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선교사님, 공격적 선교란 무엇인가요? 공격적 선교가 선교의 좋은 방법인가요?
ANSWER)
좋은 질문입니다. 공격적 선교는 국내 선교방식이나 해외선교방식에 있어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공격적 선교(Aggressive Mission)는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같은 원색적인 복음전달 방식의 선교입니이러한 선교방식은 상황화 즉 복음 수용자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전도방식으로서 특별히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지역에서는 비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공격적 선교는 기독교가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자기 중심주의임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하철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외침을 듣게 될 때 지하철 안에서의 예의와 질서를 무시하고 복음전하고 있는 듯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전도를 타문화권에서 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무례한 기독교라는 생각이 들겠지요. 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공격적 선교를 하시는 분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죽음을 몇 번 넘기신 분이었습니다. 그가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공격적 선교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영혼구원이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타문화권 영역 속에서 공격적 선교는 성경적일까요? 특별히 공개적 선교지역이 아닌 곳에서는요?
예를 들어 가톨릭 신부들이나 수녀들은 위험한 지역에서도, 신부복을 입고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의 교리를 전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무슬림들에게 있어서도 아주 충격적입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길거리의 행인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해왔습니다. 흰두의 나라, 불교의 나라, 인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무슬림 지역에서 스파이처럼 복음전하고 숨어 복음전하는 것이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원색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공격적 선교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공격적 선교가 여러 부분에 어려움을 낮게 합니다. 어떤 선교단체가 무술림 지역 A국에서 공개적 복음을 전했습니다. 공개적 중단 명령에도 불구하고 광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을 본 무슬림들은 무례한 기독교라 욕을 하였고 다음해에 한국인 관광객이 그 지역에 들어갔을 때 과격 무슬림 단체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고 테레를 행하여 4명이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격적인 선교가 공개적인 찬양, 복음전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무슬림들이 복음, 즉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십자가는 용서, 사랑, 화해 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에게 십자가는 점령, 살인 일 것입니다. 십자가군 전쟁을 통하여 그들에게 알려진 기독교는 점령의 기독교이며 십자가 깃발은 상처일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 대다수의 나라를 식민 통치했던 국가들의 종교는 기독교였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서구와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제국주의적 종교일 것입니다. 무슬림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기독교인들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거침돌이 된 것은 무슬림 자체가 아니라 복음전달자인 우리들의 삶과 모습이었습니다.
2007년 터키에 있었던 독일선교사 틸만 스케게를 비롯 2명의 선교사들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타리캇’이라는 이슬람 과격 단체의 일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터키에서도 충격이었습니다. 틸만 스케게의 아내를 비롯 순교자의 아내들은 언론을 통해 그들을 용서한다고 발표 하였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장례식, 용서, 사랑은 터키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터키 신문들은 “도대체 어느 종교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오해된 십자가의 진실이 선교사들의 죽음과 그 아내들의 반응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설명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복음전도자의 삶입니다. 삶과 떨어진 공격적 선교는 문제가 됩니다. 공격적 선교라는 것은 성육신적 삶을 근거로 해서 나와야 합니다.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일반적으로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할 수 있는 지역은 공격적 선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하는 것이 금지된 지역은 공격적 선교가 말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복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육신화된 복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전 고 배형규목사님의 순교후 무슬림 선교사들을 만났을 때 그 지역의 무슬림들이 선교사님들 보고 떠나지 않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위험한 지역에 들어온 것이 자기들 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배워서가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고 배형규목사님의 순교를 통해 십자가의 참 사랑을 본 것입니다. 복음은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위험한 지역에서도 공격적인 직접전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성령이 결정합니다. 우리는 선교가 우리가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오산입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문구는 땅끝까지 복음전하여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자라는 것입니다. 비성경적이고 불신앙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인간이 인류역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 없습니다. 또 선교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람은 단순하 동참되어 사용되어질 뿐입니다. 선교를 하나님이 하신다는 의식없이는 선교는 많은 문제점을 일으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선교를 성령이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이 공격적 선교를 원하시고 때를 주시면 공격적 선교를 해야 합니다. 성령이 기다리라고 하시면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하고 서라고 하면 서야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 것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공격적 선교는 보편적 선교방식이 아니라 선교의 한 부분입니다. 이것을 보편적 선교방식이냥 자랑하거나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공격적 선교방식을 시대에 뒤 떨어진 방식으로 보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지나친 상황화는 기독교를 문화로 만들고 맙니다. 복음을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봉사를 복음전도로 착각하게도 합니다. 복음에 대한 분명한 내용과 담대함을 갖되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격적 선교냐 아니냐라는 접근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라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여야 합니다.
다는 아니지만 공격적 선교를 주장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갖고 무례함 때문에 우리가 종종 실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복음만큼 그들의 삶이 복음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교가 하나님 공동체 설립이라면 예수를 전해 구원시키는 것 만큼 공동체 안에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영광됨을 함께 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좋은 답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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