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성경 교수에서 권위의 기초

예림의집 2015. 7. 13. 11:19

성경 교수에서 권위의 기초

 


지난 한 달간 몸과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랜 동안 교제해오던 한 분과 GTBC교육원을 출범시키는 작업 때문이었습니다.


GTBC에서 GT는 하나님의 진리(God’s Truth)를 의미합니다. 또 하나의 GT인 관통(Gwan Tong)꿰뚫어 통()처음부터 끝까지 계속(繼續)학술(學術) 등에 널리 통()함을 의미하는데 GT는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을 끝까지 읽고 꿰뚫어서 성경의 내용에 널리 통하게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실천하며 이 내용을 또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목표합니다(딤후 3:16-17, 1:9-10, 28:19-20). 그리고 BCBible College를 의미합니다.


아무튼 고등학생 때부터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는 일에 그리고 대학 때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다했었는데 이제 전문적인 성경교사로 거듭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성경통독 프로그램도 개발이 되겠지요.


교회교육 현장에서 성경교수가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가르치는 이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 현대 교회교육의 큰 문제라고 리처드 오스만은 이야기 했는데 그 보다는 성경 자체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아서 일겁니다. <권위>라는 개념은 참 중요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싶어서 개정 증보판 창조적인 성경교수법”(로렌스 O. 리차즈, 게리 J. 브렛펠트)에 있는 글을 소개합니다.


 


 


73,000톤의 철강으로 되었고 그 구조 철골은 자동차 50,000대분을 넘을 것이다. 전기 와이어 1,500마일' 이상이 들어가고 파이프는 250마일이 넘게 들어갔다. 구리 광택 유리 16,000장이 들어가서 그 넓이는 모두 640,000평방피트가 된다. 지상 약 1468 피트 높이110층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바닥 면적이 4,4000,000평방피트가 되어서 101에이커 또는 시카고의 16블럭 넓이와 맞먹는다. 이 건물은 단 하루 동안 626,000 킬로와트의 전기를 사용하며 이것은 2,500명 공동체와 맞먹는다. 그 전체 무게는 445백 만 파운드에 달한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 제일 좋은 빌딩 시어스 타워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엄청난 구조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시어스 타워의 보이지 않는 면이 훨씬 더 본질적이다. 시어스 타워 같은 빌딩은 강한 기초에 의존해 서 있게 된다. 시카고의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 되어서시어스 타워는 지하 암반에 놓인 케이슨[토목용 잠함(潛函)] 위에 건설되었다. 각 케이슨은 65피트 길이에 영구용 철강 덧판을 댔다. 모든 케이슨은 54인치 깊이의 콘크리트판에 함께 결합되어 있고 이 콘크리트판은 시어스 타워 바닥 부분의 층을 덮고 있다. 2백만 입방 피트의 콘크리트 기초 위에 지어졌는데시어스 타워의 기초벽면들에 사용한 콘크리트면 8차선 고속도로 4마일을 포장 할 수 있다.


왜 이런 초고층 빌딩의 건축 데이터를 말하는가? 강하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건물을 위해서는 견고한 기초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꼭 같은 방식으로 성경 연구는 창조적인 성경 교수의 안전한 기초로 역할 한다. 당신이 성경을 가르칠 때 당신의 학생들이 보는 것은 그 성경 수업의 거대구조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 기초이다. 그 기초는 당신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성경 교수는 효과적인 성경 연구에서 시작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2:15). 진리의 말씀을 합당하게 다루는 것이 창조적인 성경 교사에게 본질적인 문제이다. 창조적인 성경 교사는 성경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며자신의 사역을 거룩하게 드려진 신뢰로 이해한다. 창조적인 성경 교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맞은 시간에 적절한 태도를 가지고 대면한다. 그리하여 창조적인 성경 교사는 자신의 교수 행위 가운데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 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존 월튼(John H. Walton), 로리 베일리(Laurie Bailey), 크라익 윌리포드 (Craig Williford)는 독자들에게 성경 교수와 성경을 기초한 교육과정에서 일어나는 권위의 위기를 경고한다. 이 말을 통하여 이 저자들은 교육 과정을 세우는 사람들과 성경 교사들이 자주 성경이 가르치는 실제의 가르침보다는 그 자신의 발달적이고 행동주의적인 목적들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이 단지 교수를 위한 도약대로 사용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성경 교수 행위가 성경의 가르침과 단지 느슨하게 관계된 사실들을 가르치는 데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성경 교수가 인간의 권위로 채색되고 말씀의 능력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이 저자들은 주장한다.


 


만약 성경을 단지 누군가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약대로만 사용한다면 성경의 권위는 팽개쳐지고 만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가르치는데 본문이 사용되지 않는다면그 교사는 그 자신의 권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교육 과정이 하나님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따르고 있다. 바로 이것이 교육과정상의 권위의 위기이다.”


 


월튼과 베일리와 월리포드는 성경 교수에서 권위는 성경의 권위에서 비롯하고 그래서 권위는 또 성경 저자가 가르치려고 의도한 것을 가르칠 때 발견 된다고 논증한다. 두 번째 인용은 이 점을 보여준다.


 


오직 성경이 가르치려고 하는 바로 그것만이 그 본문의 권위를 담아낸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의 연구에서 리더십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만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저자가 독자로 하여금 리더십에 대해서 배울 수 있도록 자신의 소재를 거기에 담고 표현했다는 인상은 전혀 없다. 이 경우로 말하자면, 느헤미야의 책과 생애로부터 리더십을 배운다면성경의 권위가 두드려 맞추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성경적 권위를 주장하기 원한다면, 성경은 원래 성경이 가르치려고 했던 그것을 가르치는 데만 항상 사용되어야 한다.”


 


월튼과 베일리와 윌리포드가 지적한 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교사는 어떻게 저자가 의도한 것을 자신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성경연구 과정에서 발견된다. 해석학의 기본적 규칙(성경 해석의 규칙)을 사용하는 주의 깊은 주석(본문으로부터 뜻을 읽어내는 것)을 통하여 학생과 성경 교사는 정말로 성경 저자의 중심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런 다음 그 원리는 오늘에 적절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본문의 중심적 원리 또는 해든 로빈슨이 부르는 대로 큰 개념은 성경의 그 때 거기서로부터 오늘 세계인 지금 여기에로 오는 교량적 원리의 역할을 한다.


 


 


혹시 더 많은 내용을 생각하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사서 곰곰이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도 새삼스럽게 다시 읽어보면서 저자의 생각을 담으려고 노력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