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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못 견뎌하는 조급증

예림의집 2021. 8. 27. 21:32

평범함을 못 견뎌하는 조급증

 

분주하고 산만한 마음은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의 일기에 담임 선생님이 친절하게 답글을 달았습니다. "윤지야, 아빠가 잔소리가 심하신 모양이구나.." 한 페이지당 20줄 자리 일기장에 어린 제가 "잔소리"란 단어를 무려 21번이나 썼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글씨로 시작해서 점점 더 큰 글씨로 써 내려갔습니다. 마치 아빠가 확성기에 대고 잔소리를 질러대는 것처럼. 나중엔 거꾸로 자기가 확성기에 대고 아빠에게 소리 지르듯, 일기는 잔뜩 신경질이 담긴 문장으로 끝납니다. "아빠가 양치질하라고 해서 내가 양치질을 하고 있으면, 또 양말 신으라고 한다. 나보고 도대체 뭘 하라는 거야!" 아내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할 일을 자꾸만 말로 챙기는 것입니다.

내 편에선 그저 아이들의 일상을 챙기기 위해 순서대로 하는 말일뿐입니다. 그러면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고, 세수하고, 묵상하고, 밤 먹고, 양치질하고, 옷 입고, 가방 챙겨서 가면 됩니다. 늘 반복하는 일들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마음에 뿌듯함이 밀려오고, 이제 식기가 수북이 쌓인 개수대로 향합니다. 설거지를 깨끗이 끝내 놓고 '여유 있게 말씀 묵상해야지' 하며 서두릅니다. 설거지를 잽싸게 마치면, 어느덧 지친 몸을 위로하고자 커피를 한 잔 내립니다. 그 한 잔의 커피가 주는 묘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다 보면 아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갈아입고 내던져진 옷가지들, 엉망으로 꽂혀 있거나 나뒹구는 책들, 책상 구석에 벗어던진 양말들.. 금세 커피 한 잔 뒤의 할 일은 까맣게 지워집니다.

그래, 내가 출근하기 전에 이 집구석을 죄다 정리하고 나가리라. 안방에서 춘녀 방으로, 다시 춘돌이 방으로 흩어진 빨랫감과 어질러진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이 피곤하고 무의미한 일들을 어서 마저 끝내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하는 조바심에 뒤쫓깁니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의 평범하고 하찮은 일들을 빨리 해치우고 나서 뭔가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하겠다며 자주 조급해합니다. 그 결과, 평범한 일상 가운데 찾아오시고 그 평범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여유를 잃어버립니다. 자신이 계획한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하지 못해 불안해하고, 불만에 휩싸여 불평합니다. "평범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뿌리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조급한 성향 때문이다"(마이클 호튼). 묵상은 평범함의 토양 위에 뿌리를 견고히 내립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은 결코 묵상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