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가끔씩 받는 황당한 질문입니다. 차라리 ‘천당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됩니다!’ 라고 답을 해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면 찬양을 잘 할 수 있느냐고 들이대는 질문에는 그야말로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운전기사는 운전을 잘 해야 하고, 요리사는 요리를 잘 해야 하듯이,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잘해야 하는 몇 가지 전공필수(?) 과목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찬양입니다.
본시, 기독교는 타 종교와 달리 음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음악의 종교인지라, 찬양을 잘 하지 못하면, 참으로 예수 믿기 힘들고, 두고두고 평생 고생이며, 심지어 교회 내에서 높은 자리로 출세(?)하기도 점점 어려워 지는 세상이 된 까닭에, 찬양을 잘 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기도도 잘 해야 하고, 전도도 잘 해야 하며, 헌금도 최선을 다해 바쳐야 하고, 헌신봉사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는 현세에서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천국 가서는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찬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찬양 받기를 좋아하시는지, 죽어 천국 가서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원히 해야 하는 것이기에, 찬양의 소중함과 당위성, 찬양의 우선순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교과목 중에 단연코 전공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최고의 과목이 바로 찬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찬양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칼로 무 쪼개듯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찬양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한 두 가지 조건만을 충족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실로 여러 가지 변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그 변수라는 것들도 무슨 과학이나 수학으로 측정 가능한 simple & clear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정과 마인드만 있으면 누구라도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도, 헌금, 전도, 헌신, 봉사 등의 여타 항목과는 달리, 찬양이라는 놈은 ‘음악’이라는 단단한 껍데기를 입고 있고 반드시 이 껍데기를 깨부수고 들어 가야만, 안에 있는 맛있고 말랑말랑한 찬양의 속살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음악이라는 단단한 껍데기를 정복하고 깨부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며, 찬양에 어려움을 느끼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유도, 실상은 이 음악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의 벽’이라는 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서 축하해 줄 때, 그냥 말로 ‘생일 축하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밋밋하고 썰렁하기 때문에, 거기에 곡조를 붙여서 ‘Happy Birthday to you~~’ 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말로 할 때보다 훨씬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어려움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너무도 많이 부르고 들어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But.. 그러나, 생일 축하곡을 매번 다른 곡으로 불러줘야 한다면.. 더욱이 완전 4부로 화음을 맞추어 매주 한 번씩 의무적으로 축하해 줘야 한다면.. 그 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것은 이미 축하가 아니라 부담이며,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 되어 버집니다. 아마도 다시는 이런 생일축하 모임에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벽이다. 어차피 생일축하곡 이니만큼, 가사의 내용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어떤 곡조(음악)로 포장되었느냐에 따라, 쉽고 즐거운 축하곡이 될 수도 있고, 어렵고 짜증나는 기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음악의 벽을 넘지 못하면, 정작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인 메시지(가사의 내용)까지 죽어 버입니다.
찬양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가 옛날부터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곡조의 찬송가를 부를 때면(‘천부여 의지 없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지금까지 지내온 것’ 등..) 절로 감흥이 나며, 가사의 내용이 쏙쏙 머릿속에 들어 와 그야 말로 완전한 ‘나의 노래’가 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이미 너무도 익숙한 곡조가 완전히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가사만 얹어 내면 때문입다. 하지만, 잘 부르지 않던 생소한 찬송가를 부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듣는 곡조 배우랴, 박자 신경 쓰랴, 가사의 내용은 거의 관심 밖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신경 쓰고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와 같은 완벽한 ‘multi-processing’을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한 쪽은 자연히 소홀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곡조와 가사, 즉 다시 말해 형식과 내용,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만 완전한 찬양을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우리 주위에 보면,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유능한 사냥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직 곡조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소위 전공자들이나, 화려하고 감미로운 선율이나,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리듬에 중독되어 말초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일부 CCM 가수들.. 또한 무분별하게 그것을 추종하는 개 교회 찬양 인도자들.. 심지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사들도 곡조의 화려함에 묻혀 그냥 휩쓸려 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반면에, 가사에만 심취하여 음정박자에 무관심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는 일부 나이 드신 노년층 어르신들.. 수 십년 동안 부른 찬송가의 음정박자를 아직도 틀리고 있거나 음악적인 오류나 잘못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부 목회자들.. 이 모든 것들이,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들입니다. 만약, 두 마리 중에 어느 한 마리만 잡아야 할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 그 때는 주저 없이 곡조를 버리고, 가사(내용)를 택해야 하겠지만(사실 할머니들의 곡조무시(?) 찬송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받으시겠지만..) 질서의 하나님, 음악의 하나님, 조화의 하나님께서 당연히 아름다운 선율이 덧입혀진 온전한 찬양을 더욱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곡조 없는 가사는, 앙꼬 없는 찐빵같이 무덤덤하고 맛이 없으며, 반대로, 가사 없는 곡조는, 그야말로 영혼 없는 몸과 같이, 전혀 생명력이 없는 껍데기 장식품에 지나지 않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기형적인 모양이 아니라 아름다운 곡조와, 영혼을 울리는 가사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새롭고 공교한(시 33:3) 찬양이라는 것이 명백한 이상 음악의 벽을 누가 먼저, 누가 빨리 정복하고, 가사의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느냐가 찬양을 잘 할 수 있는 관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장 먼저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음악의 벽을 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음악’ 하면 부르르 치를 떠는 사람부터,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만 봐도 지끈거리며 두통을 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만 잡으면, 음악의 벽을 넘어 찬양을 잘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해법이 분명히 있으며,, 결코 쉽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절대 절망(?)할 필요까지는 없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노래실력(가창력)을 키워야 한다.
이 말만 듣고, 벌써 ‘나는 안돼~’ 라며 좌절(?)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여기서의 노래 실력은, 가수 같은 프로급의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다. 노래를 함께 따라 하며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정도면 되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노래를 못하는 음치(音癡)로 태어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창력의 향상이 가능합니다.
본래 음악적인 재능(음악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적 영향이 크다는 것이 음악계의 정설이나, 그러한 영향이 절대적인 상위 1~2%(음악천재) 및 하위 3%(음치)를 제외한 95%의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자기의 노력과 개발 여하에 따라 상당 수준까지 음악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음대에서 성악을 배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호흡법과 발성법을 제대로 익히고, 음감(音感)을 기르는데 주력한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가창력을 키워 노래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주 재수없게(?) 하위 3% 그룹에 속한 음치가 아니라면 ‘나는 노래를 못해’ 라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변명이거나 거짓말이거나 음악적인 재능을 썩히고 있는 무관심한 부류일 것입니다.
공짜(?) 음악 선생님인 찬양단 리더자를 믿고 신뢰하며 순종하십시오. 짧은 시간이지만 틈틈이 하는 훈련과 연습을 성실히 따라 해 보십시오. 악보를 빨리 읽을 수 있도록 시창연습을 많이 하시고, 개인연습이 힘들면, 최소한 정해진 정규 연습에 절대 빠지지 마십시오. 시간과 돈을 좀 더 투자한다면, 서점에서 얼마든지 음악의 기초이론이나 노래 잘하는 법을 설명한 좋은 책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열심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보와 발전이 없다면.. 연습 할 때마다 음정박자 못 잡고 자꾸 지휘자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미안하지만 하위 3%의 음치그룹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뜻에 따라, 노래의 달란트를 받지 못했습니다. 교회 내에서 찬양단 말고 다른 봉사를 찾아 보세요. 아마도 당신은 우리가 받지 못한 신유,방언,가르침 등의 은사가 있을 지도 모른다. 교회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2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노래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이제 음악의 벽을 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절대 착각하지 말 것은, 가창력을 키워 놓았다는 것이 음악의 벽을 넘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지, 결코 넘은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기초체력을 튼튼히 다져 놓는 것이 선수로서의 기본 조건을 갖추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올림픽 메달을 위한 첫 걸음을 겨우 뗀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창력과는 별도로 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는 TV에 나오는 가수들을 볼 때마다 가끔씩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중이 좋아하는 히트곡을 하나 만들어 내면 그 한 곡을 두고두고 우려 먹으며 엄청난 돈을 벌고, 운이 좋으면 평생 먹고 살 만큼의 부를 챙기기도 합니다. 가수 김정구씨는 ‘눈물 젖은 두만강’ 한 곡으로 평생을 버텼고, 원더걸스는 ‘텔 미’ 한 곡으로 벌 써 몇 달째 정상에 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찬양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늘 새로운 곡을 성도들에게 공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찬양단이 정말로 잘하는 몇 곡을 선정해, 매 주일 그 곡만을 부르며 찬양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매 주일 연습 때문에 마음 졸이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고, 매번 하는 곡이니 완성도도 놓고 실수할 염려도 없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찬양단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이웃한 두 집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한 며느리는, 요리 솜씨는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요리법을 연구하고 배워서 날마다 새로운 요리를 온 가족에게 선보이려 노력합니다. 처음에는 음식이 맵고 짜고 간도 안 맞고 태워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며 날이 갈수록 음식솜씨가 좋아지는 며느리를 보면서 시부모와 남편의 마음은 뿌듯하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집 며느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자신 있는 한 두 가지 요리만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온 가족에게 매일 그것만 먹였습니다. 바쁜 시간에도 그 요리라면 눈 감고도 후닥닥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맛이 좋으니 며느리의 요리솜씨를 칭찬하던 가족들도 매일 똑 같은 음식만 먹다 보니, 완전히 질려서 나중에는 안 먹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는, 며느리가 뭔가 다른 음식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이러한 며느리를 좋아할 남편이나 시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시부모의 눈밖에 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메뉴도 이와 같습니다. 좀 부족해도, 좀 모자라도, 우리가 날마다 연습하고 노력하며 날마다 새로운 최선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여삐 보시는 것입니다. 자신 있게 잘 만드는 메뉴라고 해서 매일 그것만 내놓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음식을 외면하시고 드시지 않는 날이 곧 올 것이며 심지어 완전히 하나님 눈 밖에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닥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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