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아가 되는 법>
고등학교 친구 K는 행운아(幸運兒)다. 친구들끼리 게임을 하거나 내기를 하면 십중팔구 그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그렇다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그에게는 신기하리만치 행운이 잘 따라준다. 주식을 사면 주가가 오르고, 집을 사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 로또를 사면 최소한 4등 이상은 당첨이 되고, 함께 길거리를 가다가 돈이 떨어져 있으면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K다. 지난 달 모임에서 만났을 때는 백화점 경품이벤트에 당첨되어 100만 원짜리 상품권을 받았다고 자랑하여 깜짝 놀랐다. 내 경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종의 기적과 같은 일인데 K에게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요, 종종 일어나는 행운이다. 참 부러운 일이다.
반면에 나는 불운아(?)다. 친구들과 게임이나 내기를 하면 십중팔구 패배를 한다. 주식을 사면 주가가 떨어지고, 집을 사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 로또를 수십 회 사 봤어도 유일하게 5등에 한 번 당첨되었을 뿐 4등 이상은 꿈도 꿔보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길거리에서 주은 돈을 모두 합해 봐도 1만원이 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내가 스스로를 불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평생 단 한 번도 추첨에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으레 쓰는 말이 아니라 진실이 그렇다. 지금까지 책 한권, 볼펜 한 자루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하여 경품 추첨이 있을 때는 아예 마음을 비우고 관심조차 두지 않은 지 오래 전이다. 그동안 사업에 실패한 회수는 헤아리기도 민망할 정도다. 참 억울한 일이다.
도대체 행운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아직 거기에 대한 정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가만히 보면 인생은 행운과 불운 사이의 싸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운을 잡고 싶어 하며, 불운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어 한다. 고목생화(枯木生花)는 마른 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뜻으로, 곤궁한 처지의 사람이 행운을 만나 신기(神奇)하게도 잘 됨을 뜻하는 말이며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물에 뜬 나무를 만났다는 뜻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뜻밖의 행운(幸運)을 만나 어려움을 면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인생에서 실패와 역경의 고비마다 행운이 함께 해 준다면 성공과 승리는 한층 쉽게 얻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변에는 행운과 관련된 상징이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여신을 그리스 신화에서는 “튀케(Tyche)‘, 로마 신화에서는 "포르투나(Fortuna), 시칠리아 섬에서는 아가타(Agatha)라고 부른다. 나라마다 행운의 숫자가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3, 중국에서는 8, 서양에서는 7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숫자로 선호된다. 마스코트 [mascot]는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어 소중하게 간직하는 물건이나 사람을 의미하는데 네잎클로버는 대표적인 행운의 상징이다. 나폴레옹이 전쟁 도중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그것을 꺾기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머리 위로 총탄이 날아가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미국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영화 <상류사회>에 함께 출연한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2달러 지폐를 선물 받은 후 모나코의 왕비가 되자 2달러 역시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행운의 편지, 행운의 부적, 행운의 주문, 행운의 색, 행운의 열쇠 등 수많은 행운의 징표들이 존재하다. 서양 속담에는 '편자를 발견하면 행운이 온다'는 말이 있다. 말은 사람을 밟고 지나가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말편자는 액운을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상징물로 여겼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임신한 여성이 열쇠를 지니고 있으면 순산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리스인들은 우박과 싸라기눈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밭이나 과수원 주위에 열쇠를 매달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비과학적이고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일이지만 행운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 보면 차라리 숙연한 마음까지 일어나게 된다. 특히 아직까지도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행운의 편지를 보게 되거나, 행운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속옷을 도둑질하였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될 때면 안스러운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며칠 전, 대학교 동문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행사 막바지에 이르러 경품을 추첨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역시나 1등 경품인 금수저 부부세트를 추첨하니 제일 뒤쪽에 앉은 사람에게 행운이 돌아간다. 2등 경품 백화점 상품권을 추첨하니 이번에는 앞쪽에 앉은 사람중에 한 명이 당첨되었다. 신기하고 부러운 마음에 넋 놓고 구경하는데 갑자기 사회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등 경품 금수저 부부세트가 몇 개 더 남아 있습니다. 받고 싶은 분은 앞으로 나와서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소개해 주세요. 가장 멋진 내용으로 발표하는 세분에게 금수저를 드리겠습니다.”
300여명에 이르는 참석자 대부분이 선뜻 나서지 않는 가운데 서너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한 번 나가 볼까? 그러면 내게도 행운이 돌아올까?” 짧은 순간의 갈등을 마치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 날 나는 금수저 부부세트를 손에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내 생애 최초로 당첨된 경품이라는 사실과 함께 내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행운을 잡았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고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나는 “금수저”라는 행운의 마스코트를 지니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행운을 차지하고, 점점 더 행운아가 될 것이다.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운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라고 강력한 목소리로 주장할 자신은 없다. 다만 아동교육학자 로렌스 굴드의 “인생에 있어서 기회가 적은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을 볼 줄 아는 눈과, 붙잡을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기까지 기회는 잠자코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생각을 대신하고자 한다. 내 경우를 보면 금수저라는 행운이 자기 발로 나를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내가 금수저라는 행운에게 다가가 붙잡은 것이다. 만약 다른 300여명의 사람처럼 앞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거나 포기했다면 나 역시 생애 최초의 행운을 거머쥐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행운이라는 파랑새를 잡고 싶기 위해서도 반드시 행운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운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더 많은 운을 갖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꿔 이야기하고 싶다.“나는 행운아가 아니다. 그렇지만 더 많이 노력할수록 행운아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행운아가 되고 싶다면 행운아가 되기 위해 힘껏 노력하라.
마지막으로 그 날 발표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옮겨 적는다. 그냥 웃고 넘기시라.
“저는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는 모임에서 경품 이벤트를 하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아내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1년 3월 1일
푸른고래(양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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