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후원 사역†/선교이야기

선군정치론

예림의집 2009. 5. 1. 12:02
1995년 이후 김정일 정치의 특징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선군정치이다.‘선군정치’라는 용어는 1997년 12월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나, 군 중시의 정치방식은 김일성 사후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인민군대 강화에 최대의 힘을 넣고 인민군대의 위력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의 전반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는 특유의 정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군사선행, 군 중시’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독창적인 위대한 선군정치로 인민군대를 주체혁명의 기둥으로 부강조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경제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며 총대가 강하면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국방공업은 나라의 부강 번영과 인민의 행복, 혁명의 승리적 전진을 담보하는 국가정치의 첫째 가는 중대사”라고 함으로써 다른 어느 분야보다 국방력의 강화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북한은 선군사상이 주체사상에 기초하였고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게 정립된 것으로 주체사상은 선군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적 지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추구하는 국가의 자주성을 수호하는 것은 선군정치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하여 선군정치가 주체사상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구현하는 정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군정치는 이른바 1990년대 중반의‘고난의 행군’시기에 군의 정치·경제·사회적 선도역할을 통해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군정치는 군 중시의 정치로서“군사를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군력강화에 나라의 총력을 기울이는 군사선행의 정치”로 규정된다.
또한 선군정치는“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여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무기로 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밀고 나가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북한은 이러한 군 중시 정치를“김정일 동지의 기상이자 우리당의 기질이고 김정일동지식이자 우리 당의 혁명방식”이라고 하는가 하면, “군대는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데까지 확대해석하고 있다. 군 중시 사상을 반영한 국방위주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 선군정치론은 오늘날 김정일체제 유지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통치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와같은 군 우선의 의지를 수시로 표현해 왔다.
1997년 신년 공동사설은“인민군대의 총창우에 사회주의의 운명과 부강조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1997년 2월 15일 김정일의 55회 생일을 축하하여 정권기관들이 보낸 축하문에는“군대가 혁명 주체의 핵심역량, 주력군을 이루며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라고 강조했다. 1998년 3월 9일 노동신문은“군대를 기둥으로하여 혁명을 완성해 나가야 하며 군대를 본보기로 온 사회와 혁명대군을 정예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군사지도자들의 권력핵심의 인사에서도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김정일 자신이 1998년 9월에 이어 2003년 9월에도 국가최고의 직책인‘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었다.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1차 회의에서 혁명1세대인 리을설, 백학림 등 군부 원로들은 일선에서 퇴진하였지만 군부실세인 조명록, 김영춘, 김일철, 리용무 등 핵심계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1996년에는 4월 25일 인민군 창건일과 7월 27일‘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정전협정 체결일) 등 군관련 기념일을 공휴일이자‘국가명절’로 지정하였다. 선군정치의 표방으로 군부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2003년 3월 노동신문에서“인민군대는 혁명의 주력군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류다리, 금릉동굴, 금강산 발전소, 문화유적지 건설 등 대부분의 중요 경제건설 사업과 각종 우상화 선전물을 군 인력으로 건설했다.
그밖에도 군대는 무역회사와 공장, 기업소, 광산, 협동농장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제2경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심지어 농사와 철도운행, 중요 치안업무 등에도 간여하고 있다. 1998년 신년 공동사설에서“인민군대가 창조한 정신과 도덕, 문화와 생활기풍을 사업과 생활에 철저히 구현해 나가야 한다”며 사회가 군을 따라 배울 것을 독려하였다. 또한‘군민일치 모범군 쟁취운동’, ‘우리초소 우리학교 운동’을 벌여 군과 사회의 일체화를 꾀하고, 2002년부터는‘군민일치·관병일치·군정배합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