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참고만 하세요~~~
1.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로, 바울은 안디옥 교회를 시작으로 더베를 반환점으로 하는 도시 선교를 하였다. 이는 선교 사역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당시 가장 중요한 도시나 로마 식민지를 따라 선교를 한 것이다. 안디옥에서 더베까지의 여행은 전도 여행이었고 반대로 더베에서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여행은 양육을 위한 여행이었다. 두 번째로, 바울은 효과적인 선교를 하기 위해 혼자가 아닌 팀 선교를 하였다. 그리고 어느 도시에 도착하든 항상 먼저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항상 동일했지만, 청중들의 상황과 배경을 파악하여 전도하는 방법과 표현 방식 등의 접근법을 적절한 상황에 맞게 전개 하였다. 세 번째로, 바울은 어느 곳에서든 먼저 가정 교회를 세워 그 지역에 교회가 뿌리 내리도록 하여 그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을 확산시켰다. 바울의 선교 여행에는 늘 고난과 박해가 있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절하였고 오히려 바울을 대적하고 핍박하고 고소하였다. 심지어 바울이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그를 참소하는 무리들까지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든지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다.
2. 이방인 구원문제가 언제 발생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을 각각 설명하라.
이방인 구원 문제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제 1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안디옥에 1년 정도 머물고 있을 때 발생하였다. 첫 번째 안디옥 충돌 사건은 베드로가 안디옥을 방문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음식을 나누며 교제할 때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안디옥에 내려왔다. 그러자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물러나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지 않았고 또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인 바나바도 같은 행동을 했다. 베드로와 바나바의 이러한 행동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등성을 거부한 것이고 인종적 차별로서 결국 이신칭의 복음의 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유대인이 이방인과 식사를 같이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위기였다. 바울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베드로의 면전에서 그를 책망하며 이신칭의 복음 즉,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아무런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동등하게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회 변혁적인 복음을 선포하였다. 두 번째 사건은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있는데 이 문제의 발단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온 몇몇 유대인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데서 시작되었다. 이 문제로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나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보내고 예루살렘 지도부는 이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많은 변론을 벌인다. 먼저 베드로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등성에 대해 말했다. 이어서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보고가 있은 다음 끝으로 야고보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에 포함시킨 것이 이미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예루살렘 지도부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더 이상 율법과 할례로 괴롭히지 말 것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침이 되지 않도록 네 가지 금령 음행을 금하고 우상의 더러운 것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먹지 말라고 제시함으로써 이방인 선교를 위한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3.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중 바울이 받았던 재판을 간략하게 설명하라.
첫 번째 재판은 사도행전 17장에 나와 있는 데살로니가에서의 재판이다. 바울 일행이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해석하고 강론하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설교했고 몇몇 유대인들과 이방신을 섬기던 많은 헬라인 무리와 유력한 인사들의 부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응징하기 위해 ‘예수를 가이사로 선포 한다’ 는 죄목으로 반로마 체제 전복 활동을 하고 있다는 중대한 정치적 범죄로 이끌어 갔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 사건으로 위장하여 바울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데살로니가 행정 책임자들은 고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보석금을 받고 놓아 준다. 두 번째 재판은 사도행전 18장에 나와 있는 고린도에서의 재판이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 때 위기에 처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만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고소하였는데 갈리오 총독은 유대교 분파 사이에서 생긴 종교적 사움이기에 재판할 수 없다고 거절하며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 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했다. 위에 나타나 있는 두 재판의 특징은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반역적인 종교가 아님을 로마 당국자들에 의해 확인 된 것이며 이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유리한 판결로서 중요한 선례를 확립한 판결인 것이다.
4. 바울의 에베소 선교 사역을 설명하라.
에베소는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베이스캠프였다. 에베소는 아시아 속주로서 가장 크고 인구가 많은 헬라의 종교 중심지였고 웅장한 아데미 신정이 있었고 아시아의 은행이라는 표현대로 부가 에베소로 집중되었다. 바울은 거의 3년 동안 에베소와 아시아 속주 전체의 복음화를 시도하였다. 바울이 회당에서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였지만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제자들을 따로 세워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고 두란노 서원을 통해 배출된 제자들은 소아시아 지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했고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이 이 시기에 복음이 전해져 세워진 것으로 보여 진다. 바울의 사역은 축귀와 신유 사역을 동반하고 이로 인해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마술을 포기하였다. 에베소 온 도시가 영적으로 각성되어 성령의 역사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말씀과 능력이 함께 나타났다. 바울의 복음 사역으로 인해 신전의 사업에 기초하여 살아가던 사람들이 경제적 타격을 받자 민요가 발생한 연극장 데메드리오의 소요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지만 바울이 선포한 복음이 로마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곳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지는 않았다. 겸손으로 에베소 교회를 섬겼고, 눈물로 섬겼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있어서는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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