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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2557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7. 6. 14:11

예림의집 2557번째 이야기

따듯한 하루

청년의 집념

평소 건강하던 한 소년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점점 삶에 대한 의지가 상실되고 있었을 때 가족들은 소년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했습니다. 처음에 시큰둥했던 소년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와 함께 지내는 것이 큰 기쁨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만지며 사랑을 주고 싶었고 소년은 움직일 수 없었던 손을 내밀기 위해 매일 노력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손을 보고도 그는 단 한 번이라도 강아지를 만져보고 싶다는 집념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소년은 오른손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의 신경은 다시 살아나 마침내 사랑하는 강아지를 쓰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나아갈 수 있을까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아마도 수많은 고민과 질문에 대한 대답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이 한마디가 아닐까요?

 

예림가족 이야기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2년 3개월 만에 다시 입원하여 왼쪽 폐 수술을 하고 퇴원하던 날, 의사 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퇴원하는 대로 산소통을 신청해서 집에 설치하도록 하십시오. 6개월 뒤, 저를 다시 보러 오시게 된다면, 그것은 기적일 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머리조차 혼자 들 수가 없어서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나는 이제 죽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매일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랑의 장기기증센터에 전화해서 장기기증 서약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시신기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준비를 하면서 두 주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역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이렇게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속에 한 작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울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갈 것인가?’ 저는 두 번째를 선택하고, 그날부터 지팡이 두 개를 짚고서 집 뒤에 있는 호수로 향했습니다. 평소 10~15분이면 오르는 길을
스무 번도 더 주저앉곤 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기다시피 하면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투쟁 끝에 호수를 다녀온 저는, 숨쉬기가 훨씬 편해지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녁마다, 제가 눈을 감기 전에, 통화하고 싶은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것을 알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은 저를 위로하기 바빴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루하루 투쟁하다시피 하면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 사람들과 통화도 하면서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때, 미국의 아가타 박사께서 강의 차 한국에 오셨다가 저의 소식을 듣고 병문안 오셨습니다. 아가타 박사는 남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서, 제가 위로를 해 드려야 했는데, 70대 중반의 이 여의사 분께서는 제 손을 따뜻하게 잡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리암! 자동차가 망가지면 가던 길을 멈추고 정비소로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요? 몸도 마찬가지야. 잠이 오지 않더라도 하루에 8시간을 침대 위에 몸을 눕혀놔야 해요! 그리고 몸을 만드신 분이 수리하도록 기회를 드려야 해요!”(윤선미)

그렇습니다. 그 몸 상태가 이분보다 더 심한 경우가 없지 않아 있겠지만, 이처럼 죽을 날짜를 받아두고 사투를 벌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야말로,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침대 위에 누워 지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분은 죽는 날 죽게 되더라도 그 순간 그때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 결심하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이 이분에게만 일어나리라는 법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장 칼럼

선함과 상반된 자아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옛 자아를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여기서 "유혹의 욕심"이라는 단어는 우상 숭배의 영을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이 우리의 마음을 속여서, 우리의 욕구는 반드시 채워질 가치가 있다고 현혹시킵니다. 또한 우리는 당연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안락을 누려야 하고, 존경을 받아야 하며, 섬김을 받고, 칭찬을 받으며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믿게 만듭니다.
골로새서 3장 9절을 보면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자아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선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 보세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남을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요. 어떻게 그런 선행들이 악한 행동일 수 있다는 거죠?" 성경말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말과 행동들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선한 것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한 남자가 예수님을 향해 어떻게 하면 선한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선함"을 정의해 주셨던 부분을 기억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 말씀을 통해 비록 우리가 가진 자아 개념을 깨뜨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진정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경은 자아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옛 자아야말로 죄의 노예가
되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로마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자아, 종노릇, 죄, 우상 숭배.. 이 모든 것은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를 메마르게 하는 잡초와도 같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시편 31편 9-24).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10절, "연수"는 "햇수" 또는 "세월" 그리고 "나이"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고통 중에 있는 자신에게 은혜 베푸시길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근심과 죄악으로 영육이 쇠하고 대적들에게 욕을 당하며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또한 주님께 피하는 자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자신에게 놀라운 사랑을 보이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우리 또한 본문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의 앞날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바라는 자로서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명령에 순복 해야 할 것입니다.


멸시와 천대(9-13절).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부분을 지탱해 주는 뿌리가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근심 속에서 눈과 영혼과 몸이 쇠했습니다. 슬픔과 탄식 중에 세월을 보내며 가장 단단한 뼈도 약해졌습니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공동체로부터 매장당하는 것입니다. 대적에게 비방당하고 이웃에게는 심히 멸시를 받아 수척해진 다윗을 보고 친구들이 그를 피합니다. 원수들은 생명을 빼앗으려 달려들었고, 다윗은 과거에 그를 기억했던 이들에게
잊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로 구원하실 것을 확신한다고 해서 현실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멸시와 천대의 자리에서도 주님의 공의를 신뢰하는 것이 믿습니다. 우리 또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상황에 처할 수도, 고통의 시간을 맞이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고통을 당할 때 주위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봅시다. 혹시 멸시와 천대를 당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탈출구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발하는 것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신뢰와 찬송(14-24절).
현실이 아무리 암담해도 성도가 기억해야 하는 명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앞날이 주님 손에 있다고 고백하며, 악한 원수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자신을 주님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19절, "누구를 두려워하며 사느냐"에 따라 영원히 거할 곳과 얻을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두려워해 생존과 성공만을 추구하면 평생 만족 없이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형벌을 받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두려워해 세상에
맞서는 사람은 평생 은혜의 바다에 잠겨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품에서 안식합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피하는 이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를 은밀한 곳에 숨기셔서 사람의 꾀와 말다툼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지 않으셔."라고 생각하며 좌절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부르짖을 때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판결을 경험한 성도는 그분을 의지하고 찬송합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는 승리합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없는지 묵상합시다!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강하고 담대하라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해도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니 감사합니다. 깨진 그릇 같은 인생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해 새 힘을 얻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기필코 건지실 내일을 기대하며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주님께 우리의 모든 삶과 미래까지도 맡기고, 강하고 담대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지켜가게 하시옵소서. 거룩한 주님의 군사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상처를 은혜로 여기는 삶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을 망치겠다고 작정하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잘해 보려고 그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잘 몰라서, 완전하지 않아서 그럴 수박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한 사람들의 온전치 못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서운한 부분이 있었다면 있는 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존경하지만 부모님 삶의 그림자도 이해합니다. 열심히 타인을 위해 희생하며 사신 부모님의 딸로서 같이 희생해야 했던 어린 저의 마음을 부모님이 충분히 알아주신 후에야, 저는 지금의 저보다 나이가 적었던 당시 부모님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가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는 매개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어려움을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그분 앞에 염치없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처가 없다"라고 포장했습니다. 하지만 상처는 상처고 은혜는 은혜입니다. 이제 저는 상처 그 자체도 은혜로 여깁니다. 상처가 있음에도 은혜가 크니 상처는 없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삶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인정하면 상처도 은혜가 됩니다.

 

생각 다스리기

집착을 버리십시오


영혼이 어릴수록 집착이 많습니다. 영혼이 어릴수록 완벽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계획이 조금만 어긋나도 속이 상하고 마음에 분노가 가득하여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들은 꿈이 조금만 좌절되어도 온 세상을 잃은 듯이 침통해합니다. 이 세상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여 갖은 난관을 물리치고 꿈을 성취한 사람들에 대한 찬사로 가득합니다. 과연 그들은 성공한 것일까요? 그들은 무엇을 성취했을까요? 또한 그들이 잃은 것은 없을까요?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요? 혹시 그들의 행복은 세뇌된, 환상 속의 행복은 나닐까요? 정말 어떨까요?
아무튼 그들이 그렇게 해서 행복하다면 그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치열한 삶으로 내몰리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입니다. 집념을 가지고 매달릴 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인도하시는 은혜 속에서 앞날을 주님께 맡기고 나날의 삶을 주님과 함께 편안하게 걸아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좌절되었을 때 속상해하고 아파하며 지난 모든 노고에 대해서 슬퍼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할 수도 있습니다. 어릴수록 포기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는 소꿉친구가 이사 가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이 훨씬 많이 있는 것입니다. 중학생이 1등을 빼앗겼다고 자살을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많은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능 성적이 나쁘게 나왔다고 자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 실패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 더 자랄수록 우리는 쉽게 포기합니다. 아프고 쓰린 일도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위로하심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잃으면 잃을수록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주님의 사람이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생각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감옥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노예를 만듭니다. 주님은 자유케 하시는 분이며, 우리는 오직 그분의 사랑의 통치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이 목자 되시고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그분의 양이 될 때 우리는 집착의 감옥에서,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착을 버리십시오!

기도의 횃불

구함으로 시작하는 기도


"어떻게 하나님께 달라고만 합니까?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이렇게 수준 낮은 미신적인 기도는 기복적인 기도이고 이런 기복적인 신앙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축복을 구하는 기도에 대해 기복적 신앙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지자 성도들이 기도에 가면을 쓰거나 기도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하는 기도를 수준 낮은 기도라고 가르치면 그런 메시지를 들은 성도들이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구하지 못하니 기도할 게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좋아할 만한 내용의 기도만 하고, 구하는 기도는 다른 곳에서 하거나 사람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합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그저 하나님의 깊은 임재 안에서 "주님"하고 부르기만 해도 마음에 깊은 은혜와 감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고 주님만으로 만족하다는 뜨거운 고백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먼저 구하는 것부터 하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으려면 기도를 왜 합니까? 도와달라고도 못 할 거면 신앙생활을 왜 합니까?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응답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편 2편 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구하는 기도를 기복적인 기도라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셨고, 구하는 자들에게 축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내용을 봐도 구하는 기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도 관심을 갖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성도님에게는
기복신앙이라고 정죄하는 메시지보다 기도를 통해 오늘 하루를 살아갈 한 줌의 소망이 필요했습니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걱정하는 학생, 깨어진 가정으로 고통받는 자녀들, 부도의 위기 앞에 선 가장, 일터를 잃은 아버지, 병원에 누워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어머니, 갖고의 우울증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가정 등..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어떻게 기복적인 기도라고 정죄할 수 있습니까? 구하는 기도는 기복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의 축복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노래

날마다 감사~㉾

두 가지 감사..!


저명한 미국 시인 에드윈 로빈슨이 감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감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받았을 때 느끼는 갑작스러운 감사의 느낌과 주었을 때 느끼는 큰 감사의 느낌..!" 우리 대부분은 첫 번째 감사에 친숙합니다. 나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누군가 기억하고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보내면 우리는 이들에게 놀라움과 기쁨과 감사를 표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번째 감사가 더 귀하고 더 놀랍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른 이의 인생을 즐겁게 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와 사랑을 보일 수 있는 기회에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받을 때 느끼는 감사보다 주었을 때 느끼는 마음속의 기쁨을 배가시킵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줍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