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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성격이 죽도록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예림의집 2011. 6. 26. 13:31

 

자기 성격이 죽도록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영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네틀 <성격의 탄생>(와이즈북, 2009)-부제:‘뇌과학,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성격의 모든 것’- 에 의하면 지난 20년간의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심리학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5개 성격 모델을 확정짓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 성격 모델 중 가장 포괄적이고 신뢰할 만한 유용한 분석 틀로 간주되는 이 성격요인 모델은 <빅 파이브>라고도 불린다. 인간의 성격은 외향성·신경성·성실성·친화성·개방성이라는 다섯 가지 특성으로 결정되며, 모든 사람은 이 다섯 가지로 성격 점수를 매길 수 있고, 이 점수를 알면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매우 간단한 설문으로도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책에는 설문이 나와 있다).

성격은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테면 남자나 여자 중 한 사람이라도 신경성 수치가 높은 경우 이혼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외향성과 친화성이 높아도 이혼할 가능성은 커진다. 성실성 수치가 낮은 경우 일찍 죽을 확률이 30%나 높다(악명 높은 유태인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는 일주일에 작은 페트병 한 병 분량의 물만을 주었다. 그런데 그 물을 가지고도 몸을 씻는 성실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존율은 탁월하게 높았다고 한다). 상식과는 달리 어린 시절 낙천적이고 사교적이었던 사람의 사망 가능성이 더 높다. 외향적인 사람이 낯선 사람과 우연한 섹스를 많이 한다. 중요한 점은 좋은 성격도 나쁜 성격도 없다는 것. 왜 그런지는 성격의 비밀에 관한 빅 파이브의 개념을 하나하나  이해해야만 풀어갈 수 있다.


●외향성 수치

외향성 수치가 높으면 말이 많으며 파티를 즐기고, 사람을 빨리 사귄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리라는 보증은 되지 못한다. 외향성이 높아도 친화성이 낮으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야망이 크고 높은 지위와 사회적 관심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돈도 잘 벌고 섹스 파트너의 수도 많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이 안는 리스크는 더욱 직접적이다.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버스 운전기사나 광부의 외향성 수치는 현저하게 높다. 당신의 아내나 남편이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물건을 예사로 사거나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사고를 친다면 당신은 당신보다 엄청나게 외향성 수치가 높은 사람과 결혼한 것이다.


●신경성 수치

살다보면 유난히 온갖 불운을 다 겪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신경성 수치가 높다. 신경성이란 화재경보기와 같다. 이는 우리 조상이 육식동물과 천재지변이라는 치명적 위협 속에서 획득한 매우 민감한 감정이다. 다소 근거 없는 걱정을 하는 편이 잡아 먹히거나 불에 타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법이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센서를 아주 민감하게 조절해놓은 화재경보기와 같다. 그들은 작은 새처럼 끊임없이 눈알을 굴리며 안절부절 못한다. 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인 뇌신경 전달물질인 세로토닌 유전자가 짧다.

신경성과 우울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경성 수치가 높으면 객관적으로 볼 때 총명하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자부심이 낮고 자아가 불안해 폭력적이거나 무능한 배우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자신의 가치에 만성적으로 회의하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더욱 쓴맛을 많이 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해 각종 성인병에 시달릴 위험을 자초한다.

신경성이야말로 좋은 점이라곤 없는 성격처럼 보인다. 그래도 부정적인 감정은 분명 존재 이유가 있다. 신경성 수치가 극도로 낮으면 육체적 고통과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 어린 나이에 죽고 만다.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등산가 집단을 조사해보니 이들의 신경성 수치는 현저하게 낮았다. 에베레스트 등반가의 사망률은 10%에 달한다. 등반가는 용감해 보이지만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는 무모한 이들이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 가운데는 ‘치유하기 위해’ 훌륭한 작가가 된 사람이 많은데 헤밍웨이도 그런 경우처럼 보인다.

 

●성실성 수치

절도충동을 억제치 못하는 유명인의 경우처럼 도박, 약물, 절도, 알콜 등등 중독자 유형의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성실성 수치가 낮은 경우이다. 우측 안와전두피질이라는 뇌의 일정 부분이 손상되거나 비활성화 반응을 보이면 대개 성실성 수치가 낮다.

이들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 행동을 알면서도 제어하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이다. 도박이나 알코올·약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뜻밖에도 마약중독자는 주사를 맞아도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약을 못 끊는 것은 통제 시스템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일수록 덜 성실하다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많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고수한다.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비교적 적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지키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일을 미루는 경향이 짙다. 흔히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 지성·지능이 높으리라 여기지만 연구에 따르면 이들의 관계는 다소 부정적이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덜 성실하다는 것이다.

성실하면 분명 각종 중독을 피하고 법을 지키며 사는 데 도움이 된다. 직장에서 성공하는 데도 유리하다. 그러나 성실성 수치가 높으면 강박성격장애를 겪을 수 있다. <성격의 탄생>에는 강박성격장애인 로널드라는 인물의 일상이 소개돼 있다. 로널드는 잠들기 전 코에 방취제를 뿌리고, 아스피린 두 알을 먹으며, 아파트를 깨끗이 정리하고, 윗몸일으키기를 서른다섯 번 한 뒤 사전 두 페이지를 읽는다. 그와 밤을 보내러 온 여자가 그의 신성한 방과 일상을 어지럽히는 것이 싫어서 섹스를 한 후에는 그녀를 집에서 내보내거나 거실에서 재우려고 한다. 결국 어떤 여자도 그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성실성 수치가 높은 여성은 너무 음식을 통제한 나머지 굶어 죽기도 한다. 혁명과 같은 격변기는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는 지옥이다. 환경이 예측 불가능하고 유동적일 때는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가진 사람처럼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유리하다. 혁명기에는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혁명 후에는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서 사자 사냥을 즐길 만큼 호방한 것으로 알려진 헤밍웨이는 사실은 지독한 겁쟁이였다고 한다.

  

●친화성 수치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와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인간이 침팬지 같은 다른 영장류와 또 다른 점은 주운 지갑을 돌려주거나,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한 레스토랑 테이블에 팁을 놓고 나오는 따위 친사회성, 혹은 초사회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침팬지에게도 타자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아주 초보 수준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이런 친화성에는 개인차가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물론 모두 사이코패스처럼 다른 사람에게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는 친화성뿐만 아니라 성실성·신경성 수치가 극도로 낮은 경우로 12만5000명 중 한 명꼴이다. 친화성 수치가 낮아도 훌륭한 시민으로 사는 사람은 많다.

친화성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일탈 행위이다. 침팬지는 다른 침팬지의 복지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우리 조상이 서로 어울리는 데 따른 보상은 크지만 추방당하는 데 따르는 비용은 매우 큰, 조그맣고 항구적인 집단에서 살았기 때문에 획득한 성격이란 설이 있지만 설일 뿐이다. 어쩌면 인간만이 서로 대량 학살을 일삼는 유일한 종이기 때문에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밝아지려면 사람들의 친화성 수치가 높아야겠지만 그것이 개인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니얼 네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심란하지만 익숙한 현상이다. 40대의 대기업 임원 4000명의 성격과 경력을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친화성이 높을수록 수입, 승진, 그리고 CEO가 되는 데 불리했다. 친화성이 낮을수록 경력이 화려했고, 높을수록 초라했다.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릴수록 출세를 못한다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은 문화에 상관없이 남편감의 덕목으로 친절함과 공감을 강조한다. 그래서 대니얼 네틀은 여성에게 화려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삶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개방성 수치

마지막으로 개방성은 인간의 성격 중 가장 신비로운 영역이다. 이 성격은 문화성 혹은 지성으로도 불리는데 대니얼 네틀은 개방성이란 말을 좋아한다. 이 개방성은 예술적인 능력, 그리고 독창적인 예술 작품과 관련이 있다. 개방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면서도 주기적으로 환청을 듣거나 특이한 믿음을 가진다. 저 우주의 중앙컴퓨터에 접속했다고 느낀다. 한마디로 접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시인이나 예술가 가운데는 창작에 몰두하다 보면 눈앞에 앞으로 쓰고자 하는 스토리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과 같은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이런 ‘독특한 경험’ 수치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비슷하다. 감정이나 동기와 같은 다른 증상군에서는 전혀 다르지만 독특한 경험 수준만 놓고 보면 정신분열증 환자나 다름없다. 개방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시인이나 예술가가 되는 경향이 짙다. 무당이나 주술사도 개방성 수치가 높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광범위한 연상을 한다는 것이다.

개방성이 증가하면 예술가로서 명성은 높아지겠지만 정신병적 장애를 겪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개방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를 훨씬 잘 풀어낸다. 척박하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는 개방성의 가치는 떨어진다. 풍요한 곳에서는 개방성 높은 사람의 번식 가능성이 높아진다. 개방성은 먹고살 만한 사회에서 높이 쳐주는 성격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안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대니얼 네틀은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재구성해보라고 권한다. 스스로 비하해왔던 자신의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관점을 바꿔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격을 표현하는 행동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가령 성실성 수치가 낮아 도박으로 돈을 탕진했다면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다른 좀 더 유익하고 자신의 낮은 성실성에 걸맞은 순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즉 충동성과 역동성이 필요한 직업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또한 매일 아침 억지로 정해진 일과를 하는 것과 같은 역방향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신경성 수치가 높아 고통스러운 이들에게는 운동, 요가, 명상, 인지행동요법,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복용과 같은 역방향 행동 전략이 유효하다.

중요한 점은 저주해야 할 성격도, 축복해야 할 성격도 없다는 것이다. 못 말리는 낮은 성실성은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바로 그 역동성과 같은 종류의 에너지일 수도 있다. 외향성과 개방성이 높으면 돈은 잘 벌겠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놓칠 수 있다. 친화성이 높으면 존경은 받겠지만 개인의 성취가 미미할 수 있다. 인간의 성격 분배는 공평하다.


*위 내용은 [시사인 133호]  문정우 woo@sisain.co.kr  [자기 성격이 죽도록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을 요약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