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0:8-11).
쓰기만 하고 달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달기만 하고 쓰지 않다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두려운 심판만 선포된다면 주의 복음이 아니고 사랑과 위로를 전한다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제거해 버린다면 그 역시 가짜 복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쓰지만 결국 그 쓴 말씀이 입에 달콤한 꿀 같고,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고 안식을 주지만 그 자유는 배에 쓰디쓴 고통을 가져온다. 진리는 달콤한 꿀이면서 동시에 쓰디쓴 쑥이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진리가 우리를 얼마나 당혹하게 만드는지!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 영혼에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는지!
오늘날 달콤한 꿀 같은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가? 과연 성도들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를 찾고 있는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편 119:103)." 이런 고백이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오늘날 성도들은 더 이상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좋은 먹거리, 눈을 끄는 볼거리, 즐거운 일들, 건강과 외모가 관심이다. 삶이 우울하고 고통스러우나 말씀에서 위로를 찾지 못한다.
이미 세상에 말씀의 위로보다 나은 대안이 너무 많다. 말씀은 쓰고 답답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지고 이 말씀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와 즐거움이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말씀이 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말씀이 달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말씀이 달콤한 꿀과 같다는 사실을 오해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여기니 달콤한 말씀 대신 입에는 달지만 결국 독이 되는 패스트푸드만을 찾게 된다.
달콤한 말씀을 대신하는 세상의 음식들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지 못하고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없다. 달콤한 말씀의 맛을 잃게 만드는 세상의 음식들은 당장에 엄청난 환락을 주나 결국 영혼과 육체를 파괴하는 해로운 마약과 같다. 어찌 성도가 이 어둡고 위험한 세상을 살면서 말씀의 위로와 기쁨을 찾지 않을 수 있는가! 주의 달콤한 말씀을 경험한 종들이 성도들에게 전하여 그들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알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성도들이 세상의 달콤함과 근원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달콤함 안으로 들어올까!
달콤한 말씀은 쓰다. 쓰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다. 오늘날 쓰디쓴 말씀이 사람들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고 말씀 사역자들이 임의로 말씀의 쓴 부분은 다 제거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달콤한 부분만을 가지고 말씀의 위로와 평안을 남발하고 있다. 이미 달콤하나 독이 되는 세상 음식들에 길들여진 성도들에게 쓴 말씀을 마음대로 변질시켜 사람들이 욕망하는 달콤한 것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제 오염된 음식에 길들여져 몸과 영혼이 병들고 입맛을 버린 성도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쓰디쓴 약과 같은 말씀인데, 질 낮고 해로운 달콤함을 주면서 그것을 말씀의 위로라고 속이고 있다. 십자가 없는 영광, 회개 없는 위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제자도, 슬픔이 없는 즐거움, 책망이 없는 칭찬이 말씀의 진리인 양 알려져 있다. 하나님의 진리라고 선포되는 말씀이 진리를 거스르고 있다.
쓰디쓴 말씀을 임의로 달콤하게 변경시켜 전하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귀가 가려워서 자신의 사욕을 채워주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가짜 평안에 안주하는 성도들 역시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심판의 위기를 경고하는 쓰디쓴 예언의 말씀을 싫어하고 자신의 육체가 갈망하는 달콤한 위로만을 구하는 이들이 어찌 두려운 심판의 날을 대비할 것인가! 쓰디쓴 말씀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경건함과 거룩함으로 살지 않으면서 임박한 진노의 시간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말씀의 사역자로서 큰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사도 요한처럼 입에는 다나 배에서는 쓴 말씀을 먹지 않으면 말씀 사역자로 설 수 없다.
"주여, 주의 교회 안에 주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선포되게 하소서. 고난 속에 달콤한 꿀 같은 말씀의 기쁨이 있게 하시고, 세상의 문화에 젖어 병든 영혼에 쓰디쓴 쑥 같은 치료의 말씀을 주셔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소서. 주의 교회를 오염시키는 거짓 예언자들의 선포의 위험과 고통을 드러내시고 이를 파하소서. 주의 교회를 복의 터 위에 견고히 세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ε♡з하나님께로..ε♡з > 성경,말씀,설교,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택하는 믿음(히브리서 11:23-26) (0) | 2020.08.25 |
---|---|
2020. 08. 16 - 자유와 개방성 (0) | 2020.08.24 |
차별금지의 복음 (0) | 2020.08.18 |
축복하는 믿음(히브리서 11:20-22) (0) | 2020.08.17 |
다섯째 인과 순교자들의 간구 (0) | 2020.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