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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저는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주님에대해 , 하나님에대해 잘 알지 못하는 초신자입니다.

예림의집 2008. 8. 28. 07:45

삼 위 일 체


1. 삼위 하나님이란 세 독립된 개체를 소유하신 하나님의 독특성을 말한다. 한 하나님(단수)이 세 개체(복수)로 자존하셨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1:26)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11:6)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6:8)


【설명】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독립된 세 개체이다. 세 개체가 피차 똑똑히 구별된다. 그러나 신성의 속성은 세 개체가 한결 같이 공통(하나)이다.



2. 하나님의 일체란 독립된 세 개체의 본성(신성)이 한결 같이 하나(공통)라는 뜻이다.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4)

●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슥14:9)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12:29)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요5:44)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딤전2:5)

● 예수께서 이르시되....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막10:18)


【설명】 히브리어는 복합적인 하나를 나타내는 ‘에하드’와 절대적인 하나를 나타낸 ‘야히드’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성을 표현할 때 ‘에하드’만 사용하였다.)



3. 삼위 하나님의 일체가 그리스도의 세례, 세례명령, 축도에 나타났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6-17)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아들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19)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고후13:13)



4.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본성(신성)이 일체시나 독립된 개체의 하나님이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10:30-33)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6)

●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5:1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히1:8)

●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요일5:20)

●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8:58)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1:2-3)



5.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과 일체(신성)이시면서 독립된 개체의 하나님이시다.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행5:3)

●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6)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10-11)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4)



6.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속 사업을 분담하여 일하신다.


① 아버지 하나님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7)

●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단7:9)

●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로 높이 뜨쎴도다 (시18:10)


② 예수 그리스도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는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1:18)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에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이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라 충만하더라 (요1:14)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③ 성령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6)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18)


 

성육신의 선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경건의 비밀"이라고 불렀다(딤전 3:16 참조).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이땅에 오신 사실은 정말 신비한 일 중에 신비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인류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어 주시기 위하여서는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셔야만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대속의 죽음 못지 않게 중요한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이신가를 온 우주 앞에 보여 주시는 일이었다. 그렇다. 이 지구 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 즉 천사들에게도 보여 주시는 일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품성을 천사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 어폐가 있는 것 처럼 들리지마는, 이 일은 하나님의 왕국이 영원히 평안하고 안전하게 되기 위하여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


죄는 이 지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죄는 인간이 시작한 것도 아니다. 죄는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죄의 시작은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루스벨은 반역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의 정부를 파괴하려 하였다. 그는 힘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은근히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시키는 말을 퍼뜨리면서 그의 음모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 대하여 퍼뜨린 오해는 참으로 큰 상처였다. 이왕 생긴 오해는 그 소문을 들은 자의 마음 속에서 힘있게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나타내어 보여 주는 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말이나 가르침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건이 생겨야 하는 것이다. 그 즈음에 이 지구가 마귀의 반역 운동에 휘말려 들게 되고 드디어는 인류의 시조가 죄를 지어 타락하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께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상사태 위에 또 다른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구속하시는 일을 시작하시면서 동시에, 이 지구를 온 우주에게 하나님의 참되신 성품과 사단의 진정한 모습을 폭로하는 장소로 삼으신 것이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께서 동시에 그의 지상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과연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귀한 기회로 삼으신 것이었다. 성육신의 의미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우리가 구원받아 하늘에 올라간 후에도 계속 연구해 나가야 할 주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대신 그 형벌을 치루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어 오셨다. 또한 33년 반 동안 이 지구에 사시는 동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간에게 자세하게 보여 주셨다. 또한 천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과연 어떠한 속성과 품성을 가지고 계신지를 보여 주셨다. 마귀의 공격과 계략들을 받으시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우주의 천사들에게 놀라운 계시가 아닐 수가 없었다. "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정말 저렇게 사랑과 공의가 충만하신 분이시구나!" 라고 그들은 소리쳤을 것이다.


그러한 동시에 온 하늘은 마귀가 얼마나 간악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실재로 보게 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퍼뜨린 오해와 고소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온 하늘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하늘에서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생기게 된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 인류를 구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죄로부터 영원히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감하하고 찬양할 일인가! 


그런데 예수님의 성육신이 이루어 놓은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업적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죄에 빠진 인류들에게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소망을 준 사실이다. 죄의 용서와 구원은 물론이고, 죄인이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동안에도, 마귀에게 잡혀서 종노릇 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사단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신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셔서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신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주께서 말씀해 주시었다(요 16:33; 요일 5:3,4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 뿐만이 아니라 죄에 노예된 사슬을 끊고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렇게 질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왔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그 육신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육체와는 다른 육신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께서 가지고 태어나신 그 육신은, 우리와 한결같이 같은 시험을 받게 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육체, 즉 인간과 같은 육신을 가지고 오셨다고 선포하고 있다(히 2:9-18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에게 죄와 마귀를 이기고 승리 할 수 있다는 힘있는 논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구원과 용서를 상징하고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새 생명으로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 처럼 예수의 생애는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사실과 또 더 나아가서 어떠한 육신을 가지고 오셨는지를 연구하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와 하나님을 묶는 황금고리와 같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천연계는 완전하였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부조화의 그림자가 없었다. 말 그대로 완전한 아름다움의 조화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리고 온갖 종류의 식물들로 가득 채우셨다. 그 사이 사이로 흐르는 물들은 온 누리를 적당히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은 소리내며 나는 각종 새들로 채우시고 무늬들로 수 놓는 구름들로 채색하시었다. 비록 이 지구가 타락하였지마는 이직도 그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보는 이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러할 진대, 이 지구가 그 본래의 상태대로 회복할 때에 그 아름다움이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계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이기적인 존재로 변해 버렸고, 타락한 인간 밑에서 땅이 황폐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죄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지으신 것을 망쳐 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법칙은 사랑의 법칙이다. 이 법칙이 죄로 인하여 깨어져 버렸다. 죄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데서 시작되었다. 덮는 그룹이었던 루스벨은 하늘에서 첫째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천사들로 하여금 창조주로 부터 떠나게 하려고 하나님을 모함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의 악한 속성을 하나님께 뒤집어 씌웠다. 그는 천사들과 사람들을 속이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독재자라고.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불신하게 하였다. 사단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가혹하고 용서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는 이렇게 하여 천사들의 3분의 1과 지구의 인간들을 이끌어 자기와 연합하게 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비애의 밤이 이 세상을 내려 덮게 되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의 어두움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이 음울한 그늘이 밝아지고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사단의 기만의 세력이 깨뜨려져야 하였다. 이것은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면 피조물들이 그 분을 사랑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성이 사단의 품성과 대조되어 드러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우주에서 단 한 분 밖에 없으니,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만이 참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실 수가 있었다. 밤같이 어두워진 세상에 치료하는 광선이 떠 올라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이다.


구속의 계획은 타락한 이후에 세워진 사후 계획이 아니었다. 이 계획은 영원 전부터 감취었다가 알게 하신 비밀의 계시였다(롬 16:25 참조). 예수의 오심은 자발적인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머눌러 계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는 하늘의 보좌에서 내려 오셨다. 그리고 어두운 이 세상까지 내려 오시었다. 우리의 마음의 보좌에 앉기 위해서 그 머나먼 길을 오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사랑이다. 이번호에는 이 중요한 성육신에 대한 주제를, 성경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사들로 채웠다. 다음의 기사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시기를 바란다.




 육체에 죄를 지실 때에

술을 마셔본 일이 없는 사람은 술의 맛 때문에 술을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술을 마셨다가 끊은 사람은 그 맛과 영향을 알기 때문에 때로는 술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죄의 유혹이다. 아는 것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다. 죄에 빠져본 일이 없는 사람은 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죄를 그리워하는 것은 전에 경험한 그 죄에 대한 애착심 때문이다. 애착심은 한번 사랑했던 것으로부터 온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그리워하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이유는 성화 되지 못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성화의 경험, 회개하고 거듭나며, 죄를 극복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의를 추구하려는 마음은 있어도, 자꾸 죄로 휘말리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의 소원을"(창세기 4:7) 가진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우리와 똑 같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이 우리와 똑 같은 단계를 거치는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와 똑 같은 경험을 하셨다는 것뿐이다. 똑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다르다. 예수께서는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 죄를 지셨어야 하였기 때문에 우리와 똑 같은 단계를 따라 시험 당하실 수 없었다. 예수께서도 우리들처럼 인간들이 자라나면서 시기별로 경험하는 시험들도 겪으셨지만, 종류에 따라서 우리와는 다른 시기별로 당하신 시험들이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싸움은 우리 자신들과만 연관된 싸움이지만, 예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과와 싸우셔야만 하였으며, 대속제물은 죄를 대신 지기전까지 흠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처럼 죄에 속박되었다가 나온 자아를 가질 수 없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에 가지셨던 자아는 죄를 경험한 자아가 아니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나"는 아담이 타락함으로 "죄의 법"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나"이다. 구속의 경륜의 효력으로 우리 안에 "마음의 법"이 주입되고, "나"가 중립적인 상태를 얻기는 하였지만 "나"는 전과범이었다. "나"는 이미 "죄의 법"아래서 살아보았으며, 죄의 맛을 알고 있었다. 비록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로서 우리를 정죄할 수는 없지만, 아담의 죄의 결과는 유전적으로 인간의 자아의 성질을 바꿔놓았다. 죄를 경험한 "나"는 언제나 그 죄의 맛에 대한 유혹을 받게된다. 술이나 담배를 끊었던 사람들이라도 죽을 때까지 옛 기억의 유혹을 받는 것처럼 죄를 한번 경험한 "나"는 상처받은 "나"가 되는 것이다. 상처받은 "나"는 흠 없는 "나"가 될 수 없다. 죄에 대하여 이미 실패한 "나"의 흔적을 가지고는 흠 있는 우리를 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께서 우리와 똑 같은 상태의 "나"를 가지고 계셨다면, 흠 있는 양을 치는 목자가 되시지 못하였을 것이다. "흠 없는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서는 우리처럼 전과범의 "나"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었다. 죄에 대하여 완전히 깨끗한, 순결한 "나"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처럼 그 안에 "죄의 법"과 "마음의 법"을 모두 가지고 계셨지만, 성화 된 자아, 즉 흠 없는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셨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단지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의 자격을 주는 것이었으며, 예수께서도 우리처럼 전과범의 나를 경험하는 시험을 통과하셔야만 하셨다. 즉 죄를 아는 가운데서 죄의 유혹을 견디는 시험이었다. 이 일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부분에서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로마서8:3)심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험을 당하심으로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 당해야 될 모든 남은 시험들을 경험하실 것이었다. 즉 죄의 결과와 성향으로 인한 시험을 당하시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죄를 대신 지셨던 방법은 인간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는 것과 달랐다. 사람이 친구의 죄를 대신 지고 법의 집행을 받는다고 친구의 죄가 실제로 그 사람의 죄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서류상으로 죄목이 옮겨지는 것뿐이지 실제로 그 죄를 지은 것처럼 마음과 몸의 상태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마약을 하고 붙잡힌 사람을 대신 하여 형을 받는 다고 하여도 그 마약의 효과가 그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 예수께서는 죄를 서류상으로 지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실제로 예수님의 육체에 옮기셨다. 모든 사람들의 죄는 예수께서 친히 지신 것처럼 예수 안에 들어왔다. 인류의 죄는 예수님의 몸과 마음에 융화되어버렸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죄인 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육신에 죄를 정하시는 것은 단순히 육신에 죄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당해야 할 모든 결과들을 실제로 느끼는 일이었다.

스스로는 완전하였던 예수의 자아는 우리 때문에 죄로 물들어지고 죄의 법 아래 사로잡혀 갔던 경험을 느끼게 된다. 흠 없었던 예수의 자아는 서서히 우리들의 죄를 지시기 시작함으로 더럽혀지고 죄의 참혹한 결과를 느끼게 되었다. 이제 흠 없는 양으로서 죄를 지시는 의무가 시작된 것이다. 눈처럼 희었던 예수의 자아는 점점 검게 변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것을 느낀다. 이제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느낀다. 한 두 가지의 죄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바로 자신이 지은 것으로 느낀다.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붙드시는 임재의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은 범죄자들과 같이 취급을 당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고 예수의 마음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마 26:38) 되었다. 이제 예수의 자아는 죄의 유혹을 받게 되었다. 세상 모든 악인들의 죗된 경험이 예수의 자신의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악인들이 죄를 지음으로 빠졌던 깊은 흑암과 연약성이 예수의 자아를 누른다. 이제 예수의 자아는 셀 수 없는 인류 전체의 죄로 인하여 타락되어지고, 연약하여지고, 망가져 버린 자아가 되어 버렸다.

사단은 그 연약성을 이용하여 십자가를 거절하도록 유혹한다. 이제는 알고 있는 죄 즉 자신의 죄처럼 되어버린 그 죄의 결과들을 이용하여 예수를 유혹한다. 인류의 죄가 만든 반역과 투쟁의 정신이 예수의 육신에서 꿈틀거린다. 사단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거절하고 자신을 살리도록 유혹한다. 인류의 죄를 대신 지기를 거절하고 다시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라고 유혹한다. 예수의 마음은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구하듯 죄의 어두움 속에서 빠져 나오기를 간구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끝까지 육체의 원을 따르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선택하신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6).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모든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셨다. 우리가 당해야 할 영원한 죽음, 영원히 하늘 아버지와 분리되는 죽음을 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공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통하여, 우리처럼 전과범의 "나"를 경험하시었고, 죄로 물든 자아를 통하여 밀려오는 사단의 유혹을 이기심으로 마지막으로 고통과 시험의 인생을 끝내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가 합쳐져서 밀려나오는 죄에 대한 성향을 느끼셨으며, 흠 없는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자아는 망가지고, 더럽혀졌으나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심으로 인류의 완전한 모본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마침내, 로마 병정들의 창이나 십자가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 돌아가시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스가랴 13:7).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

"자녀들은 혈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히브리서 2:14) 하시기 위함이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 같은 인간 되심을 부인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요한2서:7)

베들레헴의 이야기 속에는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로마서 11:33)이 숨겨져 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는 소식이 2000년 전에 온 땅과 우주에 선포되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한1서 3:1,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