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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이 말하는 '심판' -①

예림의집 2011. 1. 10. 10:02

시편이 말하는 '심판' -①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워 떨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입니다. '심판의 날'은 '진노의 날, 두려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죽음의 시간과 심판의 날에' 우리를 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수세기 걸쳐 기독교 예술과 문학은 그날의 공포를 묘사해 왔습니다.

기독교의 이런 측면은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양과 염소에 관한 비유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 무서운 말씀은 누구의 양심도 편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염소'는 전적으로 무너가를 하지 않아 정죄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가장 무거운 징계는 우리가 행한 어떤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결코 행하지 않은-어쩌면 행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어떤 일에 대햐 내려진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 주는 것 같습닏.

따라서 저는 하나니므이 심판에 대한 시편의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릴 것임이니이다(시 67:4)."

  "밭과...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그가 임히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히실 것임이라(시 96:12-13)."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심판)하사...(시 35:24)."

그 이유가 무엇인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유대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우리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땅 위에 있는 법정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법정을 자신이 피고석에 앉아 있는 형사재판으로 그리는 반면, 유대인들은 자신이 원고에 앉아 있는 민사재판으로 그린다는 점입니다. 전자가 바라는 것은 무죄 방면이나 사면이지만, 후자가 바라는 것은 커다란 손해배상을 받아 내는 완전 승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시 35:23)."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우리 주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말씀에서는 기독교적 특징을 보여 주는 그림을 그려 주셨지만, 다른 곳에서는 대단히 유대적인 특징도 보여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