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입양(spiritual adoption) 선교의 동기와 출발...왜 영적입양선교인가?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절)
1.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제가 필리핀을 처음 방문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인 1999년 여름입니다. 그 때 처음으로 가난하지만 해맑은 모습의 필리핀 어린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을 방문해 본 사람은 누구나 경험한 바와 같이 어디를 가든 수많은 아이들이 방문자를 반기며 환한 얼굴로 다가 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처음 만난 아이는 그 때 나이 일곱 살의 ‘제닐린 프란시스코’라는 여자아이 였습니다. 제닐린은 그 당시에 안티폴로(antipolo)시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살았는데, 현지교회의 주일학교에 아주 열심히 출석하던 아이였습니다. 작고 초라한 집이었으나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저의 손을 이끌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조르던 제닐린의 그 맑은 눈망울이 지금도 제 눈에 밟혀 옵니다.
그 날 저는 동네의 아이들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제닐린과 같이 찍은 사진이 다른 아이들과 찍은 사진에 비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제닐린이 그 어떤 아이들보다 제 마음에 선명하게 들어왔던 것입니다.
선교지에 가보면 특별히 자신에게 보다 가까이 느껴지고 더욱 애틋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아이가 있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바로 제닐린이 그런 아이였습니다. 저는 제닐린에게 ‘나는 다시 너를 찾아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네게 갖다 줄 것이니 기다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는 선교사로 헌신한 상태도 아니었고, 비행기 값조차 너무도 버거운, 가난한 개척교회의 담임목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제닐린에게 이렇게 약속을 한 것입니다.
- 제닐린 프란시스코(왼쪽)는 이제 어느 덧 십 팔세의 아이로 장성했습니다. -
그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섬기던 개척교회의 사역에 매진하느라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하여 2001년이 되어서야 어렵사리 필리핀을 다시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제 손에는 제닐린과 약속했던, 우리가 함께 찍었던 여러 장의 사진들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제닐린에게 했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비록 아주 작고 어린 필리핀의 아이였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왠지 제닐린과의 약속이 꼭 지켜야 하는, 아주 거룩한 사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한국의 수많은 교회와 선교팀들이 필리핀의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약속을 하고는 귀국 후에 지키지 못해 그들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가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며 저를 쿡쿡 찔렀습니다.
드디어 안티폴로시 외곽의 외딴 산골짜기에 도착 하였을 때, 저를 발견한 제닐린은 뛸듯이 기뻐하며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제닐린의 집에는 전기도, 수도도 없습니다. 당연히 전화기도 없습니다. 미리 연락을 하고 간 것도 아닌데, 저 모퉁이에서 저를 본 제닐린은, 마치 2년 동안 제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 나왔습니다.
집밖까지 맨발로 뛰어 나왔던 제닐린은 곧바로 허름한 집안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색이 바란 작은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나와 제 앞에 수줍게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이 년 전에 그 아이에게 건네주었던 저의 명함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럴수가...!’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선 경탄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마음이 일렁거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닐린의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움막 같은
허름한 집이었으며, 그 명함을 보관 할 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닐린은 그 어린 나이에 무려 이 년 동안이나 제 명함을 보관하면서 부족한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족한 한국의 목사를 신뢰하며 기다려준 제닐린의 마음이, 제겐 얼마나 고맙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어찌 보면 제닐린은 필리핀에 사는 작고 가난한 이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게 그 아이를 통해 참으로 크고 존귀한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 작은 사건이 있은 이후, 하나님은 제 마음 속에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선교지의
어린 영혼들을 섬기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과 긍휼의 마음을 제게 크게 부어 주셨습니다.
2. 과연 ‘작은 것’도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는가?
- 필리핀의 '카비테'주에 사는 이 아이는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더러운 시궁창으로 굴러 떨어 져서 오염된 시궁창물을 먹은 이후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 아시아입양선교회
이후로 저는, 일 년에 수차례 필리핀을 방문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사역들을 조금씩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선교단체에 초청되어 제법 규모 있는 필리핀 선교센터의 준공예배에 참여하고 그 기관의 선교전략이나 방향에 관하여 논의한 적도 있었고, 한국선교사님이 설립한 신학교를 방문하여 선교의 비전들을 나눈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저의 마음은 오로지 필리핀의 작고 가난한 어린 아이들에게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인 힘에 이끌려 가듯이...
매년 수차례씩 필리핀을 방문할 때마다 주님은 한두명의 아이들을 제 가슴속에 품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필리핀의 어린 생명 하나를 품는 것이 곧 세계를 품는 것’이라는 주님의 거룩한 뜻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린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뜨거운 관심은, 어느 덧 거스를 수 없는 저의 최고의 선교관심사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필리핀의 ‘까비떼(cavite)'주에 사는 ’안젤라’라는 또 다른 아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다음해에 그 아이의 집으로 찾아 갔으나 이사를 간 후여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저는 그 지역의 어린아이들이 다닌다는 초등학교를 찾아 갔습니다. 다짜고짜 교무실로 들어가서 안젤라의 신상정보를 알려준 후에 학교 측의 도움으로 교무실에서 그 아이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때로는 무식하지만 용감하게(?) 주님의 일을 행하였습니다.
3. 성령의 음성으로 다가온 영적입양(spiritual adoption)이란 후원개념.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은 불현듯 제 마음속에, 그 이전에는 전혀 알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영적입양‘이란 단어를 제 가슴속 깊이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후원이나 지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입양’은 필리핀에서 가장 고통 받는 불쌍한 어린 영혼들을 한국의 개인이나 가족 또는 교회의 공동체가 영적인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 아이와 가족의 구원, 나아가 영적으로 입양된 어린이가 소속된 지역이나 학교등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작은 자‘를 섬기는 선교적 후원개념인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어려움에 처한 어린 아이들을 후원하고 도와준다고 해도, 그 아이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후원은 진정한 의미의 후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주님께서 주신 생각이었습니다.
- 필리핀의 빈민지역인 '뿔로'(PULO)에서는 이렇게 많은 어린 아이들이 맨발로 다니면서 고물을 줍고 있습니다.
'제리코'(사진 왼쪽/김근용,백선희집사 후원)와 '로살린다'(사진 가운데/하늘샘교회/장영진목사 후원)도 거의 매일
이렇게 고물을 주우며 힘겨운 삶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 / 아시아입양선교회
영적입양 후원 아동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며 그분의 거룩하고 참 된 뜻을 위해 바르게 쓰임 받도록 하는 것이 영적입양 사역의 본질적인 목적입니다.
4. ‘작은 자’-그러나 그곳에 주님의 존귀한 뜻이 있었다!
우리는 마 25장 40절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도 거룩하고 존귀한 사명을 이 말씀을 통하여 붙든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의 음성 앞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선교지에서 많은 교회를 건축하고 커다란 프로젝트를 하는 선교사역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은 ‘작은 것도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의 교회나 선교지에서 때론 교회건축이나 많은 선교 프로젝트의 성취가 인정받는 시대인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그 누구도 이 시대의 흐름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용히 우리가 소망하는 목회적 성공이나 위대한 선교 업적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수 많은 선교 과업이나 성취에 앞서, 과연 무엇이 진정 하나님의 뜻이며 기뻐하시는 일인가 하는, 선교사역에 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선교지의 사역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와 같이 보다 크고 원대한 목표나 성취에만 골몰하지는 않았습니까? 이 마지막 시대에, 과연 무엇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뜻인지도 고민하지 않은 채, 우리는 그저 수많은 선교 업적과 성과에 몰두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 선교지에서도 때론 물량주의적인 사고와 가치를 선교의 성공과 축복의 근거로 인식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기준으로 저의 선교사역을 되돌아본다면, 저는 참 부족하기만 합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감사함으로 ‘작은 자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한없이 작고 연약한 것’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도 학교를 세우는 일도 그리고 ‘작은 한 영혼’을 섬기는 일도, 모두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행복한 일임을 깨우쳐 주신 존귀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할렐루야..!
-'뿔로'마을 입구에서 만난 '레슬리'(안성산돌교회/김현택목사 후원)와 '발레리'(안성산돌교회/김현택목사 후원)의 모습.(2011.7월)/아시아입양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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