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적 목마름
수원에서 4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피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상의 어떤 이유로 인하여 경찰청장이 사임하기까지 했다. 그는 체포된 후 자신의 범행 동기를 밝혔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때마침 자신의 주변을 지나가는 여인을 취하고자 했다. 반항하자 그는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반항하자 강제로 끌고 가 취했다. 그리고 신고가 두려워 죽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욕구가 있다. 소유의 욕구, 사랑의 욕구, 인정의 욕구, 관심의 욕구,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 친애욕구, 성취욕구 등이다. 이런 욕구가 완전하게 충족되지 않을 때 비롯되는 감정은 외로움, 허전함, 수치심, 두려움, 근심, 염려, 불안, 부족감, 무가치감, 무기력감, 부적격감 등등이다. 심리학자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가리켜 ‘인간의 결핍에서 비롯된 결핍감정’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목마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요4장). 그 감정들은 인간 그 자체로서 가지는 존재적 결핍감이요, 존재적 목마름인 것이다.
인간은 왜 그러한 욕구를 채우려는 것일까? 그러다 채워지지 않으면 결핍감 혹은 목마름을 느끼는 것일까? 부모 등의 양육자로부터 온전한 사랑과 관심을 채움 받지 못함 때문일까? 자신의 성취력이 부족하거나 인간관계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양육자의 성숙도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성숙한 부모나 선생님은 그렇지 못한 부모나 선생님에 비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채워줄 수 있다. 성숙한 목회자는 그렇지 않은 목회자에 비해 성도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채워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외로움이나 불안감을 조금 덜 느끼고, 부족감이나 무가치감 등도 조금 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목마름의 근본적인 원인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온전한 사랑과 지혜 등을 지니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아 2장 13절에서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요컨대 인간은 사랑이시고, 기쁨이시고, 지혜 자체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자란다할지라도 결핍감과 목마름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 등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거기서 비롯된 외로움과 비참함과 불안 등의 결핍감과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세상 것을 추구한다. 세상 것이란 다름 아닌 부, 명예, 권세 그리고 술이나 게임, 성 등의 쾌락이다. 현재나 장래의 막연한 불안감을 다소나마 해결하기 위해 부를 추구하기도 하고, 존재의 무가치감을 해소하기 위해 높은 지위나 명예를 추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잘산 척, 잘난 척, 아는 척 자신이 중요한 존재인양 허세를 떨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과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여 게임이나 술 혹은 이성의 쾌락을 탐닉하기도 한다. 수원의 40대 남성은 자신의 외로움과 비참함을 쾌락으로, 성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때로 인간관계도 목마름을 해결하기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혼자가 될까봐, 누군가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면 혹은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가 존재감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아 관계를 추구한다. 고린도전서 1장에는 교회 안에 게바파, 바울파, 아볼로파 등 당을 짓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당을 짓는 것 역시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일 수 있다. 혈연, 학연, 지연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 역시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의 권력 추구나 물질 추구 역시 그런 맥락의 일환이며 때로 교회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거룩한 일까지도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시도는 목마름이 일시적으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이나 종국은 그것에 중독이 되고 노예가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쇼핑 중독, 게임 중독, 성 중독, 관계 중독, 물질의 노예, 권력의 노예, 인기의 노예 등등.
그것들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는 선하다. 하지만 그것들로 자신의 결핍을 해갈하고자 할 때 악한 것이 되고 만다. 이유는 일시적으로는 목을 축여줄 수 있지만 결국은 그것들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목마름을 영원히 해갈시켜줄 수 있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놓쳐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은혜이다. 그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생수의 근원을 찾으라는 사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우리 인생은 자신들의 육신의 본능을 충족시킴으로, 세상적인 것들을 채움으로써 해결하려 한다. 성경에도 목마름을 세상적인 것들로 채워 해결하고자 한 사람들이 여럿 기록되어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외로움과 허전함의 목마름을 남자를 통해서 해갈하고자 했고, 사울왕은 권세의 목마름을 정적 다윗을 죽임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 아브넬 장군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워 자신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지배와 권력의 목마름을 해갈하고자 했다. 다행히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한 목마름을 해결했지만 사울왕과 아브넬은 더욱 비참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목마른 우리 인생들에게 말씀하신다. “오라!”. 인간의 존재적 목마름은 오직 그리스도로 인해서만이 해결 가능하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인하여 사랑과 인정의 목마름이 해소되며, 하나님의 완전한 기쁨으로 세상의 쾌락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 하나님의 기업인 만물이 우리 것이며 그 만물을 통치할 것을 믿음으로 물질과 권세의 목마름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목마름을 해결한 사람은 삶의 목적과방식이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변하게 된다. 전에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수단으로 돈, 명예, 권세, 성공을 추구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다른 사람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추구하게 된다. 인간관계 역시 자신의 허전함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서 추구하게 된다. 존재적 목마름을 해결한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그들은 ‘아직’이 아닌 ‘이미’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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