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사역을 통해 큰 영향력을 미쳤던 학생자원자 운동의 리더
로버트 스피어(Robert E. Speer)
스피어는 “학생자원자운동(SVM) 정신의 구현자”로 불린다. 그는 존 모트와 두터운 우정을 유지하면서, 모트와 같이 평신도로 해외선교 운동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교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아닌 한 교단의 해외선교부 총무로 46년을 사역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단을 초월하여 기독교계에서 많은 존경을 받은 유명한 인물이었다.
스피어는 1867년 펜실베니아에서 출생하였고, 청교도적인 장로교 환경에서 엄격한 방식으로 양육되었다. 그는 프린스턴 2학년 때 로버트 윌더의 도전적인 설교에 감동을 받아 다른 학우들과 함께 자원자로 ‘서약’하였다. 졸업 후 그는 SVM을 위한 순회 서기가 되었고, 1년 동안 천 명 이상의 해외선교 자원자들을 모집하였다. 그는 자신도 선교사로 나가려고 프린스턴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장로교 해외선교부가 그에게 선교부의 최고 행정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 수락하게 된다. 수락과정에서 그는 여러 가지로 번민하였다. 그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해외 선교를 위해 어려움을 견디자고 외쳐왔는데 자신만 본국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런 핵심 자리에 있으면 해외선교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피어는 활동가이면서 사상가였다. 그는 선교의 가장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목표는 “영적인 것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선교사역의 사회적인 부분의 확대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때에도 중심을 잃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선교지 사람들의 삶을 서구문명이라는 문화로 덮개를 씌우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영생의 씨앗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당시의 다른 선교 지도자들과 달리 교계에서의 여성 사역에 대한 개방된 견해를 지녔다. 그는 “평등의 원칙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가 여성의 평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한 것이다. 여성을 자유롭게 하고 평등하게 대한 이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여성이 교회 외 어느 곳에서 자유와 평등을 허용 받을 수 있는가? 또 자유와 평등의 원래 기점인 교회에서 이것이 부인될 수 있겠는가? 도리어 피선교지의 교회들은 이 점에서 복음을 우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들에게 열어 놓으신 문을 딸들에게 닫지는 않으신다”라고 강변하며 그리스도인 여성들의 차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개선을 촉구한 인물이었다.
70세에 46년간의 사역을 마감한 후에도 그는 10년간 각처를 여행하며 여러 대학과 집회에서 강연하며 해외선교를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만년에 건강이 나빠져 백혈병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임종하기 3주전, 도저히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허약해져 있을 때에도 예정된 강연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선교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자신을 선교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친구가 전기에 무엇을 썼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자 이런 답변을 했다고 한다.
“어떤 녀석이 살았다. 그는 일했다. 그는 죽었다. 또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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