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설교의 위기
1.들어가는 말
한국의 교회에 설교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설교를 듣는 회중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설교자의 선포는 "과연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 인가?" 하는 의문
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설교의 현장을 직시하고 위기의 요소를 되물어
보는 것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설교라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시키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사실 수세기 동안 설교와 설교자들은 늘 공격을 받아왔다. 오늘날 그 공세는 더욱더 빈번해져서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다. 심지어 설교의 전성기는 이제 끝났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오늘 한국교회의 설교현장과 그 위기요소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설교에 대한 의식구조를 살펴본 뒤 이상적 설교사역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설교의 사역론은 필자의 고백처럼 산발적으로 발표한 글을 한곳에 모은 책이다. 그러나 이책은 설교사역자들에게 필요한 설교사역의 기초적인 이론을 제시하며 설교사역에 대한 역사와 그 실상을 보게 하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게된다.
사역론은 18권으로 엮어져있고 부록으로 설교의 주제에 대한 이해와 그 실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제1,4,5,9,10,11,권을 읽고 긍정적인 차원과 비평적인 차원을 나누어 생각해보고 미래의 설교 사역에 도움을 받고자 한다.
저자는 제1권에서 설교 사역자가 알아야 할 미래의 실상과 그 길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한국의 신학생들의 소명에 대한 우려와 새로운 다짐을 요구할것을 바라고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의 성직자가 생각해야할 2000년대와 이상적인 교육자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교수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교수님의 글을 통해서도 강단에서 말씀하시는 교수님과 똑같은 정열과 후배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한국교회의 관심과 애정을 볼수있다.
특히 1권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일어나고 있는 교회의 정체 현상과 구름때처럼 몰려오는 목사 지망생들의 우려, 성장 위주로 교회의 성장에만 몰두하고 현실 안주를 추구하는 교회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가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야할 문제이다.
1권 3장에서 필자는 뚜렷한 역사의식과 자료등을 통하여 한국교회를 진단하고 미래의 나아갈길을 밝히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직자가 되기전 장성찰과 이상적인 목회자상을 제시하므로 설교학에서 뿐 아니라 목회을 준비하는 누구나가 꼭 깊이 생각해야하고 시급한 이시대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여 지적하고 있으며, 설교를 준비하기전 우리에게 기본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참으로 소중한 권이였다.
이상적인 목회자가 되는 길은 첫째, 목사라는 성직은 근본적으로 섬김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둘째, 이상적인 목사의 상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셋째, 이상적인 목회의 상은 자신을 완전히 도구화하는 것이다.
넷째, 이상적인 목회의 상은 순교의 의미를 가슴에 안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권에서 필자는 세상적인 자료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부분이 아쉽다. 목사 지망생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통일과 세계선교를 준비하는 한국 교회의 비젼을 제시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한국 설교의 현장과 위기 요소들
평생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었는데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설교의 근본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바를 알리는 것인데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몇 안되는 것은 어떻게 된 셈인가? 또한 설교의 목적이 결단을 낳게 하고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데 왜 우리는 그런 결단이 열매들을 볼수가 없는가? 오늘날 우리의 설교위기 문제는 숙련된 설교자들에 의해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설교의 내용을 충실히 하든 안하든 달라지는게 없다.
우리의 셜교현장에서 설교의 위기를 초래케 하는 그 원인이 무엇인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우리의 강단이 이토록 흔들리고 있는 것인지 깊은 생각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우리의 초기 설교자들이 가지고 있던 설교자로서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상당수에 이르는 설교자들이 자신의 전체를 던져 하나님이 오늘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를 찾아 들을려는 뜨거운 열심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설교집을 뒤적거리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잡아 강단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음성으로 말의 기교를 부리는 습관화된 모습이 보인다. 말씀과 자신이 화신적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이러한 비극적 현상은 설교의 상실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사연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우리의 설교에서 말씀의 주인이신 성삼위 하나님은 보이질 않고 설교자가 너무나 튀어나 보이는 기현상이 발생되고 있다.
셋째는, 이상과 같은 결과는 자연적으로 강단을 인언의 장으로 만들게 되고 거기서 설교자는 부담없이 자신의 경험담이나 끝없이 엮어지는 예화의 진열장으로 설교사역을 탈선시키는 슬픈 현상을 보게 된다.
넷째는,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말이나 고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설교자들에게 있다. 이것은 오늘의 설교에 대한 불평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 상호의사 전달의 실패이다.
다섯째, 오늘날의 설교는 대개 싫증이 나고, 지루하며,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틸리케는 "우리의 설교가 이제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닿지 않고 있으며 선명하지 못하고 지겹기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중요한 원인들이 어디에 있든지간에,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자기의 삶에 연관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요즈음 설교는 과감한 설교가 못 된다는 것이다. 이문제는 오늘의 설교가 삶의 현장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문제점을 확대한 것같이 생각될 수도 있다. 그 메시지가 때로는 고무적이고 위로의 성격을 띠기도 해야 되겠지만, 때로는 도전적이고 심령을 뒤집어 엎는 설교를 해야 될 때도 있어야 한다. 항상 도전적인 설교만 하거나 늘 위로의 설교만 하면 이것은 복음을 왜곡시키는 셈이 된다.
일곱째, 오늘의 설교는 상호전달이 안된다. 설교가 전하려고 하는 내용이 아주 빈약하게 전달되고 있다. 교회와 설교는 현대 사회와 의미있게 상호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심한 비판을 받고 있다.
여덟째, 오늘의 설교는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설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크리스챤이 되게 하는 독특한 힘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교회에 가는가?) 한 교회의 행동이 설교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과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성실성의 위기")
아홉째, "이제가지 설교가 너무 강조되어 왔다" 요즈음 복음을 전하는 데 잇어서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방법들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제는 더이상 설교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한국강단의 위기요소들
* 외부환경이 주는 위기요소
①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과중한 설교의 양
:일주일에 최소한 3편 이상의 설교의 횟수와 1년이면 156회,10년이면 1560편의
설교의 횟수는 역사상 아무리 위대한 설교가라고 할지라도 이만한 분량을 남기
지는 못한 것을 볼수 있다.
② 과중한 목회일로 인한 준비의 부족
:목사의 역할은 한가지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말씀의 선포자
로서 ,말씀을 가르쳐 바른 길로 인도하는 교사로서,교인들의 문제점을 들어주고 길을 쁹아주 는 상담가로서,교회의 제반행정을 조직하고 이끌어가는 행정가로서의 많은 일
을 하다보면 25분의 설교에 25시간의 설교준비라는 많은 준비가 실상은 어렵게
된 것이다.
*설교자체의 위기요소
① 본문을 떠난 설교
:설교자는 하나님말씀의 봉사자가 되어야 하지, 말씀의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설교자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충실하게 해석해 주고, 그들의
삶에 적용해 주는 봉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② 설교자가 성서의 중심멧세지를 잘못 전한다.
:설교자가 성서의 해석과 바른 신학적인 이해가 없이 말씀을 선포하게 될때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설교자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설교자는 성서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③ 설교의 멧세지가 기복중심적으로 흐르고 있다.
:설교는 하나님의 뜻의 선포이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아 그분의 풍성하심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
간이 미쳐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행치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엄한 질책이
있다는 사실도 선포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 말씀의 선포에는 백성들을 싸
매는 제사장적 기능과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예언자적인 기능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제사장적인 축복과 치유의 말씀만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꾸짖고 책망하시는 예언자적인 음성은 소홀히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④ 설교의 내용이 교인들의 구체적인 삶과는 멀다.
:설교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설교는 말씀을 듣는
자들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그들의 삶을 결단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
가 단지 성서의 진리만을 외칠때에는 성경의 말씀은 땅에 뿌리 박힘없이 공중에
뜬 나무와 같은 것이다.
⑤ 말씀앞에서 결단이나 변화보다 안일한 외침에 가깝다.
:설교의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의
촛점은 성도의 행동이 바꾸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안일하고 도피적이고 미사
여구만으로 설교가 채워질때 당연히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설교자자체의 위기요소
①설교자가 설교의 내용과는 다른 삶을 산다.
:주님의 가르침은 먼저 제자들에게 본을보여(Sample) 그대로 따라오게 하신 것
이다. 설교자가 말씀의 내용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때 그는 바리새인과 다름
없는 것이다. 주의 말씀대로 완전히 살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는
근사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교인들의 위기요소
①예언적이고 고통을 요구하는 설교를 거부하는 경향(물질주의)
:한국의 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요함이 찾아오자, 예전의 고통과 어려움을 쉽게
잊어버리고 주의길을 따라오라는 고통을 요구하는 설교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②예배에 전심으로 참여하는 정신의 부족
:설교를 들어주는 방관자적인 자세속에는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③설교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 부족
:능숙하고 힘있는 설교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설교자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
다. 회중들은 설교자의 설교를 최대한으로 경청하고 마음으로부터 응원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때 처음에는 미숙했지만 성장하는 설교자로서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3.평신도의 설교의식 구조
3.이상적 설교사역을 위한 제언
1.설교가 대화의 구조를 가짐
설교는 설교자와 회중과의 케뮤니케이션이라는 대화의 구조를 도입해서 일방통행
이 아니라 양방통행의 관계를 맺는 일이 좋다.
1 설교와 토의 의 모델
:주중 어느때를 택해서 설교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이시간에는 회중들이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 토의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2 설교 세미나
:다음주 설교하기로된 내용에 대해서 8-10명의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자신의
의견을 나누어서 설교자는 설교를 행할 때 교인들이 가지는 현실적인 긴장과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반대로 그런 설교는 교인들에게 도움을 준다
3 소그룹 활동
:소그룹운동을 통해서 그 그룹이 필요로 하는 설교의 내용을 설교자는 수집할
수 있는 것이다.
2.전달의 수단의 다양화
1 연극을 사용한 극적전달
: 교인들 중에서 몇사람을 뽑아내어 설교자가 해야할 내용을 각색하여 연극
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전달하고 설교자가 마지막으로 정리해 준다
2.말씀중심에서 예전중심으로 전환
: 예배의 분위기를 기쁨의 찬양을 중심으로 바꾸어서, 버렸던 예전회복운동
을 펼친다.
1.평신도의 의식구조 분석
:평신도 즉, 설교를 듣는 회중은 더이상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오늘날
설교사역의 위기를 논할때 설교자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설교의 파트너
인 회중들의 의식구조를 먼저 조사 분석을 한다. 이는 전국의 교회 주소록을
근거로 해서 3,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지역별 구성은 대도시46%,중소도시
이하가 54%였고 교육수준의 구성은 대재이상이 39.7% , 고졸이 29.5%, 그이하가
30.8%였다.
오늘의 설교가 너무 범람하여 옛날처럼 신선한 설교로서의 반응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이 보여주었던 설교자의 위상도 이제는 엣날과는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 "말씀의 종" "말씀의 사자" "말씀의 대언자"로 설교자를 이해하고 호칭했던 일들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한국 교회의 설교 현장을 좀더 중시해 볼때 우리는 심각한 문제들을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땅에 복음이 들어와 전파될 때의 메시지와 오늘의 메시지가 얼마나 심각할 만큼 거리감이 있는지를 뜻있는 성도들은 잘 느끼고 있다. 구원의 은총 앞에 어떻게 감사하고 어떻게 섬겨야 하며, 그리스도의 수난의 역사를 현재적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조명하고 실현대해 할 것인가를 외치더薥 메시지가 오늘의 강단에서는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수 있다. 이는 설교자에게만 아니라 설교를 듣는 회중에게도 그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예언적 설교의 현장에는 교인들이 모이지 않고 '축복의 성회' '신유의 성회'라는 간판이 달린 곳에 사람이 모인다는 사실은 하나의 실례이다. 회중들의 기복 위주의 취향에 따라주지 않는 설교자는 외면당하고 떠나주기를 바라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회중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설교 현장을 위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회중들이 서러교자를 설교와 연관시켜 어铽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하여 만들어지 11개의 설문과 그 결과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귀하는 설교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응답자들은 설교자를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인 동시에 인간이다"(65.9%),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이다"(26.0%), "존경하는 분이다"(5.2%), "모르겠다"(1.8%), "다만 한 인간일 뿐이다"(1.1%)순으로 대답하고 있다. 다라서 우리 교인들은 설교자를 "하나님의 사자" 또는 "하나님의 사자인 동시에 인가"으로 대부분이 응답하여 아직도 설교사역자가 하나님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있음을 볼 수있다.
2)-귀하는 설교자의 인격과 설교와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교자의 인걱과 설교는 일치해야 한다"(70.3%), "설교자의 인격이 설교 내용보다 중요하다"(16.7%), "설교자의 인격과 설교는 별개이다"(10.2%), "모르겠다"(2.8%)순으로 응답함으로서 설교자의 인격과 설교를 절대적으로 중요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귀하가 아는 설교자들에 대하여 생각할 때 설교와 삶의 연관성이 어떠하다도 보십니까?
"완전치는 못하지만 설교한 대로 살려고 노력한다"(80.2%) "설교한 대로 생활한다"(10.3%)에 높은 응답을 보임으로서 한국교회 설교자들이 적어도 설교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4)-설교자들의 설교시 복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교가운을 입고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57.1%)고 대답하여 설교자가 서러교시에 가운과 스톨을 착용하여 성직자로서의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5)-설교자의 음성과 설교의 상관관게는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소 상관이 있다"(53.4%), "음성이 설교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37.5%)순으로 응답함으로서(90.9%)는 설교자의 음성과 설교사역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6)-설교자의 제스쳐가 설교에 주는 영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연스런 제스쳐는 필요하다"(78.8%)고 함으로 적절한 제스쳐는 설교전달의 효과를 위하여 매우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고 있다.
7)-설교시 설교자의 원고와 단순 메모등의 유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드시 원고 작성을 완료후 설교해야 한다"(51.9%), "단순 메모 설교가 이해하기 쉽다"(23.9%)라고 응답하므로 설교를 원고화하고 그 원고를 메모로 정리하여 설교단에 서줄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8)-설교에 관한 회중의 반응에 설교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민감한 편이 좋다"(59.8%), "반드시 민감해야 한다"(19.1%)고 응답함으로서 대부분은 설교자가 회중의 반응에 관심을 갖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있다.
9)-설교의 내용중 기복사상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적당히 있어야 한다"(60.7%),"가급적 피해야 한다"(16.1%), "적을수록 좋다"(11.8%)라고 응답하므로서 기복사상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치 보다 적게 나타남을 보게 된다.
10)-설교중 예화 사용 빈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적절한 예화를 가끔식 사용하면 좋다"(73.%), "적절한 예화이면 많을 수록 좋다"(17.6%)로 93.1%가 설교에 있어서 예화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그 빈도에 있어서는 건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1)-설교 문장이 주어는 누구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77.3%), "설교자"(10.9%), "청중 또는 일반적인 것"(6.3%), "모르겠다"(3.4%), "아무 것이나 좋다"(2.1%)순으로 응답함으로 대부분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설교에 있어서 주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평신도들이 설교자를 어떻게 이해하며 그들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조사한 결과의 평가는 아직도 설교사역자와 회중과의 관계가 건실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새롭게 발견되어진 사실은 오늘의 평신도들이 과거처럼 설교에 대하여 무비판적이거나 맹종의 자세를 벗어나 설교자가 회중들이 반응을 소중히 여기면서 수준있는 설교를 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음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설교자를 선택받은 인간으로 하나님 말씀의 사자임을 절대수가 인정을 하면서 설교자의 모범된 인격과 설교가 일치하기를 바라고 있다.
4.이상적 설교사역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 설교의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의 설교현장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옛날처럼 목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목사의 독보적 시대가 지나가고 시간 경쟁과 정보와 오락등이 격렬해져서 목사 특유의 전문 분야까지도 그의 능력이 교인들에 의해 도전받고 잇다. 하지만 설교는 존속되어야 한다. 이에 이시대의 회중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설교를 위한 제언을 해 보고자 한다.
1)설교자를 위한 제언
첫째로, 설교자 자신에 대한 재인식이다. 즉 하나님으로 부터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세례 요한의 확고한 자세가 바로 오늘의 설교자의 자세가 되어야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음성과 인간의 호소를 듣는 귀와 경험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도록 해주는 사역자이기에 그에게는 하나님과 회중들을 모두 섬겨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인간성의 회복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 인간이 동의할 수 있고, 믿을 만하며, 안전하고, 그리고 성품과 교양과 양심이 있을 때 그 설득력은 더욱 강해진다고 말했다.
넷째는, 연속적 훈련의 필요성이다. 설교자의 낙후성은 게속적인 교육훈련의 결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시대를 보는 역사의식과 현실적 사회의 관심, 커뮤니케이션의 표현력과 기술, 예언자적 상상력과 분별력, 설교의 독창성과 창조적, 그리고 교회음악을 포함한 예술 전반의 이해 감각 등 허다한 과제들이 오늘의 설교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2)회중을 위한 제언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이론이 연구 발전됨에 따라 듣는 회중들의 책임이 설교의 사역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이론이 설교신학에서는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있다. 자신의 의미와 메시지의 의미가 만나는 지점을 향하여 노력하는 회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감격적 은혜가 발생되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강단을 향하여 매서운 비판적 눈만을 뜨고 있는 회중들에게는 소중한 메시지와의 만남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말해 준다.
또한 기복적인 설교는 따라가며 모이나 그렇지않고 교훈적인 설교는 너무도 딱딱하여 듣기를 거부하는 양상을 나타내는가 하면 죄를 지적하면서 바른 길을 촉구하는 예언적 설교자 앞에는 나타나기조차 하지 않는 매정스러운 인상을 본다. 이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이런 일들이 오늘의 설교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는 회중들의 눈에 벗어난 설교자가 되지않으려고 침묵을 지켜서는 안된다. 바른 길을 제시한 목자가 하나님의 뜻을 펴는 데 중요한 사역자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설교자들은 입을 모아 회중들의 도움과 참여를 외쳐야 한다.
첫째, 능동적인 참여의식의 발로이다. "설교를 들어주는 존재"로서 앉아 있는 방관자의 자세 속에서는 말씀과 자신과의 만남을 이룰 수 없다.
둘째, 이러한 능력적 참여는 말씀과는 만남을 이룩시켜 달라는 기도와 함께 믿음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말씀의 종을 위하여 한 마디의 기도도 올리지 못한 그릇에 소중한 만남이 담기어 지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기대치 않는 결실을 바라는 무리들이다.
셋째, 설교를 듣는 데 방해가 되는 선점적 사건들로부터 자시능 마음을 최대한 해방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넷째,설교자가 비록 복음의 선포에 미숙한 면이 많더라도 경멸하는 태도보다는 격려의 손길을 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구수한 대화에 고개를 들고 말씀의 전개에는 고개를 숙이는 태도는 삼가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회중들은 언제나 지나친 흥분을 삼가고 차분한 마음 속에서 그 말씀과 자신을 계속 연관시키는 경청을 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회중들은 설교자의 시간을 최대한 설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아주어야 하며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끝으로 오늘의 한국 교회는 너무 많은 설교를 주문하고 있다.
루터는 '설교란 설교자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듣는 사람에 의하여 이룩된다" 오늘의 히중들의 능동적이고 협조적인 참여는 언제나 훌륭한 설교의 전달을 받게 될 것이다.
5.맺는 말
선교백년의 역사 속에서 변질 되어진 한국 강단이 서서히 그 시련을 맞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설교자들가 회중들이 모두 긴급한 회복의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설교자와 회중들이 모두 나의 책임이라는 의식 속에 우리의 설교사역을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의 가장 중요한 일이 행해지는 것이 설교"(에밀 브루너)이기에 새롭게 전개되는 선교 2백년의 역사도 셩령의 도움속에 설교가 힘차게 역사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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