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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성경공부를 하고 인도하는가

예림의집 2018. 9. 12. 17:06

무엇을 위해 성경공부를 하고 인도하는가


성경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알고, 말씀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말씀을 의도적으로 실천하고, 말씀대로 능력 있게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을 형성하는 데 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노출되고, 하나님의 말씀 사건에 참여함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을 이기는 신념을 확고히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공급받으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하고 좋고 아름다운 진선미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경공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때의 앎은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참여적임을 뜻한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 우리가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신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빛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기회를 얻는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자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내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고자 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앎은 인격적이다. 이 앎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이며 만남을 의미한다. 이 인격적인 관계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관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자리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이해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지 관계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를 깊이 소원하고 헌신하고 그것을 강하게 느끼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파커 팔머(Parker J.Palmer)는 “안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지식은 호기심과 지배에서 유래하는 지식과 연민과 사랑을 원천으로 하는 지식이 있는데, 호기심과 지배가 동기가 된 지식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갈 뿐이며, 사랑으로 발원하는 지식만이 우리를 살리기에 우리가 가진 앎의 지식은 분명 사랑 안에서 시작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사랑하는 이들 사이를 왕래하는 앎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고전 13:12) 아는 인격적 앎이다.


둘째, 하나님을 공동체적으로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앎은 인격적임과 동시에 공동체적이다. 믿음과 앎은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고 지속된다. 기독교 신앙은 한 개인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공동체에 터하고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공동체적이다. 넬슨(C. Ellis Nelson) 은 “크리스천의 신앙은 회중 안에서 형성되고 지탱되며, 풍요롭게 되고 때로는 교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은 반드시 회중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처럼 하나님을 아는 신앙은 신앙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공동체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앎에는 늘 함께 있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앎은 신앙공동체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공동체와 분리된 앎은 불가능하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학생과 학생, 교사와 부모가 함께 있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상상으로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상상적 성격을 지닌다. 캐럿 그린(Garrett Green)은 “상상력은 하나님의 계시를 위한 인간학적인 접촉점이다. 상상력은 계시에 대한 기초나 근거, 선 이해, 또는 존재론적인 바탕이 아니다. 상상력은 단지 계시가 일어나는 자리이며, 계시가 일어나는 방식”이라고 했다. 마음을 이해시키는 형상인 계시는 상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앎은 사색적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앎의 자리는 두뇌가 아니라 마음이며, 이 마음이 바로 상상이 자리하는 위치이다. 하나님은 이곳을 향해 말씀하시기에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이 임하는 계시의 장소이다 계시의 자리는 바로 상상이며 상상의 자리는 마음이다.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이 새삼 어떤 그림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본문 자체가 이미 그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 원문 속에 보다 명확한 그림이 숨어 있기 때문에 원문을 뒤적여야 할 때도 있지만, 한편 성경 본문에 그 같은 그림을 넣으신 이는 바로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말씀을 설교하는 우리가 바로 그 그림들을 사용하기 원하신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의 문을 열고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진리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가 초대받은 성경의 세계는 이야기와 이미지와 상상이 넘치는 신비와 축복의 세계이며, 우리의 믿음의 모험과 상상의 비전을 통해 더 크게 열리는 은혜의 세계이다.

 

넷째, 하나님을 참여적으로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참여적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함에 있어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헌신할 때에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아버지를 가장 잘 안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뜻에 대한 그의 완전한 복종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요 8:55).”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참여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채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헌신과 순종을 전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할 때, 그 과정은 단지 관찰과 분석과 연구가 아닌 경청과 참여와 순종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성경공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목적으로 한다. 인생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잠 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 중의 지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삶의 최우선에 두는 관점의 형성과 강화를 말한다. 관점이란 무언가를 더 큰 차원에서 봄으로써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사물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하게 되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지식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을 배우는 것이라면 관점은 하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으며 그 일을 하셨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는 유혹을 이길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들은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삼상 15:22)”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다. 경청한다는 것은 듣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할 때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하게 되며,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하여 배울 때 지혜롭게 되어 바르게 분별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사야를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사 59:21).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의 신앙이다.

 

(3) 세상을 이기는 신념

성경공부는 세상을 이기는 확고한 신념을 목적으로 한다. 신념은 가치관과 헌신과 동기를 모두 포함한다. 신념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믿음의 확신을 말한다. 어린아이들은 따라 하는 방법을 통해 배운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 자신의 이유들을 가져야 한다. 이 이유들은 바로 신념이다. 성경적 신념은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그것을 실제로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지식과 왜 해야 하는지 아는 관점과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기술은 모두 쓸모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성경적 신념을 가르쳐야 한다. 신념은 관계를 통해 가장 잘 전달된다. 신념은 전염된다. 신념은 그것을 가진 사람들 주위에 있음으로써 생기게 된다. 신념을 가진 교사와 함께 하는 성경공부를 통해 세상을 이기는 신념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가 세워진다.

 

(4)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성경공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추구한다. 에쉴 루스(E. Ruth)는 “말씀은 병든 심령을 위한 의사”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문제에서 벗어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운다. 우리는 늘 어려운 문제 속에서 산다. 어차피 어려운 문제 속에서 산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은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4-17).

성경공부는 단순히 말씀을 듣고 배우고 아는 것에 그치고 머무는 이들이 아닌 말씀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이로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세상을 이기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서의 변화를 기대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수많은 문제에 닥쳐있는 인물들을 만난다. 그 속에서 그들이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우리는 보게 된다.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능력을 빌린다. 문제 많은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않고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말씀을 배운다.

세이무어(Jack L. Seymour)는 여러 사람의 질문을 인용해서 기독교 교육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 교육은 삶을 위한 대화이며, 열려있는 정의와 소망의 미래로 들어가기 위한 신앙과 문화적 전통의 자원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뇌와 가능성으로 기득 찬 역사를 향해 신앙적이 되려고 추구하는 사람들과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랭크 도넬이 물었듯이,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매일의 관계들과 대화들 속에서 신학적이 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가? 토마스 재럴이 질문하였듯이’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이 신앙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가? 신디아 데이톤과 찰스 엘드리지가 궁금해하였던 것처럼, 고난의 울음소리와 파괴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교회는 어떻게 우리가 매일의 관계들에 대해 정직하며 그것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 교육의 핵심이다.

성경적으로 사고하며 신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날의 말씀으로 조옮김하며, 삶의 문제와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사역이 기독교 교육이며, 이것이 바로 성경공부이다.

 

(5)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

성경공부는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가진 사람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의 말 건네심은 변화를 수반하고, 새로운 인간을 만들며, 효과를 낳으며, 결단하게 한다. 우리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웹 4:15)”학생을 꿈꾼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은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웹 4:13).”

인격은 절대로 교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형성된다. 교실에서 하는 성경공부는 단순히 인격의 요소가 무엇이며, 어떻게 인격이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격을 형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환경을 사용하시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어떤 상황 속에 두실 때 그에게 대해 올바로 반응할 수 있다. 인격형성은 더 그리스도처럼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하여 우리의 본성적인 경향을 따르는 대신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응하기로 선택할 때마다 우리의 인격은 자라게 된다.

성경공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격 성숙을 위해 허락하신 상황 들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지식, 지혜, 신념, 능력을 온전히 갖추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인격은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 될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성경공부의 비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지혜를, 하나님의 관점을 보는 지혜에 흔들리지 않는 성경적 신념을, 그리고 성숙한 인격의 사람을 세우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