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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봄맞이 특별호 "칼럼집 모음"

예림의집 2011. 3. 5. 13:12

예림의집 봄맞이 특별호 "칼럼집 모음"

★ 새학기를 시작하는 예림의집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겸손의 넉넉한 그릇

 

교만은 다양한 ...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풍요롭게 합니다
다양한 지식보다는 겸손이 낫고 겸손한 침묵보다는 행동이 낫습니다
쉬운 것을 어렵게 ...
말하는 것은 교만의 사치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것은 겸손의 저축입니다
오만한 마음에는 다시는...
채울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늘 비어 있어서 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만의 그릇은 쏟아 보면...
나올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빈 그릇에서도 지략이 철철 넘쳐 쏟아집니다.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너무도 외적인 면에 치중하여 
사람을 바라보곤합니다.
그것은 책표지가 예쁘다고 최고의 책이라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임에도 우리는 그런 
어리석음을 자주 반복하곤 합니다. 
더 이상 외모나 겉치레로 사람의 인격까지 
판단해 버리는 그런 실수는 없어야 겠습니다.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마음으로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당신은 상대방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이것을 잘라내라

 

어떤 사람이 팔에 암이 생겨 외과 의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시다.
"저는 단계적으로 수술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이만큼 잘라내고 다음에는 더 많이 잘라내면 좋겠습니다.
다 잘라낼지에 대해서는 이번에 결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소리입니까?
당신은 그 사람이 단번에 수술을 다 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로 기약하고 작별하듯이 죄와 작별해서는 안 된다.

또 이전과 같은 친근함을 지닌 채 작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바울이 손에 붙은 독사를 불 가운데 털어버리듯 손에서 죄를 털어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건너 온 다리를 태워 버려야 합니다..
뒤로 돌아서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이 촛불을 들고 집안에 누룩이 남아 있는지 찾았듯이
죄가 한 조각이라도 남아 우리 삶을 못쓰게 만들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시편 기자의 노래를 기억합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9:23,24)."

 

풍요의법칙

 

인생(人生)에 있어 성공(成功)이란,
기쁨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가치 있는 목표가 점진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신의 소망을 이뤄나가는 것이 곧 성공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성공을 고된 노력을 요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들의 희생이 뒤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첫째로; 순수 잠재력의 법칙 (The Law of Pure Potentiality)

 

자신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 속에
이미 모든 꿈들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로; 베품의 법칙 (The Law of Giving)

 

주면 주는 만큼 더 많이 받을 것입니다.
실제로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은 베풂을 통해 배가 됩니다.

셋째로; 인과의 법칙 (The Law of Karma or Cause and Effect)


모든 행위는 어떤 에너지의 힘을 발생시키고,
그 에너지는 그대로 다시 우리에게돌아오나니..
뿌린대로 거두게 되리라.

넷째로; 최소 노력의 법칙 (The Law of Least Effort)


이 법칙은 자연의 지성이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초연하며 태평스럽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합니다.
최소 행위, 무저항의 법칙인 셈입니다.

다섯째로; 의지와 소망의 법칙 (The Law of Intention and Desire)


순수한 잠재력이라는 비옥한 땅에 하나의 의지를 심으면,
이 무한한 조직력이 우리를 위해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여섯째로; 초연의 법칙 (The Law of Detechment)

 

초연함 속에는 불확실성의 지혜가 있고,
불확실성의 지혜 속에는 과거로부터의 자유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과거의 제약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일곱째로; 다르마의 법칙 (The Law of Dharma or Purpose in Life)
누구에게나 타인들에게 베풀어야 할 고유한 재능이나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 고유한 재능을 타인에 대한 봉사와 결합하면
우리 영혼의 환희와 절정을 경험할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모든 목적들 중에서도 으뜸인 궁극의 목적이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신문은 매일 무서운 사건들로 그득하고 TV에는 참혹한 모습들이 넘쳐난다. 우리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험악해지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만 한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앞에 나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를 막아서는 만만치 않은 방해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바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바쁘게 돌려대는 이 세상의 구조에 휘둘리고 있다. 직장인이나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어찌나 바쁘게 돌아치는지 모른다. 해야 할 일로 인해 예배드리는 흉내만 내거나, 일이나 시험 또는 대회 등으로 예배를 등한시하기도 한다. ‘바쁨’의 대세는 인스턴트식(?) 예배라는 초간략 메뉴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둘째로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은 ‘재미’이다. 골프시간에 맞추려고 이른 아침에 간단하게 예배를 치루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재미에 푹 빠졌다가 예배시간에는 피곤해서 졸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라는 최신기기의 다양한 재미, 특히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재미’의 대세는 예능이 방송을 장악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설교와 예배까지도 재미본위로 변질시키고 있다. 셋째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지 못하게 공격하는 것은 ‘사탄의 송사’이다. 사탄은 ‘네가 남몰래 한 일을 다 알고 있어, 네 꼬락서니를 보라지, 이러고도 예배를 드리겠다고?’라며 우리의 약점을 공격한다. 특히, 주일 아침에 부부간에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생기거나 아이들의 늦장으로 큰 소리가 나면서 마음 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사탄은 이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이런 기분으로 예배를 드리느니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낫지 않겠어?’라고 유혹한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같이 ‘예수님의 피’이다. 우리들의 어떤 훌륭한 행위나 조건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예수의 피’이며,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처럼 가장 고귀한 그리스도의 육체로 열어 놓으신 길이야말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기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함께 나가야하며,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19-25)같이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모여야 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모이기를 방해할 것이므로 더욱 권하여 모이기를 힘써야한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기위하여 예수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승리하는 사람과 패하는 사람

 

승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와 "아니요"의 선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와 "아니오"의 선택이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언제나 일어나 앞을 보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뒤를 돌아봅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은 눈을 밟아 길을 만듭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눈이 녹기 만을 기다립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꿈이 들어 있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욕심만 잔뜩 들어 있습니다.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 3:28-29)

우리의 죄가 용서되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용서될 것으로 막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 3:28-29)같이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 모독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영원한 죄라고 분명히 선포하셨다. 모독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이다. 따라서 성령의 시대를 살면서 성령님을 말 또는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한다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

성경은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처럼 복음의 빛을 받아 은사와 말씀과 능력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하고도 타락한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분명히 경고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공개적으로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27)같이 진리의 복음을 받고도 타락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을 뿐 아니라 맹렬한 심판의 불만 있다고 다시금 경고한다. 복음을 깨달아 은혜와 성령을 체험하고도 타락하여 십자가를 욕되게 하면 다시 속죄는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령을 모독한 죄와 십자가의 피를 욕되게 한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성경은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 28-29)처럼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성령을 모독한 자와 자신을 구속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자는 가혹한 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죄는 혹 범할 수 있을지라도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며, 다른 죄의 유혹에는 혹 넘어갈지 몰라도 언약의 피를 부정하는 죄는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한다.

 

배려는 타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다
     
남을 생각할줄 아는 마음도 인격자가 갖춰야할 미덕중 하나다.

나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고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배려야말로 인간관계를 원만하고 매끄럽게 이끌어주는 윤활유라고 할수 있다.

사려가 깊은 사람은 그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조직사회에서 때로는 당신도 리더가 되어 통솔하는 위치에 놓일수 있다.
그럴 때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자연히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배려도 하나의 예의다.
예의 바른 태도는 그 사람이 지닌 능력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가식적인 예의는 금세 표가 나게 마련이지만, 진심으로 예의를 갖춰 사람들을 대한다면 사회적인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하가식이나 덕행이아니라, 예의 범절이다."

이 말은 『허영의 시장』으로 유명한 작가 새커리가 한 말이다.

예의 범절이 없는 사람은 사회인으로 성공하기 힘들다고 단정한 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예의는 상대에 대한 정중함과 상냥함에서 시작된다.
공손한 말투나 행동은 타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 표현이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한테까지 공손하게 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또 다른 ′내′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자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할수는 없다.
때로는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고 접어둘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낫고, 아름다운 행위는 훌륭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예술 작품이 아닐는지...

 

외톨이에게 행복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홀로 살아가도록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홀로 고립된 존재가 아니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부 하나님은 늘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시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 관계를 '코이노니아'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의 관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사랑의 관계는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이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증명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뇌의 발달과 면역체계가 우수하고 우울증이나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또한 질병에서도 쉽게 회복하면서 건강과 행복을 보장 받습니다.

또한 이 사랑의 관계는 스트레스 호르몬과도 관계 되는데 이를테면 원숭이를 우리 속에 집어넣고 끔찍한 소음을 들려주면

원숭이 체내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높아진다는 겁니다.

하지만 친구 원숭이 한 마리를 우리 속에 함께 있게 하면 아무리 끔찍한 소음이 계속 되어도 코르티솔 농도는 오히려 낮아집니다.
외부의 스트레스 원인은 꼭 같지만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수치가 내려가게 된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사람은 마음의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만큼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위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로 인해 비뚤어진 부정적인 마음을 고침 받아야겠지요.

외톨이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실패자의 모습입니다.

 

참된 것을 생각하라

 

사람의 머릿속에는 하루에 10,000가지 생각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선택해서 지켜야 할 생각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을 생각하라’는 빌립보서 4장 8절의 말씀이지요.

여기서 참되다는 것은 거짓과 상반되는 진리를 일컫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어제 있었던 일들 중 불쾌한 기억과,

나에게 불친절했던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언짢아 집니다.

이 같은 생각이 반복되다 보면 자연히 실패와 좌절의 터널을 지나면서 오늘에 대한 소망을 저버리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부정적인 생각 속으로 나를 몰아 넣는 죄 된 습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하고 묵상하며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소중한 삶을 뒤덮고 있는 어두움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우울증과 염려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의 에너지이며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열정이 생길 수 없고,

하던 일을 중간에 그만 두게 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부정적이고 죄 된 생각에 잠겨 있으면 영적 에너지를 다 빼앗겨 버립니다.
따라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은 영적 싸움의 결과입니다.

마음이 근심과 걱정으로 고통스럽습니까? 그

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분명히 영혼이 승리하는 기쁨을 소유하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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