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교환경의 변화와 선교전략의 조정
한수아 선교사(종족선교정보센터 소장)
1. 중국선교는 매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현재 한국선교사가 가장 많이 나가 있는 곳이 중국이며 또 중국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선교의 매력’이 과거만 못하다는 지적이 증가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중국선교의 필요성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선 9.11 사태이후 상대적으로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선교의 매력감소는 선교지로서의 중국자체보다는 중국선교환경의 변화가 종래의 선교 접근에 대한 매력을 급격히 감소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어떤 변화가 중국선교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에 따라 우리는 어떤 전략적 개념을 통해 다시 한번 중국선교의 매력과 중요성을 부각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중국선교에 대한 매력을 감소시키는 선교환경의 요인들
첫째로 중국교회의 성장이다. 이로 인해 중국의 광대한 인구를 강조하는 선교동원전략은 점차 설득력이 없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선교기관들은 보통 ‘세계인구의 거의 1/5에 해당되는 13억이 복음을 기다린다’거나 ‘13억 중국을 주께로’와 같은 구호를 통해 중국선교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에는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약 1억명 가량의 기독교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구뿐만 아니라 교인의 수도 광대하다. 게다가 중국교회는 한국교회보다 더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패트릭 존스턴은 특별히 1977년이후 개혁개방 시대의 교회성장은 역사상 전례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의 성장율은 연8.8%에 달한다고 그는 보고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상당부분 ‘주께로 와’ 있다. 기독교인이 인구의 5%미만일 때 미전도종족으로 분류하는 여호수아 프로젝트의 기준을 따른다면 중국인(주로 한족이지만)은 이미 전도된 종족에 속한다.
두번째는 중국경제의 성장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후진성은 선교의 필요를 자극하는 다른 요인이 된다. 그러나 빠른 중국의 경제성장은 그러한 부분을 감소시키고 있다. 개혁개방이후 1978년부터 매 10년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두 배 이상 증가해왔으며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세계최고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중국경제는 7.7%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높아진 중국의 경제수준은 선교동기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게다가 높아진 물가수준과 환율은 이제 한국선교사의 거주 및 사역비를 만만치 않게 만들고 있다.
세번째로는 지속적인 핍박과 통제 때문이다. 교회와 경제의 성장은 선교활동의 자유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곳에서 선교사의 사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남미나 필리핀 혹은 중남부 아프리카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기독교박해국가로 분류되고 있으며 선교 사역에 대한 정부의 통제로 말미암아 교회의 활발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사역은 여전히 위축되어 있으며 선교사의 활동양상은 10년 전이나 거의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주로 보안문제 때문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역의 불투명성은 이따금 들려오는 선교브로커의 소식들과 어우러지게 되면 중국선교를 지원하는 교회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역초기와는 달리 이미 수교10년이 지난 상황에서 중국선교의 불투명성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중국선교의 참신성과 절박성을 떨어뜨리고 벌써 중국선교의 피로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중국선교의 역동성과 참신성을 회복하는 길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전략과 의제를 가지고 중국선교를 접근하고 홍보하는 데 있다. 그것들은 무엇인가?
3. 중국교회와 신령한 은사를 나누는 사역
중국교회의 성장이나 높아진 한중간의 경제문화적 교류수준을 감안할 때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교회간의 교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 방식은 교회건물을 지어주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중국교회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바울이 로마교회를 도왔던 본을 생각해야 한다.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울은 로마교회가 지니지 못하고 있는 신령한 은사를 나눔으로써 로마교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편지를 보냈다(롬1:11참조). 중국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선발 한국교회가 후발주자인 중국교회에게 그들에게 부족한 은사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중국교회와 나누었던 은사는 교회와 교회사이의 나눔보다는 주로 선교사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제자훈련과 지도자양육(신학훈련)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사역이 선교사 개인의 언어능력이라든지 교수능력의 차이 등에 의한 한계도 있었지만 중국교회를 돕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중국을 방문하면서 필자가 점점 느끼는 문제는 개인적 수준의 제자양육이나 지도자 양성이 중국교회의 필요와 연결되지 못한 채 보안유지라는 중국선교의 특수성과 맞물려서 사역자들 개개인의 소규모 배타적 사역영역으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른바 ‘사역의 게토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 수준의 게토화된 사역형태는 중국교회에 은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종종 사역자를 위한 사역이 되고 마는 데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중국선교의 활력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1) 중국교회와의 공식적인 교류와 이단의 문제
그래서 은사 나눔의 사역은 개인적 차원 뿐 만 아니라 보다 중국교회와의 공식적 교류와 나눔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중국의 공식교회가 공산당 종교조직이 아니라 ‘몇몇 중요한 필요를 지닌’ 하나님의 교회라고 여긴다면 이들과의 적극적인 교류는 중요하다. 최근 세계선교협의회와 중국교회지도자들간에 교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중국의 종교교류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들도 있다. 전에 이제는 퇴임한 주룽지 총리가 지하교회의 합법적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과 외국인의 전도에 어느 정도 자유를 허락한다는 요지의 종교자유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중국이 개방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종교자유도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정부는 이것에 신경을 쓸 것이다.
중국교회와 교류를 할 때 우선 공통적인 관심사인 이단의 문제 등에 대한 공통적 대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단문제는 파룬공 문제로 인해 중국종교계가 최근 더욱 중요시하는 관심사이고 중국교회를 돕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중국교회가 주로 농민과 여성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이단의 문제나 혼합주의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중국교회에 대해서 이단퇴치를 위한 교육사업과 문서사역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 부분을 섬기는 교류의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
2) 복음주의적 기독교 지식인층의 형성
이단의 척결을 위해 이단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들을 단속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전반에 걸쳐서 기독교 지식인 계층이 형성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교회의 대다수는 가정교회의 형태로 존재한다. 중국의 어떤 기독교 연구자는 중국에서 “기독교는 불교처럼 경전기독교의 높은 문화현상을 이루지 못하고 소위 ‘민간기독교’로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하층에 대한 선교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이제는 기독교가 하나의 지식체계로서 그리고 세계관으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과 지식인들을 위한 가르침의 사역과 문서사역이 시급성은 ‘이들에게도 복음이’라는 구호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기독교 지식인층의 형성이라는 필요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 중국에서 기독교 지식인들에게는 복음주의 신학보다는 오히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력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당과 이에 통제를 받고 있는 공식적인 중국교회가 복음주의 정통신학보다 현대신학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보다는 현세를 중시하는 세속화신학이 사회주의적 국가건설에 이용하기 좋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단 퇴치를 위해 정통기독교 신학을 잘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지식인들에게 다가간다면 우리는 세속화신학의 확신을 막고 한국교회가 지닌 복음주의적 유산이 중국기독교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3) 선교적 교회를 위한 나눔
우리가 중국교회와 함께 나누어야 할 은사는 바로 선교비전이다. 중국은 이제 가장 큰 선교잠재력을 지닌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 부각되고 있는 이슬람권에는 한국보다 오히려 반미적인 성격을 지닌 중국인들이 보다 잘 사용될 수 있다.
1990년대 초 중국의 해외여행인구는 300만 명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는 1200만 이상이 해외여행을 했다. 2020년에는 해외여행 가능인구가 1억명 정도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약 그중 1%만이라도 해외선교여행을 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게 된다면 백 만 명이 넘는 영적 군대가 무슬림권, 힌두권 등 남아있는 미전도 지역을 휩쓸게 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교회는 선교적 관심보다는 핍박과 환란 속에서 생존을 목표로 성장해 왔다.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전도에 대한 관심도 아직 여러 가지 여건상 국내전도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교회의 가장 부족한 신학교육 분야는 선교신학으로써 선교사들이 가르치기에 가장 적절하다. 선교목회, 선교사훈련, 선교기도회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단기선교운동, 심지어 선교한국을 본 뜬 ‘선교중국’ 운동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세계선교의 기회로 생각했듯이 중국교회로 하여금 2008년 올림픽을 선교의 기회로 바라보도록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중국교회로 하여금 선교지역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도록 도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동의 노동자들, 카작스탄 내의 이주민들 등 중국인 디아스포라 선교를 위해 노력하는 중국인 사역자도 나와야 할 것이다.
4)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도전
이 부분 역시 중국교회가 가장 약한 부분 중 하나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교회는 고난과 핍박을 견뎌온 교회이기 때문에 개인과 교회에 대해서만 몰두를 하게 되었지 사회에 대한 관심은 적다. 물론 그 이유에는 중국교회의 가난과 정부의 통제가 있다. 그러나 가난한 마게도니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물질적으로 도왔던 사례와 같이 가난한 중국교회도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현재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소득의 8배를 넘었으며 상하위 10%간의 소득격차는 21배에 달한다. 농촌인구 3000만명은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인구로 분류된다. 경제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현재 4.5이상으로 경계수준한계인 4를 1994년에 이미 넘어선 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100만명의 에이즈환자, 1000만명 가량의 정신질환자, 6000만명의 장애인들, 1300만의 맹인, 52만명의 공식적인 마약중독자 등이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복지는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촌의 빈곤이 문제라면 도시에서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팽배가 문제이다. 또한 이로 인한 가정파괴와 부패문제도 심각하다. 1989년이후 2002년까지 13년에 걸쳐서 중국의 관리들이 부패문제 때문에 47만명 이상 출당되었다고 한다. 중국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윤리와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과거 한국교회에서도 취약한 부분이었지만 최근 많이 강화되고 있다. 이것 역시 중요한 복음주의의 유산으로서 우리가 중국교회에 나누고 또 그들과 함께 사역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4. 개척 선교사역들을 찾아내고 홍보하는 전략
중국선교의 매력은 무엇보다 광활한 개척지역에 있었다. 그러나 이미 교회가 많은 지역과 종족에 선교사가 몰려있는 현상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든 한 요소가 되어 왔다. 이를 위해서도 사도바울은 본이 된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기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해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롬15:20)”고 말했다. 우리는 중국교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활한 개척사역이 필요한 지역과 종족, 그리고 사역분야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 떠오르고 있는 개척선교지역들을 부각시키기
중국을 하나의 선교지로 보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중국내 여전히 존재하는 많은 개척지역과 종족들을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어 13억의 중국인구를 강조하는 것은 개척사역의 도전을 둔화시킨다. 우리는 개척사역지역을 보다 구체적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민족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곳처럼 한족교인들이 사역하기에는 어려운 미전도종족에 대한 사역팀의 파견이 여전히 시급하게 요구된다.
특히 최근에 중국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인 서부대개발에 따른 선교전략적 준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중국의 낙후지역에 대한 기독교의 역할을 강조하는 홍보전략이 중요하다. 기독교는 현대사회와 산업화에 잘 어울리는 종교이며 이를 기반으로 서구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소수민족지역에서 기독교는 중국정부가 말하는 소위 ‘봉건적 미신활동’들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십계명은 실제로 낙후된 중국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덕목들이다.
2) 새로운 계층에 주목하는 것
사회주의시절 중국의 계층은 2계급(노동자 농민)과 1계층(지식분자)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의 계층을 10개 계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상업/서비스업 종사자가 취업자의 12%에 이르렀고 개체상공업자 4.2% 전문기술인력 5.1%나 되었다. 대형중형기업관리자가 1.5%, 사영기업주도 0.6%에 이른다. 보다 세분화된 계층구분도 존재한다. 이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경제적 동질집단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교회의 설립은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는 좋은 전략적 접근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안문사태이후 공산당에 회의적인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공산당 통제하의 삼자교회도 아니고 농촌중심의 가정교회도 아닌 제 삼의 소그룹교회가 발전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또한 서부대개발의 과정에서 우리는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민카오한(民考漢) 계층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소수민족이면서도 어려서부터 한어를 배우고 한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다. 서부와 내륙의 경제통합은 소수민족들에게 한어의 필요를 증가시킴으로서 민카오한 계층을 급속하게 확대시키고 있다. 이들은 한족이 아니며 전통적인 민족의 정체성도 상실한 한족과 소수민족사이의 경계인들이다. 이들을 위한 사역언어는 한어이며 티벳족과 위그루족 민카오한을 섬기는 사역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비교적 복음에 수용적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한족/소수민족사역이라는 민족구분법을 뛰어넘어서 이같이 새로운 민족/계층집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1억 5천만명 이상이 농촌에서 도시에 온 유동인구 있다. 그들은 가장 복음에 열려있는 사람들이고 복음을 오지와 농촌에 실어 나르는 가교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이 몰려드는 도시가 주변에 복음을 전달하는 관문이 되어야 한다.
3) 새로운 선교수단에 대한 인식
우리는 새로운 선교수단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예가 바로 인터넷이다. 2002년 현재 중국의 인터넷사용인구는 56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일본을 이미 추월하고 미국(1억 6천만명 정도)에 이어서 세계 2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물론 13억명의 인구를 고려한다면 인터넷 사용인구는 전체인구의 5.5%밖에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1998년 270만명이었던 인터넷인구가 2000년에는 1천만명이 되었고 2002년 5천만 명이 넘어서면서 거의 6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도와 교육은 분명히 중국선교의 중요한 도구로 부각되고 있다.
5. 맺음말
앞서 필자는 중국선교에 대한 전통적인 전략이 너무 단순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13억의 중국인구, 가정교회와 삼자교회, 한족과 소수민족 선교 등의 분류방식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선교개념과 전략을 뛰어넘는 다양한 선교개념과 메뉴를 제시해야 한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예 중국선교라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다양한 종교(이슬람, 티벳 등)와 미전도지역(예를 들어 호남성, 귀주성 등) 및 종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 중국의 어느 성, 어느 지역, 그리고 어느 계층, 종족을 대상으로 선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사역단체들도 이제 중국선교를 위해서 모든 메뉴를 다 취급하는 백화점식 접근을 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보다 전문분야에 특성화된 사역단체들이 등장해야 한다. 가정사역, 인터넷 사역, 특별한 계층과 도시를 타겟팅 하는 등 중국을 좀더 자세히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선교의 필요와 역동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우리는 성장하는 중국교회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피고 우리가 지닌 은사를 나눠야 한다. 까르프와 월마트등 세계적인 다국적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흑자를 남기게 된 이마트 상하이점의 총경리는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남의 것이 아니다. 중국 이마트 상하이점은 중국기업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무엇보다 중국선교에 있어서 선교사들은 자기만의 사역왕국/게토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버려야 한다. 중국교회를 실질적으로 돕고 그 열매가 그들의 것이 되도록 사역할 때 중국선교의 활력은 더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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