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패커가 그의 책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구별했듯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하나님에 대한 앎이 하나님을 아는 앎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 앎은 생명이 없고 삶에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분을 알고 그리하여 삶에 놀라운 변화와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성령님을 아는 지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령에 대해서 아는 것과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령의 사력, 성령충만, 성령세례, 성령의 은사, 성령의 기름부음 등 성령에 관한 많은 지식들을 알 수 있고 이 지식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성령에 대한 지식과 논의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아는 지식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성령님의 오심을 경험하고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 안에서 변화되는 것이 성령에 대한 지식의 목표이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복음 안에 나타내셨고 역사 안에 거듭 자신을 계시하셨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일하시고 있고 자신을 알리시고 있다. 문제는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자세이다. 성령께서 성경이나 많은 책들에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자세이다. ①성령께서 성경이나 많은 책들을 관한 기록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가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가? 성령에 대해 분석하고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그분을 아는 것이고 그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분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성령께서 분명한 실재로 살아 계시고 자신을 타나내셨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나타남이 없고 단지 책에서 본 것만을 가지고 성령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면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이제 성경과 책에서 본 성령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운행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하고 성령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②세상은 성령님을 모르지만 너희는 알리라 하셨다(요 14:17). 우리는 안다.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말씀하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우리는 안다. 이것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심이다. 성경을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보고 안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단계이다. 성령님에 대해서 많이 듣고 오심을 간구하는 차원에서 이제 실제로 오심을 경험하고 우리 안에 임재하신 성령님을 알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인도를 분명하게 느끼고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하는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 목표는 우리 안에 운행하시는 성령님을 인식하고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함께 하시면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것 성령님과 동역이고 놀라운 능력을 가져오는 길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성령에 대해서 다양하게 말하는 논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역사에로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신다는 것, 성령께서 지금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앞서, 우리가 미처 보지 봇하지만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관점의 전환이다. 지금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그분을 직접 아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성령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믿음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말씀을 믿을 때 믿음은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성령님의 임재에 관한 말씀, 그의 강력한 역사에 관한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여기서 찾을 수 있고 그 임재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복음 안에서 분명한 깨달음을 얻고 이를 붙들고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도록 구할 때 성령께서는 신실하게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말씀 중심과 경험 중심이 대치될 수 있다. 그러나 성령님을 경험하는 것은 말씀중심의 신앙이다. ④성령님의 역사를 말씀에 가두어 둔다면 이것은 생명의 영의 신앙을 '의문(문자)의 종교'로 만드는 것이다. ③'의문은 죽은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라(고후 3:6)." 성령님은 복음을 계시하셨고 그 북음으로써 실제 살리는 역사를 역사 안에 이루시고 있다. 말씀을 믿으면서 여기 성령게서 일하시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통하여 성령님을 알지 못한다면 율법과 의문에 종노릇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은 말씀신앙의 필연적인 열매이다.
-------------------------------------------------------------------------------------------------------------------
<예림 생각>
①성령께서 성경이나 많은 책들을 관한 기록을 읽으면서 성경과 다른 책을 동일한 가치 기준으로 보고 있는가?
②세상은 성령님을 모르지만 너희는 알리라 하셨다(요 14:17). ③'의문은 죽은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라(고후 3:6)." 처럼,
성경의 일부분의 저자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앞, 뒤 문맥 없이 인용하는 것이 성경에 대한 바른 태도인가?
④성령님의 역사를 말씀에 가두어 둔다면 저자는 전체적으로 성경에 대한 권위를 낮추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성령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 전체가 성경에 나와 있는데, 저자는 성경을 단지 참고 도서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신항적인 현상, 특히 성령의 인격과 사역, 역사하심은 성경을로 검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여러분들의 생각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학습 도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Teps 기초문법 다지기 (0) | 2010.12.11 |
---|---|
성령님과의 교제 (0) | 2010.12.10 |
집,직장에서 단기간에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할수있다 (0) | 2010.12.07 |
어떻게 성령의 역사하심을 알 수 있을까? (0) | 2010.12.05 |
기독교상담학 수업 후기 (0) | 2010.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