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예전에 쓴 일기장을 들춰본다. 초등학교 6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있고 보관해두고 있어서 추억여행을 겸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쓴 일기를 일어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행복하고 기쁠 때보다 답답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순간에 일기장을 벗삼아 이런저런 속내를 털어놓아서인지 일기장은 온통 서글픈 사연 투성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K때문에 죽고 싶다" "영미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을까..." 등등 절절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도무지 k가 누군지, 또 무슨 일 때문에 죽고 싶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게다가 영미 때문에 속상하다고 그 아이 흉을 본지 3일도 지나지 않아 "영미는 정말 좋은 친구다"라는 글도 등장한다.
내가 특별히 기억력이 없거나 혹은 변덕이 심해서가 아니다. 당시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테고 영미에게 진심으로 실망했을게다. 하지만 얼키고 설켰던 맺혔던 매듭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리고, 친구 역시 언제나 다시 우정을 되찾아서 지금까지 잘 지낸다는걸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다. 죽고 싶거나 증오의 감정이 드는 순간에 욱! 하는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난 아직도 무사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만약 10대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 본다. 가끔은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고 마냥 풋풋한 10대로 돌아가 미친듯 공부해서 전교 수석도 해보고 싶고, 사법고시도 도전해 보고 싶고, 영어는 물론 라팅어까지 익혀 외국어의 달이이 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난 절대 완벽한 게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온실의 꽃처럼 마냥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지는 않겠다. 난 지금 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지만 매일 아침 텔레비젼 방송에 출연하고, 학교나 회사에 강의도 하고 월간지에 칼럼도 쓴다. 또 가정주부로서의 의무도 해야 하고 몇 년 전까지는 치매인 엄마와 함께 살며 대소변을 받아내기도 했다. 때론 하루에 10가지나 넘는 일을 처리해야 하고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아직 지치지 않았다. 그건 내가 10대 때 모든 이들에게 사랑 받고 대접을 받으며 산 것이 아니라 오빠들의 숱한 구박과 구타(참 어이없는 일로 많이 맞았다0, 좌절(짝사랑만 하느라 연애도 못해봤다), 실패(대학시험에서 떨어어졌다0 등 등을 다 경험해서 생긴 내공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더 커다란 시련을 겪었고 더 혹독한 고생을 했다면 아마도 더 크게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10대는 물론 지난 세월을 통해 내가 흘린 눈물과 땀은 절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흘린 땀과 눈물로 자란 꽃이 더 싱싱하게 자란다는 걸 이제 안다.
난 일본 감독인 비트 다케시의 말을 좋아한다.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것도 좋지만 그저 공차는 게 좋아서 열심히 달리다 보니 축구선수가 되어있는 것도 근사한 일이 아니냐는... 부질없는 욕망에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세상이 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팔자타령을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꾸준히 살아온 내가 대견하다.
하지만 고통을 체험하기 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나 자신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면 절대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도 않고 작은 좌절에 쓰러지지 않는다. 사고를 저지르고 싶어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일을 하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도 앞으로 살아서 맛볼 행복과 기쁨을 생각하며 이겨낼 수 있다. 남들이 사랑해주기만 바라지 말고 자신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남들도 나를 사랑해준다.
21세기엔 평생 직장도 없고 한 사람이 직업도 여러 번 바꾸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또 어떤 직업이 인기일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에 맞는 진로계획서보다 그 어떤 직업, 그 어떤 직장, 그 어느 나라에서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컨텐츠를 갖추는게 아닐까. 그러려면 빛만 아니라 어둠도 느껴봐야 하고, 사막에서도 견딜 내공을 키워둬야 한다.
지옥처럼 여겨지는 현재의 삶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은 오로지 내 마음에 달려 있다. 스스로 껍질을 뚫고 나온 병아리는 닭이 되지만 남이 대신 깨주면 그저 달걀프라이가 될 뿐이다. 지금 그대들이 흘린 눈물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유인경(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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