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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개신교의 기원은?

예림의집 2012. 5. 9. 07:19

한국개신교의 기원은?

 

한국교회의 시작은 조선 민중의 주체적 요구에 따른 수용인가 아니면 서구 선교사들에 의한 수동적 전래인가. 미묘한 사관(史觀)의 차이는 민족적 주체성을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는가의 문제와 직결되며, 결국 한국교회의 시초를 규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즉 1885년으로 알려진 한국교회의 기원을 10년 이상 당길 수 있는 문제다.

한국교회발전연구원(이사장 이영훈 목사)은 지난 22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 개신교의 기원,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연규홍(한신대) 교수는 수용적 입장에서, 이종전(대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전래적 입장에서 발제했다.

연 교수는 언더우드 입국 이전에 신자가 된 이들이 있었기에 선교사들은 입국과 동시에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의 출발을 10년 이상 앞으로 당길 수 있는 것이다.

연 교수는 “한국근대사 속 민중은 갑오농민전쟁과 동학운동으로 해방열망과 역사변혁 의지를 표출했지만 좌절되고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종교운동을 강력히 요구하게 됐다”면서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개신교는 조정의 정치적 통제가 미치지 않았던 만주 땅에 수용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 결과 1876년 존 로스와 맥킨타이어 선교사는 중국어 성경을 읽고 기독교 신자가 되고자 하는 4명의 한국청년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다”면서 “당시 한국 개신교 초대교회의 설립은 한국 민중의 주체적인 복음수용과 한글 성서를 매개로 한 자발적인 전도활동, 일부 개화파 인사들을 통한 근대화 교육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 교수는 “따라서 초기 선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입국 이전에 자생적으로 형성된 신앙공동체를 복음적으로 지도하는 것과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 민족 계몽과 근대화를 지원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교수는 ‘전래가 없는 수용은 없다’는 전제 아래 수용자에 의한 선택이 있을지라도 내용, 즉 복음은 전달자에 의하기 때문에 한국기독교의 시작을 1885년으로 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수용자가 중심이 되어 신앙과 교회가 형성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선교사의 신앙이나 선교하는 교회의 입장을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수용자가 복음의 성격이나 내용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전래냐 수용이냐 하는 절대적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해석과 서술에 있어 소외와 왜곡이 동반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면서 “수용 후 배교나 거부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수용 이전에 전래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초기 역사를 해석하는 데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1885년 4월5일 선교사들이 입국한 시점을 한국교회의 출발점으로 보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따라서 입국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래의 역사 또는 접촉사, 준비과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예림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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