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선한 목자
설교 본문: 요한복음 10장 11-18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7:37-44).
본문의 배경
주님께서 선한 목자이신 이유는 생명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는 생명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생명을 건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생명 걸고 양을 지키는 목자
지난 몇 주 동안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인 일곱 가지의 ‘자기 선언’ 중 생명의 떡, 생수의 강, 세상의 빛에 대해 살펴보았고 지난주에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인 주기도문 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선한 목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1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다.” 이 본문 말씀 가운데 ‘목자’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낭만적인 목자의 분위기가 아닙니다. 유유자적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목자는 긴박감을 주고 생명을 건 싸움을 연상케 하고, 피를 흘리면서 양을 지키는 목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선한 목자로 살아가실 때 유유자적하고 낭만적이고 목가적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피를 흘리면서 양들을 지키는 목자의 모습으로 사셨고, 양들을 지키는 목자처럼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셨고, 생명을 걸고 싸우며 양을 지키는 목자처럼 우리 곁에 오셨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원리나 공식으로 믿는 분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곁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해서 상대방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분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고 양을 위해 존재하고 양을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놓는다”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을 만나면 살 수 있고, 그분을 만나면 인생의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삯꾼과 선한 목자
선한 목자에 관한 말씀을 삯꾼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겠습니다.12~13절을 보겠습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달아난 것은 그가 삯꾼이므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우리 곁에 다가오는 존재 중에는 삯꾼이 있고 목자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삯꾼을 만나면 우리의 인생은 망가집니다. 목자를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삯꾼은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목자는 양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삯꾼은 자기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고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합니다. 첫 번째,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삯꾼은 돈을 받고 양을 지키는 고용된 사람입니다. 흉내는 내고 있지만 진정한 목자가 아닙니다. 두 번째, 삯꾼은 양들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양에 대한 책임감이 없습니다. 세 번째,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목숨 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삯꾼은 진짜 목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리떼가 오면 도망칩니다. 생명을 걸지 않습니다. 그 당시 율법을 해석한 <미쉬나>라는 책에는 고용된 목자가 양을 지킬 때 ‘삯꾼이 한 마리의 이리가 달려오면 한 마리의 이리와는 싸워서 지켜야 하는데 두 마리 이상의 이리떼가 달려오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삯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한계를 스스로 정해놓고 그 이상은 헌신하지 않습니다. 절제되고, 철저히 계산된 헌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네 번째, 삯꾼은 결국 양떼를 흩어지게 합니다. 다섯 번째, 삯꾼은 양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돈에만 관심 있습니다. 일의 대가는 돈이 아니라 보람입니다. 헌신의 대가는 삯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삯꾼은 일의 대가를 돈으로 대신하고 헌신의 대가를 품삯으로 계산합니다. 여기서 삯꾼은 그 당시에 유대 종교지도자를 말합니다.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학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혹시 삯꾼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사람을 맡기신 예수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5).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사람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먹여야 되고 돌봐야 되고 살려야 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사람을 맡겨주실 때 삯꾼이 되지 말고 목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십시오.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십시오. 군림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모범이 되십시오. 삯꾼이 되지 말고 진정한 목자가 되십시오. 14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첫 번째, 선한 목자는 양들을 압니다(14절). 안다는 것은 친밀감을 뜻합니다.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목자를 압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눈물을 알고 꿈을 알고 고민을 알고 계획을 알고 가능성과 부족함을 다 아십니다.
두 번째,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습니다(15절). 잘났거나 쓸모 있기 때문에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 양이기에 생명을 내놓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생명을 내어놓고 사랑하십니다.
세 번째, 선한 목자는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은 다른 양들을 찾습니다(16절). 선한 목자에게는 있고 삯꾼에게는 없는 것이 잃어버린 양에 대한 부담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비난하거나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양에 대한 부담감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은 양들을 바라보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이러한 영적 부담감이 여러분의 가슴에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네 번째, 선한 목자는 생명을 얻기 위해 생명을 내어놓습니다(17~18절). 우리의 생명은 생명을 위해서만 걸 수 있습니다. 돈을 위해 생명을 거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돈이나 세상 권세가 생명보다 크지 않습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나아가는 교회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가슴이 먹먹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선한 목자이신 이유는 생명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는 생명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건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주님은 당신의 이름을 알고 당신의 모든 상황을 알고 당신의 눈물을 알고 계십니다.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영원히 당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을 위해 생명을 바친 주님은 당신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삯꾼과 같습니다. 주님 이전에 왔고 주님 이후에 왔던 인간의 종교는 모두 삯꾼입니다. 흉내를 내고 있지만 죽음의 이리떼가 달려올 때 그들은 도망칩니다. 삯꾼은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죽음의 이리떼가 달려와도 질병의 이리떼가 달려와도 결코 피하지 않고 질병을 넘어 나아갈 수 있게 만듭니다. 또한 인생의 모든 절망을 뚫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진정한 희망이 되시고 소망이 되십니다. 여러분, 선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질문해보십시오. ‘나는 삯꾼인가, 목자인가? 나는 양들을 알고 있는가? 나는 생명을 걸고 있는가? 나는 잃어버린 양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있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인생을 걸고 있는가?’ 영혼을 살리기 위해 인생을 거는 선한 목자로, 주님 닮은 목자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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