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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예수 그리스도!

예림의집 2020. 1. 15. 19:09

좁은 문,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3:22-30).


예수께서는 당시에 만연했던 위선에 대해 자주 지적하셨습니다. 유대인들 중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매우 거룩한 신앙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회당과 성전의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모든 관습과 율법을 지켰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삶은 흠잡을 것이 없어 보였지만, 내면을 중시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거부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는 그들의 위선을 정확히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여러 동네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주여 구원받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 이 질문의 배경은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좁은 문의 비유를 들면서 그들은 무엇보다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24절). 그런데 그 문에 들어서려는 자는 많으나 통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문은 곧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아버지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경 말씀을 비추어보면 이 사실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이를 더욱 명확히 해줍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자 좁은 문입니다. 이 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진리입니다. 그들은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을 편협하게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다른 종교나 철학은 이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하나님께 가는 가른 길은 없을까요? 진정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께 가기 위해 예수를 통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믿음이 맞는 것일까요? 이때 예수님께서는 직접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사실을 정확히 밝혀주셨습니다. 즉 예수를 통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의 희망도, 죄의 용서도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예수를 통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개혁 개정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영어인 NIV 성경에는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쓰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투쟁"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정적으로 애쓰라"라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운동선수가 상대를 이기기 위해 온 힘과 기운을 소진할 때까지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이런 식의 노력을 쏟아야만 좁은 문을 찾아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 생명을 원한다면 그 문을 찾는 데 반드시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몹쓸 병에 걸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이를 치료할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방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으나, 그것이 자기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고 기간이 얼마나 걸릴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을 찾으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도 바로 이러합니다.

그것은 거저 받는 것이지만 반드시 온 맘을 다해 진심으로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 밖의 일은 뒤로 미뤄둬야 합니다. 즉,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가족이나 친구도 잊어야 합니다. 이때 사탄은 우리를 방해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으로 이르는 문을 찾기 위해서는 사탄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에 열정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이처럼 영생은 우리가 그 문을 찾아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이 좁은 문에 들어가려 시도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이 예수께 나아올 것이나 진실로 구원받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동안 자신을 예수님의 추종자라 주장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설교도 하고 기적을 일으킨 살마도 있었습니다(마태복음 7:22). 

또한 예수님에 곤한 저술가나, 성경학교 및 세미나의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부지런히 예수님을 섬겼지만 자기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문턱까지 이르러 그 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경배하면서도, 결국 그 문을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걸고 애쓰는 자신의 노력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한 것은 바리새인과 같은 자기들의 행위였습니다. 그 문이 얼마나 좁은지에 대해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문을 통과하려면 그들의 모든 노력은 뒤로 미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들의 행위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것은 오직 주님이어야 했는데도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좁은 문이 항상 열려 있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집주인이 그 문을 닫아버릴 날이 올 것입니다. 아직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문을 두드리고 서 있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들이 주인에게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간청하겠지만 그래도 그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로도 영원히 닫혀 있을 것입니다. 그 문이 닫힐 때까지도 아직 그 문을 넘어서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문밖에 서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문이 닫히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기지 않은 죽음으로 그 문이 닫히게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냉담해진 마음탓에 더 이상 그 문을 통과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닫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심판을 받아 그 문이 닫혀 버립니다. 그 문은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와 다릅니다. 주님은 모든 남녀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간청할 것이나 거부당할 그날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노아가 방주를 짓던 때를 떠올려 봅시다. 당시 그 방주에 함께 하자던 노아의 초대를 무시하고 비웃었던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홍수가 덮이자 그들은 노아에게 방주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이 노아에게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닫으신 그 문을 여는 일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늦게 구원을 간구하다 멸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문으로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들어서려고 애써도 거부당할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기회이며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 각자의 구원을 확실히 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날이 오면,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얼마나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었는지, 그리고 도시의 사방팔방에서 얼마나 많이 가르쳤는지를 생각해낼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한 집회에 참가했던 때와 주님께 나아가는 초청에 응했던 때를 떠올릴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치유를 받았고, 정말 열심히 매주 교회에 나와 기도모임에도 참여했으며, 게다가 성경을 읽고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를 기억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진정으로 자기 마음을 열고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실 역시 기억해낼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그들에게는 주님의 이런 말씀이 들릴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27절).

그날은 참으로 비통한 날이 될 것입니다. 주어진 모든 기회를 거부했던 자들은, 이제 그 놀라운 구원의 문 앞에서 거부당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는 그 자리에 앉지 못하고 거부당할 것입니다. 그제야 그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마음이 상심한 채 주님께 간청하겠지만 끝내 거부당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날이 오면 동서남북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이 땅에 널리 퍼져나가, 마지막이었던 자들이 첫째가 될 것이고, 반대로 첫째였던 자들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즉, 주님께 나아갈 첫 번째 기회가 주어졌던 유대인들은 주님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 기회가 이방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땅 끝 구석까지 퍼져나가, 유대인 자손이 아닌 자들이 전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쓰임 받을 것입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유대인들이 "마지막"이 된다 해도 그들이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첫째가 꼴찌가 된다고 해서 꼴찌가 버려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머지않아, 유대민족을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는 하나님의 위대한 운행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예수께서는 오직 소수만이 구원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 너무 오래 결단을 미루다가 구원의 때를 놓치거나, 온 맘을 다해 구원 얻는 일을 우선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을 요구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지금 당장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온 마음으로 주님을 구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잠시라도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좁은 문이 닫혀서 영원히 차단되기 전에 그 문을 찾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함께 깊이 생각해 봅시다.

첫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여러분, 자신이 주님의 자녀인 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둘째, 우리가 구원에 대해 너무 배타적인 입장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해 본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라고 말입니다.

셋째, 우리가 구원을 이해하고 확신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열정을 각자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나눈 말씀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구원의 메시지를 나누는 문제에 대해 어떤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예정론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구원을 받을지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문제는 누가 구원받을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또한 우리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셨고, 또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을 향해 말씀하시고, 때로는 애통해 하시고,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좁은 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고, 여러분에게 끊임없는 시그널을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강단의 설교를 통해서, 꿈을 통해서, 지체들의 권면을 통해서 여러 방편으로 여러분을 좁은 문으로 인도하고, 통과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열정적으로 매일매일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우리가 훈련한 기도와 말씀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2020년은 구원받은 우리가 또 다른 이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방편으로 사용되는 복음 전함의 교회로서의 성도가 되길를 축복합니다. 다 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을 모아 찬양과 헌금을 하시겠습니다. "민족의 가슴마다"


다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 이렇게 기도합시다. 먼저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살마의 마음에 구원의 필요성을 넣어주시길 기도합시다. 혹시 우리 중에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그리고 제일 먼저 구원의 메시지를 받았던 유대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다시 마음을 열어 그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간구합시다. 


"좁은 문으로 속히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가 좁은 문을 통과하게 하시옵소서! 단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게 하옵시고, 나아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족, 친지, 이웃,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귀한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드려진 모든 헌금이 주님의 구원사역에 잘 쓰이게 하옵시고, 주님이 약속하신 복을 내려 주옵소서. 혹시 어려워 헌금하지 못한 지체의 형편을 주님께서 잘 아시오니 더욱더 큰 복으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이곳에서 함께 예배한 모든 지체들과 지구상의 모든 교회 위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