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각이 행복한 말을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믿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과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러나 실제로 말과 행동은 훨씬 미묘하고 변하기 쉬운 것입니다.
인간은 말과 행동으로 어렵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상태에 자신을 놓아둘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따지고 보면 말이나 행동에 의해 생겨납니다.
한 사람의 상황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드는 말의 마력은 정말 헤아릴 수도 없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은 생각의 발현입니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말은 긍정적이고 행복한 생각에서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예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생각이 행복한 말을 만듭니다.
또한, 그 행복한 말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거울에 비친 자아상
자기 자신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자아상을 지닌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정말 멋있고 호감이 가는 젊은이인데도 한 번도 자기 자신을 특별하거나 멋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청년이 여섯 살 어린아이었을 때의 일인데요.
어느 날 뒤뜰에서 아버지와 야구 연습을 하던 이 아이가 아버지가 던진 공을 놓치자 아버지로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두 번째 공도 놓치자,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야! 네 살짜리 여동생이 너보다 훨씬 잘 받겠다.”라고 고함을 질렀지요.
그날 이 아이는 자신을 바보천치라고 비난하면서 공 받기를 포기해 버립니다.
상처를 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 아이는 자라면서 공부를 잘해 1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자신이 모범생이거나 수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더욱이나 어려서부터 이미 비뚤어진 자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과 솔직하고 진솔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면서 그 상처의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랑받고 유익을 얻겠다는, 나의 이기심이 이 상처를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이 비뚤어진 자아상을 훌훌 떨쳐버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지닌 놀라운 특권일 것입니다.
이 특권을 마음껏 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칭찬과 비판
칭찬은 공개적으로, 비판은 개인적으로 해야한다.
칭찬은 말로, 비판은 글로 해야한다.
칭찬은 감성적으로, 비판은 이성적으로 하는게 좋다.
칭찬은 개론으로, 비판은 각론으로 해야한다.
칭찬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지만 비판은 자칫 상대의 감정이나 자존심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칭찬 많이 한다고 손해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호감 사서 이익을 볼 기회가 더 많다.
반면 남에게 하는 비판은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있다.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상대가 원치 않으면 비판이 비난으로 들릴 수 있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비판당하면 기분 좋을 사람 없다.
아무리 좋은 비판이라도 상대의 기분과 감정, 자존심이 고려 되지 않는 비판이라면 결코 좋은 비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칭찬과 아부를 구분 못해서는 안된다.
'볼 때마다 탄복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역시 사장님의 천재성은 탁월하십니다' 등은 칭찬이라기보다 아부에 가깝다.
아부는 한명의 아군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명의 적군을 만드는 격이 된다.
그리고 아부가 지나치면 한 명의 아군에게서도 정당한 평가를 못 받는다.
아랫사람에게 비판할 때는 칭찬과 비판, 격려를 순차적으로 하는 것도 노하우이다.
먼저 칭찬을 해서 상대의 마음을 여유 있게 만들어두고, 비판이나 지적할 얘기를 그다음에 건넨다.
그리고 마무리를 격려의 메시지로 끝내는 거다.
이렇게 하면 비판이 좀 더 진심 어린 메시지로 다가오기 쉽고, 상대의 자존심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정말 충고 하고 싶다면, 정말 비판하고 싶다면 한번으로 끝내라.
두 번하면 잔소리로 들릴 것이고, 세 번 하면 상대의 히스테리로 여겨질 것이다.
충고를 두 세 번 계속 하게 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욕심이자 상대에 대한 장악욕구이다.
상대와 동등하다고 생각하면 같은 충고를 반복하진 않는다.
상대가 나보다 약자이거나 낮아 보일 때 같은 충고를 집요하게 반복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칭찬은 감성적이어서 두루뭉술하게 해도 좋지만, 비판은 이성적이어서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업무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시에는 전문성을 갖추고 해야한다.
"자기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디 감히 비판을 하냐" 라는 반응이어선 곤란하다.
비판은 상대를 이성적으로 설득할 만큼 제대로 준비해서 해야만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것이 기껏 칭찬 하고도 상대에게 감사하단 얘기 못 듣고,
진심으로 비판하고서도 상대에게 욕먹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칭찬은 많이하고 비판은 대도록 하지 말라!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들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나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높이는데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질병이지요.
이 질병은 이기심이란 죄의 산물로써 모든 고통과 실패의 뿌리이며
이 질병을 지니게 되면 자기 스스로가 영혼의 문을 걸어 잠근 채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와 머물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교만의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익한 존재인지를 깨달은 겸손한 자는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자기 자신을 낮추고 포기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겠지요.
이를 위해서 ‘나 자신은 연약한 존재이며 하나님나라에 어울리는 선한 일들을 행할 수 없는 존재’임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겸손한 기도를 통해 자기 의지를 버리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겠지요.
이와는 달리 악은 종종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와서 온갖 술책을 동원해서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께 의존해서 그 악에 대적하면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악 속에 빠졌을 때에는 자신의 잘못을 즉시 받아들이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의도적으로 우리를 실족하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알게 하셔서 스스로를 낮추게 하시며
다른 사람에 의해 비난 받는 경험도 하게 하시지요.
그 같은 쓰라린 경험이 진정한 겸손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거미줄
거미는 줄을 칩니다.
기술이 보통이 아닙니다.
거미가 친 줄은 예술에 가깝습니다.
아침 일찍이 산책로를 따라 운동을 하다가 거미가 친 줄을 봅니다.
새벽에 내린 이슬방울이 초롱초롱 맺혀 있습니다.
진주보다 아름답습니다.
그 어떤 보석보다도 영롱합니다.
거미가 친 줄은 적당히 되는대로 친 줄이 아닙니다.
질서 정연 하며 법칙이 있습니다.
구성과 조화가 있습니다.
어느 예술가가 만든 작품보다 우수합니다.
어느 보석상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것 보다 아름답습니다.
거미줄은 손바닥 만한 크기로 치기도 하고 얼굴만큼의 넓이로도 쳐 놓습니다.
거미줄을 발견하는 비법도 체험했습니다.
거미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작은 거미들이 쳐 놓은 줄들은 들여다 보아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새벽에 이슬이 많이 내린 날이면 보이긴 하지만 보통의 관심으로는 지나치기 쉽습니다.
햇빛이 반짝여 주고, 얼굴을 땅 가까이 대고 유심히 살펴야 겨우 보입니다.
거미줄에 맺친 이슬은 아침 햇살이 비치면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분무기를 가지고 물을 뿌리면 신기하게도 거미줄이 나타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치 요술 거울이라도 비춘 듯 거미줄이 살아 올라 옵니다.
그 가늘고 가는 줄에 물방울이 맺히면서 살아 올라오는 것입니다.
아름답습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훔치고 싶도록 아름답고 영롱합니다.
물방울 하나 하나에는 주변의 아름다움을 모두 반영하고 있습니다.
거미줄은 분명 아름다우나 거미줄의 목적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물론 거미의 입장에서 보면 생계 수단이요, 삶의 방편일 것입니다.
어부로 친다면 그물은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어부가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것을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미줄의 목적이 아름답지 않는 것은 하나의 의미로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함정을 치고, 그것도 아름다워 보이도록 줄을 치고는 약한자가 걸려 들기를 바라는 의미에서의 생각입니다.
걸려 들기만 하면 온 몸을 칭칭 감아 조이고 내장을 다 파먹습니다.
거미의 삶의 방편입니다.
사람도 거미 같은 의미의 삶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만한 자가 남을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고 걸리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일부러 차에 뛰어 들어 보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함정을 파고 삶의 구석구석에서 거미처럼 기다랍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가 친 그물에 결국은 다시 걸리고 맙니다.
겸손이 망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합니다.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시편 140편 5절)."
믿음의 친구 사귀기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인생의 고귀한 동반자인 친구를 얻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또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친구를 사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그 친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 친구에게 찾아오는 고통과 기쁨의 순간에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깊은 우정을 지닌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조급함을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면서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관대함을 보여주는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이 모든 방법은 결국 상대방에게 나의 사랑을 전해주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친구 없이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격려와 칭찬보다는 늘 비판이 앞선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꼭 비판해야할 일이 있을 때라도
“그 사람의 연주는 비판하되 연주자는 칭찬하라”는 옛말을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친구를 사귀기 위한 마지막 네 번째 조건은 먼저 주님께 순종하면서 주님과 신실한 친구로 살아가는 기쁨을 소유하고
그 기쁨을 이웃 친구에게도 나누어주는 겁니다.
혹시 혼자만의 고독함 속에 자신을 숨긴 채 친구 사귀기를 포기했던 분이 계시다면
용기를 내어 그 밀폐된 혼자만의 공간으로부터 나오십시오.
그리고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의 통로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_ 디사이플스 5집
주님만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이 시간
그 어떤것도 끊을수 없는 사랑 찬양합니다
주의 사랑 날 감싸며 그의 생명 나를
살리셨네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만 나를
여전히 사랑하신다하네 주의 사랑
날 감싸며 그의 생명 나를 살리셨네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만 나를
여전히 사랑하신다 하네
'ε♡з예림의집으로ε♡з >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광복 목사가 말하는 성경적 1일2식과 건강 (0) | 2011.06.19 |
|---|---|
| 교파분열과 교회분열을 이해못하신다고요? (0) | 2011.06.19 |
| 페이스북 이메일이 활성화됐습니다 (0) | 2011.06.19 |
| 아름다움 사람들, 아름다운 이야기 120호 (0) | 2011.06.18 |
| [스크랩] 걸그룹 시크릿 식단 공개 "먹는 거라곤 채소와 과일 뿐" (0) | 2011.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