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94번째 이야기
[금요일] 십자가 중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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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읽기] 마태복음 27: 45-54
[암송 요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보다 더 좋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이 질문은 때때로 예수님께서 골고당에서 당하신 잔혹한 형벌의 목적에 대해서 토론 중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해와 별개로 그리고 그분의 무한한 지혜로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위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 당시의 상황은 결코 통제를 벗어나거나 그의 뜻에 충돌할 수 없었다.
대신에 십자가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와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심(출 34:6)을 드러내셨다.
십자가는 또 사탄의 최후 패배가 세상 끝에 일어날 것이지만,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죄에 대한 육체적인 형벌의 필요성을 무효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관계를 밝혔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경험할 기회를 주신다.
마태복음 27장 51절은 그리스도가 죽으시는 순간에 성전 휘장(오직 대제사장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방식의 시작을 의미한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뜻은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는가?
그렇다.
그분이 죽으심으로, 그의 사랑이 그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증명된 것이다.
주님, 내가 온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보여주시고 당신의 흘리신 보혈로 인 치신 언약을 받아들입니다.
마이너스 사고를 플러스 사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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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손수 우리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안에서 안식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마음은 그 어떤 안식도 진정으로 느낄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부르고 소리치셨으며,
그렇게 나의 귀먹음을 없애 주셨습니다.
당신은 번득이는 빛을 발하사
나의 눈멀음을 쫓아 내셨습니다.
당신은 향기를 발하시어
나로 하여금 그 향기로 숨쉬게 하셨으며,
그렇게 당신을 갈망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제 내가 당신을 갈급해하고 목말라 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나를 자극하셧으며,
그래서 이제 내 몸은 당신의 평안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어거스틴
성령이 우리 속에서 하시는 일 중 가장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 세계를 바라보게 하시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영성은 하나님과 우리가 맺는 관계의 기초가 된다. 영성은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는 방법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하는 방법이다.
식물이 해가 비치는 쪽으로 줄기를 뻗듯이 영성은 우리가 하나님 쪽으로 향하게 한다. 어거스틴의 고백대로 우리 영혼은 주님 안에서 쉬기 전에는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없다. 영성은 인간에게 심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에너지와 같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창 1:26-27). 그러나 타락과 함께 인간은 그 형상을 잃었고, 그 결과 우리의 모습도 왜곡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 문회에는 '왜곡성' 이라는 특징이 잇다. 근본적인 것이 지엽적인 것을 지배한다. 인간의 영혼에 심긴 하나님 형상의 타락은 근본적인 것의 타락으로, 인가느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다. 타락한 영혼은 지엽적인 정신과 육체에 잘못된 영향을 끼친다. 타락한 영혼은 마이너스 사고라는 습관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시다.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귀먹고 눈멀었던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듣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하고 말한다. 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 12:2)고 말한다.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추구한다. 우리는 영성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영성은 타락한 인간의 마이너스 사고 습관이 플러스 사고 습관으로 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영성은 영성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영성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이 깨달음으로 우리는 성령님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성령님의 활동에 동참하게 된다 결국 영성은 신앙을 선택하게 하고,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게 하며,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갖게 함으로써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생기도록 인도해 주는 힘이다.
영성훈련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선택하는 모든 행동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협조하고 동참할 수 있게 하는 일정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 훈련은 예수님 안에서 자기를 개발하는 훈련이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히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9빌 2:12) 하고 말한다. 리처드 포스터는 "영성 훈련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 주실 수 있는 장소로 인도하시는 수단" 이라고 했다. 영성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하고 하나님을 닮게 한다. 영성 훈련이란 한 마디로, 영성이 발전할 수 잇도록 도와 주는 행동이다. 운동 선수가 자신이 선택한 종목에 맞게 몸을 만들듯이, 성도는 영적 성장에 맞는 일정한 행동을 선택하여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영성은 창문과 같다. 우리의 영이 깨끗한 창문 같을 때는 하나님의 은헤를 투명하게 볼 수 있지만, 잘못된 동기로 창문을 더럽힌다면 오히려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남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잘못된 영성 관리를 싫어하셨다. 그러므로 영성 훈련에서 바른 동기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영성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최고의 깨달음이다. 우리는 영성 훈련을 통해 더욱 많이, 더욱 깊이 예수님을 깨닫게 된다. 영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갈망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암모하나이다"(시 63:1) 하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우리를 참된 안식으로 인도한다.
좋은 습관 기르기™ 중에서...
주님 이 곳에
주님 이곳에 주님 이곳에 우리와 함께 함께 하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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