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한일서 4:10-13).
사랑의 비밀은 사랑은 받는 것이라고 하신다.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앞서 그가 주시는 사랑을 받고 그 사랑 안에 잠기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는 놀라운 비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분을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사랑이신 그분이 사랑받을 수 없는 자, 사랑받지 못해 외로운 내게 그분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다. 이로써 그분이 사랑이심을, 그 사랑이 기쁨임을, 내가 이제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고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그분에게 선택되어 사랑받는 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분의 사랑받음 안에 나의 인생의 놀라운 변화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나는 늘 크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날 사랑하신 사실에 있다. 나의 사랑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 관계를 주도하신다. 내가 할 일은 그분의 크신 사랑에 나의 작은 사랑을 복종시키는 것이다. 그분이 날 사랑하심을 허락하고 그분의 사랑받는 자로 사는 것이다. 철저한 수동성이 하나님과의 견고한 유대의 비밀이다.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는 늘 그분 아래서 그분의 사랑받는 자로 머무르려 하기보다 그분에게서 자유로워지려 하거나 그분을 내가 주도적으로 사랑하려 했음을 본다. 나는 아들이고 종이고, 그분은 내 아버지이시고 주인이시다. 내가 그분 사랑 안에 자유로워져도 나는 사랑받는 아이이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은 목적이 서로 사랑함임을 듣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마땅히 서로 사랑한다! 받은 사랑의 샘 근원에서 주는 사랑의 샘물이 솟아난다. 사랑받지 못하여 아프고 이기적이고 사랑할 수 없는 자가 크신 사랑을 받아 사랑을 알게 됨으로 이제 사랑하는 자로 변화된다! 사랑의 기적이 여기에 있다. 사랑 없는 세상에 사랑의 빛이 비취고 나르시시즘과 분노의 어둠이 물러가고 사랑을 위한 공간이 창조된다.
사랑받은 자만이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 가운데 서지 않는다면 누가 이기심의 견고한 멍에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분의 사랑이 좁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갇혀 외로운 우리를 나오게 하여 그분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로 연결하신다. 이제까지 나에게 상관없고 그 관계가 불편함과 부자유와 고통을 주던 이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한다.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나의 이웃과 나의 형제는 더 이상 나와 무관하거나 나의 경쟁상대이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나의 사랑받을 자이다. 나를 새롭게 발견하니 형제를 새롭게 발견한다.
사랑의 능력은 우리 안에 없다. 우리는 사랑보다 미움이 더 가깝다. 그러나 사랑받는 자로서 그분의 사랑 안에 살며 그분이 날 사랑하심을 경험할 때 우리 안에 본래 없었던 사랑이 우리로부터 흘러나오게 된다. 사랑받을 수 없어 사랑은 없다고 절망하던 우리가, 우리와 같이 사랑은 없다고 절망하며 독방에서 우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분에게서 난 창조적 사랑을 전해줄 수 있게 된다. 절망적인 우리가 크신 주 사랑의 통로가 되다니!
사랑받음만 알고 서로 사랑함을 알지 못해, 사랑받음의 통로가 막혔음을 본다. 사랑하라고 주신 사랑을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받은 사랑이 주는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받는 사랑의 감각도 사라지는 것을 본다. 이제 받은 사랑으로 더욱 사랑을 베푸는 자 되어야 하겠다.
사랑을 주려 하니 내게 사랑이 없음을 더 크게 느낀다. 사랑을 주려 하니 사랑받음 없이는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가난함을 깨닫는다. 그 은혜의 보좌에서 흐르는 사랑이 늘 공급되지 않는다면 내 안의 고질적인 나르시시즘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그 사랑의 원천과의 연결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자아의 강고한 껍질 안으로 자폐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하다. 늘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랑 받는 자의 정체성이 나의 안식이며 나의 능력이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주여 나로 주 사랑의 온전한 통로 되게 하소서!
'ε♡з하나님께로..ε♡з > 성경,말씀,설교,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노아의 기도 (0) | 2020.03.21 |
---|---|
성경 인물 연구 (0) | 2020.03.21 |
나실인 (0) | 2020.03.20 |
사사 입산 (0) | 2020.03.19 |
생을 즐겁게 사는 원리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