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그 이름을 부를 때

프롤로그

예림의집 2021. 8. 28. 14:37

프롤로그

 

지난겨울, 1년간의 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1년 만에 되찾은 일상, 출근길에 마주한 순간들은 바로 어제도 겪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책상 위에는 1년 전에 올려둔 수첩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충남 보령에서 지역민들이 함께 모여 영화 <김복동>을 관람하고 감상을 적어 보내준 것입니다. 수첩 안에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로 영화에 대한 소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할머니, 꽃으로 나비로 다시 우리 곁에 와주세요." "영화를 보고, 참 부끄러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당한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할머니의 이름을 꼭 기억할게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김복동 할머니, 그 희망, 이제는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피해자로만 알고 있던 김복동 할머니를 이제, 인권운동가로도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잊지 말아요.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저 영화를 잘 봤고,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내용일 뿐인데, 이상하게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영화를 개봉한 지 2년이 지났어도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잊힌 줄 알았던 울림이 다시 살아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처음 이 수첩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감정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영화 <김복동>을 만들며 느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 이 수첩 한 권으로 모두 깨어나는 듯합니다. 영화를 제작하던 그날들,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도 되살아납니다. 그렇게 살아난 기억들이 멍해진 마음을 붙잡고 뒤흔들어댑니다. 잊고 살았던 거냐고, 묻는 듯합니다.

2019년 영화 <김복동>을 개봉하고 학교와 지역 공동체 상영을 위해 전국을 다니며 학생들과 활동가들을 만나는 일을 겨우내 계속했습니다. 누적 관객 수 89,011명(2019년 12월 23일 기준, www.kobis.or.kr)  욍 공동체 상영으로만 1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는 것은 어쩌면 영화 <김복동>이기에 가능했던 결실이었습니다. 그해 12월 26일, 영화 잡지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한 해의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듬해엔 아팠던 몸을 회복하느라 1년간 휴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김복동"의 정신은 훼손되고 찢기고 짓밟혔습니다. 2020년 영화 <김복동>이 제7회 들꽃 영화상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들꽃" 때문인지 시상식장에서 급기야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게 조심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적어도 영화를 만드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정리해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영화 <김복동>을 통해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처럼, 이 기록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그렇게 쉽게 끝나고 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김복동>은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제작되었거나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오로지, "김복동"이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이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스며들게 하고 싶은 마음분이었습니다. 이런 바람은 함께 영화를 제작했던 김근라 작가, 윤석민 편집감독, 김기철 촬영감독, 최기훈 기자, 신동윤 피디도,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의 다큐 제작을 처음 제안한 몽구 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영화를 개봉한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뜨거웠던 2019년의 시간들을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