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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사회..

예림의집 2019. 11. 2. 15:49

꼰대 사회..


'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디 나이 든 어른이나 기성세대를 일컫는 은어인데, 이제는 권위주의적이며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성장이 멈춘 어른을 비꼬는 말로도 쓰입니다. 특히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무한 반복하는 이들을 꼰대로 부르기도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어른이 되어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가운데 내면이 자라지 않은 꼰대들이 적지 않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비단 사회에만 국한되는 일일까요?

성경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사용하여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오감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전인격을 사용하여 읽고, 생각하고,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책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고, 손의 촉감으로 만져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책을 읽어 주고, 책의 냄새를 맡게 하고, 꿀을 발라 맛보며 느끼게 합니다. 오감으로 성경을 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부모는 임신한 사실을 알면, 아이에게 줄 토라를 사서 읽는다고 합니다. 아이가 앉아 있을 정도가 되면 곡물 풀로 제본한 책 냄새를 맡게 합니다. 책 냄새마저 얼마나 좋은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혀로 핥고 이로 깨물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붓에 꿀을 발라 토라 말씀을 써 놓고 핥게 하며 "참 달지? 하나님의 말씀은 이 꿀처럼 달단다!"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나는 유대인 부모처럼 하지 못합니다. 아들과 성경을 읽을 때면, 으레 녀석들은 '각자 읽자'라고 제안해 옵니다. 그럼 알아서 정해진 분량을 읽으라 하면 5분도 채 안 되어 일어섭니다. "다 읽었어요!" 그 말에 넘아갈 내가 아닙니다. 매서운 눈빛에 험악한 얼굴로 "소리 내어 읽어!"라고 위협하면, "왜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데? 그냥 눈으로 보면 안 돼요?" 하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이쁨 되면 아빠의 마음에 긍휼은 사라지고 분노가 들끓습니다. "어서 큰 소리로 읽어!"

오늘날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감각기관은 눈입니다. 시각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아라' 하지 않고 '들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성경을 뜻하는 '미크라'가 '소리 내어 읽는다'라는 뜻입니다. 곧, 성경은 낭독하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쇄술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함께 모여서 경전을 낭독하는 것을 듣거나 랍비들이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들음으로 읽었습니다. 귀, 눈, 입, 코, 혀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성경을 읽는 으뜸 기관은 바로 귀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신명기 6:4). 하나님은 거듭 "들으라"라고 하시며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라고 가르치시지만, 우리는 뉴스만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귀 기울여 듣기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데 익숙합니다. 생각하고 말하기보다 느끼는 대로 말하는 데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면서 자기표현을 하는 통신 수단은 발달하지만, 정작 의사소통은 더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통신 수단이 발달할수록 말하려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들으려는 사람들은 적기 때문입니다.

리더의 권위는 경청에서 나오는데 정작 국민의 아픈 탄식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리더십'은 한 사회를 불행하게 합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을 가졌지만 들을 수 있는 귀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유가 없는 꼰대들의 미숙한 자기주장은 공동체를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습니다. 왜 이렇게 주변에 귀 기울일 줄 모르는 꼰대가 많아지는 걸까요? 사회만 그런 게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렇게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는 '영적 꼰대'가 늘어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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