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성경,말씀,설교,묵상

2020. 06. 07 -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예림의집 2020. 6. 8. 08:46

2020. 06. 07 -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8:1-6).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명기 30:19).
인생은 선택입니다.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사이의 선택입니다. 생명과 복을 선택하는 자들이 있고 사망과 저주를 선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명과 복이라 선택하지만 실상은 사망과 저주에 이르는 길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주를 믿는 것은 생명과 복에 이르는 길을 알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알기 전에 저주와 사망 아래 살았지만 주 안에서 생명과 복의 길을 알게 되었고 그 길을 감으로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망의 길은 무엇입니까? 불순종한 아담의 길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망이 왔고 저주가 왔습니다. 불순종의 삶을 살면 아무리 생명을 원해도 얻을 수 없고, 저주를 피하려 하더라도 피할 수 없습니다. 불순종의 삶을 고집하면서도 생명을 원하는 인생은 어리석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인생의 어리석음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면서도 육체의 욕망을 따라 불순종으로 치닫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알지 못하고 양심의 소리를 거역합니다. 불순종과 저주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를 아는 것의 유익은 불순종의 결과를 알고 불순종을 두려워하고 더 이상 불순종의 삶을 계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을 원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따라 불순종으로 사는 것처럼 비이성적인 삶을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저주 아래 사는 삶을 축복 아래 사는 삶으로 착각합니다. 주를 믿는 것은 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의 저주가 결국 불순종의 결과였음을 알고 이제 단호하게 순종을 선택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저주와 복 사이에서 저주를 버리고 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결단을 하고 새로운 삶의 실천으로 들어갈 때 복이 부어질 것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저주의 인생은 끝났고 이제는 축복의 새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욕망에 따라 불순종의 삶을 살아 고통스러웠던 인생을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습니다. 축복의 비결을 알고 실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용서와 영의 새 삶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1-2절).
우리의 지난 삶은 죄와 사망의 법 아래의 삶이었습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사망 아래 놓이게 되었고 율법을 지키려 하나 오히려 율법을 통해 더욱 더 범죄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더 깊이 사망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전의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키려 하든 그렇지 않든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오셨고 그가 우리를 위해 저주를 짊어지고 죽으셨고 믿는 자들에게 죄의 결과를 무효화시켰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정죄 아래서 고통당하던 자들이 우리를 위한 저주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죄 사함,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 아래 살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로 용서받고 의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는다면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죄인이나 주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을 받음으로 이제 더 이상 정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 안에 있습니다.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자신을 정죄에서 벗어난 자, 저주에서 벗어난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제 두려움이 없고 축복의 새 소망 안에 있습니다.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율법이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으로 기능하지 않고 이제는 의와 생명의 법으로 기능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자일 뿐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의인으로서 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부활생명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영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아담의 상태는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속해 있을 때는 율법의 요구를 지킬 수 없고 그래서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 연합할 때 즉 육체가 죽고 영으로 다시 살 때 율법은 이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됩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3-4절).
이것이 새 삶의 가능성입니다.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사는 것, 곧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즉 육신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래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지만 다시 죄 가운에 빠져들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실 때, 다시 말해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을 따라 살 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율법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율법 아래 있으면서 죄의 종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죄에서 해방되어 의를 행하는 의의 종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로마서 6:18).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자는 의의 종으로 율법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율법은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의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의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새로운 삶의 토대입니다. 
 
육신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5-6절).
육신의 생각은 불순종이고 영의 생각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전에 육신으로 살 때는 불순종을 생각하고 불순종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 주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영으로 살게 됨으로 순종을 생각하고 순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육신에 있느냐 아니면 영에 있느냐에 따라 율법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육신에 있을 때는 율법의 요구는 무거운 것이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와 사망의 법으로서의 율법 아래 있기에 성결하게 살기를 요구하는 율법의 요구를 들어도 율법을 거슬러 불순종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의 종인가 의의 종인가에 따라서 생각과 삶이 결정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존재를 바꾸신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입니다. 우리는 영의 생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불순종이기에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과거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영으로 사는 새로운 삶이 주어졌습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제 영으로 순종을 선택하고 그럼으로써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망 아래서 살던 우리가 이제는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이 열린 것입니다. 
불순종으로 저주 아래 살던 우리가 이제 순종으로 생명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 복음의 소식을 믿고 이제 율법에 순종을 결단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살면, 즉 그리스도 없이 불순종의 삶을 살면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열린 축복의 인생은 누려야 합니다. 매일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선택합시다. 불순종의 낡은 습관을 벗어버리고 순종의 새 습관을 입읍시다. 
우리는 과거에 행복을 추구하면서 육신의 생각 곧 불순종의 삶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을 검토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고 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육신의 욕망에 따라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살면 그 결과는 죽음이고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생각의 습관은 그리스도 안의 새 생각과 비교하여 계속 바꾸어 가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욕망을 추구합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생각으로 사망에 이르는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고 따라가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영의 생각으로 율법에 순종하여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고 그것의 놀라운 비밀을 보여 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영의 생각을 하고 영으로 생명의 길을 선택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