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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서적] 사과의 맛

예림의집 2008. 10. 2. 20:37

[북데일리] 오현종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지만 <사과의 맛>(2008년 문학동네)을 선뜻 선택하게 된 것은 작가의이름 때문이었다.

시인 정현종님을 좋아하는 내게현종이라는이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동화보다 발칙하고, 영화보다 기발한 아홉 가지 이야기'라는 문구도 책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사과의 맛>이라는 단편은 만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기획된 소설집일까. 어쩌면 작가의 전작을 읽었더라면 아마 주저했을지도 모른다.그런 면에서사과의 맛을 시작으로 오현종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다행인 셈이다.

사실, 동화 속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떠올렸다. 여전하게동화라는 것은꿈과 환상을 안겨주는게 아니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의 환상, 놀이공원에만날 법한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을 꿈꿨는지 모른다. 동시에 우리는 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가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맺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상추,라푼젤>은신선했다. 경어체로 시작하여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상큼함과 가벼움을 상징하는 상추와 상추를 먹는 아내의 뚱뚱한 모습의 설정이며, 상추로 아내의 남편을 유혹해 결국라푼젤을갖게 되는 옆집 여자는 마녀라기보다는 계획적이고 현실적인 여자였다. 아이만을 간절하게 원한 평범한 여자. 아름답게 자란 라푼젤을 사랑하는 왕자. 성이 왕이고 이름이 자인 어쩌구니 없는 이름까지 꽤 동화적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요정,라푼젤은현실속에서는 남편 왕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내로 남게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라푼젤의 자화상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연금술의 밤>은 열어서는 절대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다. 과거의 사랑했던 마리라는 여인을 잊지 못하는 형과 자신이 누군가의 대역으로 사랑받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고도 마리로 살고자 하는 여자, 그리고 과거의 모든 사실을 알면서 그 둘을 지켜보는 나, 마리가 과거의 사진첩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셋은 정말 영원하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동화속 행복한 결말은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를 보면 성이 '인'이고 이름인 '어'라는 반인반어의 여자가 등장한다. 장애를 가진 아름다운 딸의 탄생은 가족에서 무거운 짐이 되며 더구나 창창한 미래를 펼칠 아들이 있다면 인어는물 속으로사라져 주기를 내심 간절하게바랄 것이다. 어부인 아버지가건져 올린물병은 새로운 요술램프가 되지만 그들은 인어의 완전한 몸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쉽게 부자라는 소원을 말해버린다. 인어의 결혼과 동시에 이사를 가버린 가족과 인어를 사랑하지만 욕체적 교류를 원하던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만다. 그녀가 선 곳은 탐욕과 음란이 가득한 현실의 공간인 지중해나이트의 수족관속. 목소리를 바꿔 왕자의 앞에선 인어공주처럼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우리의 인어는 두 다리를 갖지 못했다.

<달과 달걀>. 이단편을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다.홀로 아들을 키운 시어머니와며느리의 갈등은 대부분 시어머니의 압승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동화적 테마를 갖추지 않아서 다른 단편에 비해 더 돋보였다. 광산으로 금강석을 캐러 남편이 떠난 후, 독선적이고 욕심만 가득한 시어머니를 향한 며느리의 차분하게 치뤄내는 계획적인 결말은 섬뜩했지만 목에 걸린 독이 든 사과가 시원스레 빠져나오는 듯 했다. 음식을 소재로 하여 만든 독특함과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멋진 조화였다.

동화라는 설명없이도 이 책을 충분하게 재미있으며 나쁘지 않다. 9가지 이야기속에는 동화에서 모티브를 찾거나 현대를 살고 있는 동화, 혹은 전설, 신화속의 인물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빛나는 소설집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이다. 물론 나는 <동화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김형중님의 글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이니 직접 전작을 만나게 된다면 다를지 모르나 <너는 마녀야><본드걸 미미양의 모험>등의 제목에서부터 사과의 맛까지 전체적인 소재나 테마를 모두 동화, 신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이 이 작가의 매력이나 특징이 될 수는 있지만이미 <사과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녀가 더 넓고 다양한 문학을 그녀만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길 바란다. 그녀가 새로운 변화의 나래를 펼칠 것이라 믿음도.

[서유경시민기자 littlegirl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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