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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새겨진 발자국

예림의집 2015. 1. 6. 11:30

 

마음에 새겨진 발자국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에 왔다가 금방 가 버린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잠시 동안 머물면서 우리의 가슴에 발자국을 새겨 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결코 전과 같지 않은 사람이 된다. <작자 미상>

 

 

 

 

 

몹시 추운 1월의 어느 아침, 새로운 학생이 내 가슴에 발자국을 찍으며 내가 맡은 5학년 교실로 걸어들어왔다. 처음 보았을 때 보비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작은 수영복 모양의 윗도리와 실밥이 터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 한 짝은 끈이 달아나고 없어서 걸을 때마다 날개처럼 펄럭거렸다. 설령 버젓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해도 보비는 정상적인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런 무관심하고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비는 표정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행동 또한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사회 적응 능력을 배우는 특수반으로 보내야 한다고 믿었다. 보비는 복도에 있는 둥근 세면대를 소변 보는 곳으로 착각했으며, 정상적인 대화를 할 때도 늘 고함치듯이 했다. 말하자면 도널드 덕 목소리(테이프를 빨리 돌릴 때의 소리처럼 외치는 것 같고 일그러진 것 같은 소리)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보비는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수업중에는 뭔가 끊임없이 말참견을 했다. 한 번은 체육교사가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서 자신의 몸에 탈취제를 뿌려 주었다고 학생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보비는 사회 적응 능력이 형편없을 뿐 아니라 학업 적응 능력도 전무했다. 열두살인데도 아직 읽기와 쓰기를 할 줄 몰랐다. 심지어 알파벳조차도 쓸 줄 몰랐다. 내가 맡은 반에도 성적이 뒤쳐진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보비가 가장 형편없었다.

 

나는 보비가 실수로 우리반에 들어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생활기록부를 살펴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아이큐가 지극히 정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기이한 행동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학교 상담 교사와 대화를 나눴다. 상담 교사는 자기가 보비의 모친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보비의 어머니에 비하면 보비가 훨씬 더 정상에 가깝더군요."

 

나는 기록을 더 뒤진 끝에, 보비가 태어나서 처음 3년 동안 보육원에 맡겨졌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후에 보비는 엄마에게로 돌아왔으며, 그로부터 한 해에 한 번씩 다른 도시로 이사를 다녔다. 그랬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보비의 지능은 정상이었으며, 그래서 기이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반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아이가 우리반에 들어온 것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우리반은 학생으로 만원이었고, 학습 부진 아동이 이미 예닐곱 명이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토록 학습 능력이 낮은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를 위해 교육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보비가 우리반으로 전학을 온 처음 몇 주일 동안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속이 답답하고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싫어졌다. 학교까지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그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기를 희망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나는 훌륭한 교사라고 내심 자부해 왔었다. 따라서 보비를 싫어하고 그가 우리반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 나 자신에 대해 혐오감이 일어났다.

 

보비가 나를 미치게 만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취급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누구도 내 교실에서 그를 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실 바깥에서는 학생들이 그에게 야비하게 굴고 그를 놀림감으로 삼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마치 병들거나 상처를 입은 동료를 공격하는 야생동물들과 같았다.

 

우리 학교로 전학온 지 한 달쯤 지난 어느날, 보비는 옷이 찢어지고 코피를 흘리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떼를 지어 그를 짓누른 것이다. 보비는 책상에 앉아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장했다. 그 아이는 책을 펼쳐 들고서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글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몹시 화가 난 나는 보비를 양호 교사에게 보내고 그를 괴롭힌 학생들을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가 이상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 더욱 더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훈계했다.

 

이렇게 아이들을 꾸짖으면서 나 역시 내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보비에 대한 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그 사건은 보비를 바라보는 내 시각을 크게 변화시켰다. 마침내 나는 기이한 행동 너머에 있는 그 아이의 참모습을 보았으며, 보살펴 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한 어린 아이를 보게 되었다. 나는 교사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보비는 내가 특별히 보살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학생이었다.

 

나는 구세군회관에 가서 보비가 입을 옷들을 사기 시작했다. 보비가 옷을 세 벌밖에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를 더욱 놀려댄다는 사실을 난 알았다. 나는 보비를 위해 상태가 좋고 모양이 좋은 옷들을 골랐다. 보비는 그 옷들을 받아들고 전율하다시피 좋아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도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

 

나는 보비가 아이들에게 얻어맞을 위험성이 있을 때마다 그를 내 곁에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학교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따로 시간을 내어 보비가 숙제하는 것을 도왔다.

 

새 옷과 별도의 관심이 보비를 얼마나 변화시켰는가를 알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보비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껍질을 깨고 나왔으며, 나는 그가 정말로 괜찮은 아이임을 발견했다. 그의 행동은 말할 수 없이 개선되었고, 짧게나마 나와 시선을 마주치기까지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복도를 걸어가 보비를 만나러 가는 것이 기대되기까지 했다. 보비가 결석을 할 때면 나는 걱정이 되었다. 보비에 대한 나의 태도가 변화함에 따라 다른 학생들의 태도도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보비를 괴롭히는 것을 중지했으며, 그를 그룹의 일원으로 끼워 주었다.

 

어느날 보비는 이틀 뒤에 이사를 간다는 전갈을 갖고 학교에 왔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직 내가 사 주려던 옷들을 다 사주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날 나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옷가게로 가서 보비가 입을 옷 한 벌을 샀다. 나는 그 옷을 보비에게 주면서 그것이 작별 선물이라고 말했다. 옷에 붙은 가격표를 보더니 보비는 말했다.

 

"전 지금까지 새 상표가 붙은 옷을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어요."

 

학생들도 보비가 전학을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방과 후에 아이들은 나를 찾아와 다음날 보비를 위해 작별 파티를 열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 허락을 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숙제하기도 벅찰 텐데 내일 아침까지 파티를 준비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아이들은 그렇게 했다. 이튿날 아침 아이들은 케이크와 장식 리본, 풍선, 그리고 보비에게 줄 선물들을 잔뜩 갖고 왔다. 그에게 괴롭힘을 주던 아이들이 이제는 그의 친구가 된 것이다.

 

학교에 마지막으로 등교하던 날, 보비는 커다란 배낭을 매고 교실로 들어왔다. 배낭 안에는 아동 도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파티를 즐겁게 마친 뒤, 교실 정리가 다 끝나고 나서 나는 보비에게 그 많은 책들을 갖고 뭘 할 거냐고 물었다.

 

보비가 대답했다.

 

"이 책들은 선생님께 드리는 거예요. 저는 책이 많기 때문에 선생님께 몇 권 드려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비의 집에 책은 고사하고 군것질 할 것도 하나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옷이 세 벌밖에 없는 아이가 어떻게 그 많은 책들을 갖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책을 살펴보다가 나는 그 책들 대부분이 보비가 살았던 여러 다양한 지역의 도서관들에서 가져온 책임을 발견했다. 어떤 책들은 '교사용'이라는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그 책들이 정말로 보비의 것이 아니라 어떤 의심스런 방법으로 보비가 그것들을 손에 넣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보비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게 주고 있었다. 누구도 전에 보비처럼 그런 아름다운 선물을 내게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자기에게 준 옷들만 제외하고 보비는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내게 주고 떠났다.

 

보비는 그날 떠나면서 나한테 편지를 보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내 주소를 받아들고 보비는 교실을 걸어나갔다. 내게 준 책들과 내 가슴에 영원히 새겨진 발자국들을 남긴 채로.

 

<로라 D. 놀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3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