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찬양팀 영성 훈련

CCM에 대한 편견

예림의집 2008. 8. 27. 06:46

CCM에 대한 편견

 

CCM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한국교회의 정서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몇가지로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CCM은 찬양이 아니다, 가요이다」라는 점이다.
그러나 CCM은 이미 가요와 찬양이라는 형태적 편견을 극복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운행 질서를 거부하는 악한 메시지의 음악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고백에 CCM은 기초한다.
또한 누차 강조해왔듯이 대중이 익숙하게 접해왔던 음악 스타일에 복음을 담는 작업이 바로 CCM이다.
CCM이 가요에 가깝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CCM을 통한 복음화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선행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 하나는 CCM을 교회에서 돈벌려는 하나의 상업 수단으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IMF체제가 들어서면서 우리 CCM 음악시장은 제일 큰 타격을 입었다. 경제위기 속에 문화 소비가 크게 줄고, 이제 막 대중화로 영글기 시작한 CCM시장은 채 무르익기도 전에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숱한 부도의 위기 속에서 현재 CCM 기획사가 문을 닫거나, 또는 가수가 사역을 중단했다는 소식은 없다.
이는 CCM 가수와 사역자들이 이미 상업적 이윤의 여부에 대해 초연해 있다는 증거이다. 또 CCM 가수들의 외모를 놓고 '은혜가 안된다'는 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선교사 비유를 들었지만,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목사 표를 내기 위해 경건한 양복 차림으로 원주민들 앞에 설 수 있는가. 음악이나 외양, 스타일 보다는 그들의 중심을 읽을 수 있는 배려 속에 그들의 사역에 대한 이해를 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CCM 음악에 담긴 가사의 문제들이다.
최근 경향도 그렇지만,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수직적인 가사가 크게 적다는 이야기이다.
또 "아멘", "하나님"과 같은 신앙 용어는 거의 들어가 있지 않는다, 무슨 메시지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필자는 그것을 표현의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싶다.
찬양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
영화롭게 표현하는 방법에는 직설적인 것 말고도 잠재적인 것도 있다. 표현의 다양성 만큼 하나님이 찬양 받으셔야 할 지경 역시 넓어야 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방법과 지경은 넓어야 한다.
태초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염색체가 동일한 것이 없듯, 각자의 신앙고백과 은혜는 다르다.
다양한 은혜만큼 하나님의 영광은 다양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CCM은 이 정신에 굳건히 기초해있다.
CCM은 다양성의 세대를 사는 이들에게 유일한 진리인 복음을 뿌리 내리는 아주 정교한 사역이다.
이는 교회의 적극적인 후원과 협력, 기도가 필요하다.
물론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역이기 때문에 헛점도 보이고, 또 허물도 많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심중에 자리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 그 열정은 세대와 감각, 그리고 신앙배경이 다른 모든 거리를 뛰어넘는 이해의 고리가 되리라 믿는다.

 

CCM에 대한 편견 7

1) 〃이게 무슨 찬양입니까? CCM은 가요에 가깝습니다.〃
가요는 다 나쁜 것일까요?
우선 이것부터 짚어봅시다. 가요 중에도 좋은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하고, 또 이 사회에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그런 노래들도 많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크리스천이 쓴 노래들도 상당합니다.
그것이 결국 나중에 CCM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고요...결국 문제는 말초적이고, 상업적인 그런 노래들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부정하는 그런 노래들도 있고요, 그런 노래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지 무턱대고 모든 가요는 다 나쁘다 이런 식으로 단정하는 사람은 사회 생활하는데 불편이 많습니다.
사실 모든 노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음악의 뿌리도 그랬고요. 사실 이러한 편견의 이면에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이원론'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원론'은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이미 기독교 교리가 생기던 때에 이단으로 정죄받은 것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는 각설하고요, 가요에 대해 필요이상의 거부감이나, 또는 들었다고, 불렀다고, 즐겼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좋은 가요, 좋은 대중음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흘렀는데요, '전도'의 방법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 봅시다.
전도는 종합 예술입니다.
피전도 대상의 모든 것(취향, 사고의 틀, 소망하는 바 등등)을 섭렵해야 예수를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전도할때, 무겁고 장엄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까? 적어도 어린이를 가르치려면 '유유상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네들의 목소리, 의식수준, 표현양식을 본따서 가르치고, 또 어울려야 합니다.
그냥 교리책 들고 가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다 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오늘 사는 이들-특히 문화대중의 소통 양식과 접근 방식에 맞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전제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가요 즉 세상 문화는 다 나쁘다'라는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CCM은 가요와 같은 것입니다. 가요 같은 CCM때문에 예수를 안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교회를 알게 된 사례를 저는 여러번 봤습니다.
또한 잘못된 대중 문화에 빠져있던 친구들이 다시 교회 공동체 안으로 회복하게 되는 역사를 여러분 체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멀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벽, 즉 율법과 범죄함을 허무셨습니다.
결국 CCM의 역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처럼 본의 아니게 가로막힌 교회와 세상의 벽을 허무는 그런 사명을 감당하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2) 〃CCM은 찬양을 이용해 돈 별려고 하는거 아닙니까?〃
CCM은 한마디로 장사가 안되는 종목입니다.
시장층이 얇은 것도 그렇고요, feed back층도 여타 대중문화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열악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안에 자리한 경직된 '거룩 거룩 거룩' 문화가 CCM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풍경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 가수가 앨범을 내려면 적어도 기획사나 아티스트 자신 모두 천여만원의 빚을 지게 되는 것은 보편적인 일입니다.
특히 프로그레시브한 장르들-ROCK, DANCE의 경우는 더욱 심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장사가 안되는' CCM계에서 계속 이 일을 하려고 할까요. 제가 만나본 바, 이들 CCM 가수들은 이러한 것을 '사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은 예수 때문에 모여서 노래하고 힘들여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CCM의 '탈장삿속'은 미국의 경우, 더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Kieth Green이라는 찬양 가수의 경우-사역지로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숨을 거둔 사람입니다.- '자유 판매제'라는 것을 도입했습니다.
자기가 이 앨범의 가치를 평가하는대로 자유롭게 지불하고 사갈 수 있습니다.
물론 돈을 못내겠다 싶으면 그냥 가져가도 되는 그런 제도입니다.
그런데 훗날 Kieth Green의 앨범은 판매순익에 있어서 제 값 주고 사고 판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상업적인 수완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Kieth Green의 건강한 사역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를 바라보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실족하고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CCM은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IMF체제가 들어서면서 각 기획사와 아티스트들은 수익의 평균 50%가량 줄어들었습니다.
'문화'는 '거품빼기'의 0순위로 보는 것이 사회 전반의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역을 관두거나 다른 일로 전향한 가수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어차피 이 일을 '돈' 바라보며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상업성에 대한 우려'의 잣대를 가난하고 배고픈 CCM사역에 들이댈 것이 아니라 문화적 마녀사냥에 힘쓰는 일부 세력들을 향해 던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계 안에서 제일 장사가 되는 것은 '누구 노래는 New Age더라...'하는 식의 '카더라' 옐로우 저널리즘입니다.
90년대 초반부터 기독교계에 몰아닥친 대중문화를 향한 맹목적인 혐오감과 반감 주입으로 돈 챙긴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은 아니지만-결국 대중문화에서 소재가 바닥나자 '복음성가계에도 New Age가 있더라'라는 식으로 문화 혐오주의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이나 잡지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CCM과 상업성...현재로서는 적어도 이 둘은 연관짓기 힘든 것들입니다.
앞으로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불투명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 말고는 돈과 소망도 버린 사람들...그 사람들에게 상업성의 올무를 던져서야 되겠냐는 생각입니다.
3) 〃CCM가수들을 보면 은혜가 안됩니다. 옷차림이나 하고 다닌게 그게 뭡니까? 경망스럽게...〃
CCM 가수들이 지나치게 외양에만 관심을 쓴다...이런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는 그들의 외모만 보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고백하고, 노래하는 대상까지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것 처럼 쉽고 간편한 것이 없습니다. 솔직히 사람의 원초적인 판단 기준도 외모입니다.
그러나 총체적인 문화 사역인 CCM을 가수들 개개인의 외모만 보고 판단을 한다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ROCK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이 목사님같은 정장차림으로, 드럼을 친다고 생각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특히 ROCK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줄 수 있을까요. 같은 논리입니다.
CCM 가수들이 외양세에 신경을 쓰는 것, 또 나름대로 가꾸는 이유를 가수 개인의 감각적인 매력을 키우려는 것으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모든 찬양 사역자들이 하나같이 똑같이 정장차림에 똑같은 말씨에 똑같은 노래 스타일로만 한다면 이 땅에 다양한 문화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문화섭리를 아주 간편화, 단순화 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할례받고, 누가봐도 분명한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 선생은, 어떻게하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심을 수 있을까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문화양식을 맞춰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CCM 사역자들의 외양과 스타일은 바로 이러한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경건의 모양새는 외양이 아닌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겉만 보지않고, 중심까지 보는 것. 이것은 말 처럼 쉽지 않습니다.
4) 〃CCM은 따라부르기 힘듭니다. 교회에서 쓰지 못할 노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 나라 복음송 문화는 교회에서 얼마나 활용가치가 있느냐에 따라 분별됩니다.
제가 교회 찬양집을 지난해 편집할 때 <보인다 보여 들린다 들려> 악보를 실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 불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찬양집 한 권으로 봐서는 종이 낭비를 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그 노래가 '필요없는 찬양'일까요. 교회 내에 찬양 예배 인도자들은 새 찬양에 민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찬양을 알리고 보급하는 일을 '사명'처럼 압니다.
그래서 아무리 CCM 가수들이 콘서트를 자주 열고, 교회 집회에 다녀도, 개 교회 찬양 인도자를 통하는 것 만치는 못합니다.
그러나 찬양 예배 인도자들 중에는 어렵고 복잡한 노래를 가르켜 '이게 무슨 찬양이야?'하며 단정 비슷하게 비판합니다.
사실 교회 만큼 노래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곳도 없습니다.
모이면 꼭 서너곡 씩의 노래(?)를 부르게 되니까요...대중 음악 가수 중에 어렸을때 교회 한 두번 안나가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바탕에는 회중 찬송의 역할이 크지요...엇박자도 많지않고, 멜로디 라인도 단순한 음악들...그것을 통해 찬양 문화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CCM들은 참 따라부르기 힘듭니다. 거기에 ROCK이 나오고 RAP까지 등장하니 골치가 아플 지경입니다.
찬양 집회 현장에서 쓰이는 노래는 점점 줄어가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기 ?문에 CCM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경솔한 것입니다.
'효용성'의 가치만으로 문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큰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문화적 경쟁력 차원에서 '점점 어려워지는 CCM'을 이해하는 포용력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요즘 '난해해진 CCM'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도 따라부르는 요즘 세대들의 높아진 감각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5) 〃CCM 가수들은 가요하려다 안되니까 CCM하는거 아닙니까?〃
대중음악을 하다가 복음성가계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윤향기 목사, 윤형주 장로, 이종용 목사...또 요즘에는 대중음악 가수들이 CCM앨범을 내거나, 또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조한, 태사자, 조관우, 손지창, 유리상자, 신형원 등등 입니다.
이들이 복음성가나 CCM을 하는 이유는 이 쪽에서도 돈을 벌어보려는 심산이나, 또는 가요가 안되니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계산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기가 있고, 없고, 젊고, 늙고 간에 이들은 CCM을 부르고 싶어했고, 대중음악계의 치밀한 상업성와 인기의 이해타산 논리를 무릅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용기'라고 보고 싶습니다. CCM을 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교회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통해 배출된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이들은 자기 삶의 달란트와 비전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에 몸담기로 체계적으로 헌신하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음악'이 그들의 목적이었다면 CCM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음악이 목적이되고 CCM을 수단으로 삼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역이 목적이 되고, 음악이 수단이 된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헌신의 귀감이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 CCM 가수중에는 또 음악적 기량을 살려 대중음악계로 진출하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CCM에서 인정받았으니 이제는 가요계로 진출해보자는 심리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합니다.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원대한 꿈...
바로 그것이 그들 삶의 중대한 목적인 것입니다.
6) 〃CCM에는 '하나님', '예수님'같은 신앙용어가 없습니다. 이게 찬양일 수 있습니까?〃
우리의 정서상 찬양은 '수직적'인 것으로 인식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하나님을향한 우리의 고백이 '찬양'의 온전한 틀로 인식되어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평적인 노래'...
성도 사이에 권면과 교제의 이야기를 가사화 한 것에 대한 것은 '찬송'보다는 '찬양(복음성가)'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입니다. 찬송가 중에도 '수평'적인 노래도 많습니다.
<성도여 다 함께>,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 가사의 대상이 사람에게 향해있는 노래가 곳곳에서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 '예수님', '할렐루야', '아멘'과 같은 신앙용어가 배제되어 있는 노래에 대한지적인줄 압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용어가 들어가 있지 않는 노래는 찬양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찬송가 <어둔 밤 마음에 잠겨>는 찬송가에서 빼야 할 노래입니다. 그야말로무지에서 오는 편견입니다.
찬양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영화롭게 표현하는 방법에는 직설적인 것 말고도 잠재적인 것도 있습니다.
표현의 다양성 만큼 하나님이 찬양받으셔야할 지경 역시 넓어야 합니다.
아마 똑같은 가사의 노래에 곡조는 성악이나 고전 클래식 취향이라면 이런 문제제기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입니다.
7) 〃CCM과 찬양은 구분해야 합니다. CCM은 또, 예배에 쓰일 수 없습니다.〃
CCM은 기독교적인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찬양'과는 다르며, 구분지어야 한다.
그러기에 예배에 쓰일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면서 '찬송가'만이 예배에 쓰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서 '찬송가'의 존재는 특별합니다.
예배에 꼭 필요한 경전-성경과 같은 위상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찬송가'를 감히 '성경'과 같은 반열에 놓는다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이 담긴 책입니다. 그러나 '찬송가'는 찬송가 공회 회원들이 모여서 선곡해서 넣은 곡입니다. 인류 역사의 절대 진리와, 일개 노래책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찬송가에 담긴 곡이 영감이 있다는 논리도 편견입니다.
찬송가 중에는 1800년대 미국 기독교 부흥 역사때 부를 '찬송곡'이 없어서 당대 유행가에 가사만 기독교적으로 바꿔 만든 노래가 상당합니다.
특히 고난주간에 부르는 <오 거룩하신 주님> 멜로디의 경우는 독일의 선술집에서나 부르던 사랑노래였습니다.
제 말의 요지는 찬송가를 우습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가치기준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노래에 담겨진 가사와 복음을 담은 진리이지, 스타일이나 음악적인 감각은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CCM은 그런 의미에서 정신만 복음에 튼튼히기초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예배에 쓰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 수평적, 수직적이건 말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의 지경을 넓히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CCM은 대중음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못 쓴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찬송가도 전형적인 대중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대중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것이 '대중음악'이라면 찬송가가 더 실질적인 대중음악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건 찬송가에 있으니까 찬양받으셔야 할 것이고, 이것은 경망스러운 CCM이니까 예배에 쓰이면 안돼...하는 식으로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
2천년전 바리새인들의 그것과 무슨 차별이 있는지 곰곰히 돌아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