때로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그가 이집트로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41:16-44:30). 예레미야가 이집트에서 죽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의 사망 연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통적으로 그가 주전 627년(요시야 13년)에 열두 살 정도 되었을 때에 부름을 받았다. 예레미야가 언제부터 공개적인 사역을 시작했느냐 하는 것에 대한 논쟁들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③역사비평학적인 접근 방법들: 본문이 두서없이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데 이 책의 상당 부분의 역사적 배격에 대해서는 의견이 매우 다양하다. 본문은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지 않으며, 어떤 일관된 구도를 따르는 것 같지도 않다. 역사비평학계에서의 예레미야서에 대한 논의는 인간 예레미야와 그의 이름을 가진 책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④예레미야서의 사본: 예레미야서는 하등비평(사본비평)과 고등비평(역사비평, 문헌비평)의 관심사항들이 교차되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이다. 70인경은 짧고 본문의 순서도 다르게 배열하고 있다. 쿰란의 제4 동굴에서는 세 개의 예레미야서 사본의 단편들이 발견되었다. 예레미야서의 두 판본 사이의 차이는 통상적인 사본 전승 상의 실수들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학적 분석 예레미야서의 문제들 중이 하나는 이 책의 본문이 알기 쉬운 배열순서나 구조를 보여주고 있지 않으며, 최소한 전체의 일관성 있는 구조조차 주석가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책 내의 작은 단위의 모음집들의 경우는 주제에 따른 배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예레미야서는 이러한 작은 단위의 모음집들을 모아놓음으로써 만들어진 “책들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다른 문헌 모음집들도 이 책에서 발견된다. 이 세 개의 대규모 모음집 사이에는 두 개의 문헌이 들어 있다. 이것들은 대개 예레미야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전기적 성격의 내러티브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문헌들은 연대기적인 순서로 배열되어 있지는 않다. 다른 소규모의 문헌들은 어떤 특정한 주제나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또한 다수의 상징적인 행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의 설교자들처럼 이스라엘의 선지자들도 자신들의 설교에 이야기들을 사용하였다.

 

신학적인 메시지

①예레미야의 하나님: 예레미야가 자신의 가르침을 전통적인 조직 신학적 표제나 범주로 정리한 적이 없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서 절대적인 주권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그는 우주를 창조하셨고, 또한 피조물에게서 손을 거두시고, 세상에 심판을 행하심으로써 세상이 다시 태초의 혼돈으로 돌아가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셨다.

②백성과 언약: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었다. 그는 자기 나라가 가진 독특한 지위를 묘사하기 위해 많은 은유적 표현들을 사용했다. 첫 열매, 참 조자, 귀한 포도나무, 신부, 양 무리, 포도원, 산업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나라였다.

③예레미야 안의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는 하늘의 왕의 사신이었다. 자신이 모세로부터 이어지는 선지자들의 반열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1:9; 신18:18). 예레미야의 말들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들과 같은 효력과 힘을 갖고 있었다.

④예레미야와 모세: 예레미야서에 신명기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 이외에도 예레미야란 사람 자체가 일종의 “제2의 모세”로 그려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에도 두셨다(1:9).

⑤미래를 향한 소망: 자기 사촌의 밭을 구입한 행동은 유다가 예로살렘으로 귀환할 것을 보여준다(32:6-15). 비록 포로생활의 기간이 짧지 않고 길기는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아직도 은혜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외쳤다. 돌판에 새겨진 율법 대신 하나님은 자신의 율법을 마음속에 새기실 것이다.

 

신약으로의 접근 예레미야서는 신약의 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신약에 나오는 약 사십 개의 직접적인 인용구들 중에서 대부분은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해서 계시록에 나온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예수께서는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 및 성전의 임박한 멸망에 대해서 통렬한 선포를 하셨다(7:1-15). 스데반은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을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예레미야의 비난을 반복했다(6:19; 행 7:51). 바울은 예레미야가 토기장의 집을 방문한 것으로부터 이방인을 향한 자신의 소명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한 가르침을 삼았다(렘 18장; 롬 9:20-24).

 

<애 가 서>

 

주전 587년의 물리적, 심리적, 영적 황폐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일은 성전이 불에 타고, 그 소중한 성물들이 노략을 당한 일일 것이다. 이 순간의 처절한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애가서이다. 이 책은 대량학살 사건의 배후의 힘은 바빌로니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표현한다.

 

역사적 배경

①저자와 연대: 애가서는 익명의 책이다. 고대 전승에 의하면 그 저자는 예레미야이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다. 애가서는 정경의 세 번째 부분인 성문서에 포함되어 있고, 예레미야서는 두 번째 부분인 선지서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헬라어 구약 성경은 첫째, 애가서를 예레미야서 바로 다음의 위치, 즉 에스겔서 바로 앞에 위치에 배열하였고, 둘째, 애가서에 다음 구절을 더하였다. “예레미야가 앉아서 예루살렘에 대해 애가서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이 예레미야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생각을 버린 학자들은 다수 저작설을 받아들였다. 폰데어 하르트는 이 책이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여호야긴에 의해 쓰였다고 주장하였다.

②시대: 이 책은 주전 587년 바빌로니아인들의 손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포로시대의 책이다. 포로시대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하나님과 치른 긴 투쟁의 절정이었다. 멸망을 향한 마지막 추락은 609년의 요시야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문학적 분석

①장르: 에르만 궁켈은 애가서는 몇 가지 형태의 장르가 혼합된 문헌이다. 장송곡, 개인적인 애가, 공동체 애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어조나 내용이나 구조 등의 모든 요소들은 이 책이 공동체 애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에 부여된 여러 가지 칭호들을 볼 때 공동체 애가임을 증명한다.

②메소포타미아의 애가들: 애가란 장르는 이스라엘에게만 독특한 것은 아니다. 그 중 애가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메르어의 에메살이란 방언으로 쓰인 여섯 개의 성읍에 대한 여섯 개의 애가이다. 수메르와 우르의 멸망에 대한 애가, 우르의 멸망에 대한 애가, 에리두의 멸망에 대한 애가, 니푸르의 멸망에 대한 애가, 우룩의 멸망에 대한 애가, 에키마르의 멸망에 대한 애가 등이 그것이다. 이 여섯 개의 애가는 이 도시들의 군사적인 패배를 슬퍼하며, 외국 군대들의 공격 행위들이 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는 등 여러 가지 많은 주제들에 있어서 성경의 애가서와 공유하는 점들이 많다.

③구조: 이 책은 이 책의 다섯 장과 상응하는 다섯 부분으로 깨끗이 나누어진다. 또한 이 책의 구조는 다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책의 문학적인 장치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을 통일성 있는 것으로 일게도 하며(구심력), 또한 개별적인 부분들에 주목하게 만들기도 한다(원심력). 이 기법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알파벳 두운시적인 양식이다. 왜 이런 알파벳 두운시의 형태를 사용했느냐 하는 것은 확실치 않다. 기억을 돕기 위해서 또는 주제의 완결성을 주기 위해서라는 등의 추측이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감정적 표현으로 인하여 가장 흥미로운 요소를 제공한다.

④문체: 애가서의 시적인 문체는 여러 가지 양상을 띠고 있다. 세 가지의 자주 반복되는 특징들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키나로 애가서는 그 나름의 독특한 보법을 띠고 있다. 둘째, 의인법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집단적인 것으로 만들고, 국가 전체를 한 개인의 측면에서 표현했다. 셋째, 언어를 통한 사역으로 애가서의 표현이 멸망에 대한 묘사를 넘어서는 것으로써 애가서의 저자의 목적은 단지 사건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치료자가 되는 것이다.

신학적인 메시지 애가서는 욥기가 개인적인 고난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집단적인 고난의 문제를 붙들고 있다. 애가의 신학적인 목적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그분으로 하여금 자기 백성을 위해 개입하시며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 주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애가서에는 수많은 신학적 전통들이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 적용하고 있는 바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약 전통과 용사로서의 하나님이란 전통이다. 언약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신명기적 언약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백성의 죄 때문에 임하는 이 시판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서 계신다.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은 바빌로니아인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특히 용사로서의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애가서의 신학적인 메시지는 전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또한 희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책에서 최소한의 중요성만을 갖고 있다. 3:22-23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이 과거에 죄를 범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며,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신약으로의 접근 애가서는 하나님을 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기 백성의 죄 때문에 자기 백성을 대적하고 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악의 세력들을 십자가에서 깨뜨리시고(골 2:13-15), 미래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모든 인간 적들 및 영적인 적들과 마지막 전투를 벌이실 용사로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원수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원수인 사탄에 대항해서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용사로서 하나님이시다. 포로 시대 당시의 이스라엘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 그 죄는 그 자신의 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죄이다. 교회는 이러한 유비(類比)를 일찍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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