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모세오경- 문서설의 가설들

예림의집 2012. 4. 28. 09:16

모세오경- 문서설의 가설들

1. 모세의 저작을 반대하는 자들
자유주의 신학자 대부분은 모세의 저작을 반대한다. 16-17세기에 모세 저작 반대설이 시작되었는

그 이유로는 문서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5경에 단편 문서설(The Fragment Hypothesis)

을 넣어 분류하여 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1) 문서설
문서설은 불란서 의사였던 아스트럭(Astruc, 1684-1766)이 최초의 고등비평의 문서설을 말한 사

람인데 창1:1-2:3 부분에 하나님의 명칭을 주로 엘로힘( )이라 하였다고 하여 영어로 Elohim의 첫

자 E를 따 E문서사 하고, J문서는 여호와( ,야웨)즉 Jehova가 많이 나오는 부분을 그렇게 불렀다

(2:4-4:24). 이 두 종류의 문서가 이전에 있었는데 이런 단편을 수집하여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 편집은 훨씬 후대로 보는 것이다. 이같은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Jean Austruc

(1684-1766), J.G.Eichhorn(1752-1827 -독일 예나대 교수, 18세기 구약 성경 비평의 조상이라 불

리움, 최초로 고등 비평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K.D.Ilgen(-Eichhorn의 후계자 E문서를 제1, 제2

로 나눔 현재는 E.P로 부른다.)등이다.


2) 단편설: 5경은 여러 종류의 단편이 자료이다고 주장하는 설로 주장 학자들은 A.Geddes,

Alexande(1737-1802 영국의 구교 사제, 5경의 단편설을 처음 주장, 5경을 넓혀 여호수아까지 넣

어 6경이라함), J.S.Vater(18-19세기, 독일 힐레대학 교수, 겟데스설을 더 진전시켜 5경은 무관한

단편이 편집된 것이라함). W.M.L.De Wette(베테 : 1805 독일 예나대학 강사, 문학적 뿐 아니라 역

사적 문제까지 취급하여 시대가 다른 법규를 지적하며 D(신명기)는 621 B.C에 발견한 율법서라 단

정함) 등이다.


3) 보충설(The Supplementary Hypothesis) : 구약 성경에서의 자료는 상호보충적이라고 주장하는

설인데 H.G.A Ewald (1805-1875 독일 겟팅겐 대학 교수로 벨하우젠의 스승), F Bleek(1793-1859

독일 본 대학 교수) 등이다.


4) 신문서설(The New Documentary Theory) : 구체적으로 4종의 자료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 자료

는 P(제사자료) E(엘로힘) J(야웨) D(율법서)순서이다. P는 5경 전체의 골격이라는 것이다. 주장학

자는 H.Hupfeld(1796-1866 독일 할레대 교수), A.Dillmann(1823-1893 백립대 교수), F.Delitsgch

(1813-1890)


5) 발달설(The Developmentary Hypothesis) :신문서설의 년대 조정이다. 앞의 문서에서 뒤 문서가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 순서는 J, E, D, P의 순이라고 한다. 학자로는 E.Reuss(1804-1891 독일 슈

트라스빅 대학 교수). W.Vatke(19 C 백림대 교수) H.Graf(1844-1918 독일 겟팅겐 대학 교수, 가장

뚜렸한 학자, 발달설의 완성자, 신학적 해석을 버리고 역사 발전 과정에 토대를 두었다. ) 등이다.


6) 최신 문서설(The Newest Documentary Hypothesis) : 앞의 4종 문서를 세분화한 것이다. 주로 J

문서를 J1, J2, J3로 분류하였다. 학자는 R.Smend(1851-1913 바젤, 겟팅겐대학 교수, "육경의 설

화"저술)-J1,J2로 나눔. O.Eissfellt(1887-20중반)- (J1을 L, J2를 J로 나누었음) J.Hempel ( -J1,

J2, J3로 나눔.) R.H.Pfeiffer(1892-1952년)- J문서속에서 S문서를 만들어냈다. 이상의 문서설을 주

장하는 학자들은 원문비평을 중심으로한 하등비평(Lower Criticism)과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중심

으로한 고등비평(Highter Criticism)을 합쳐 사용하였다. 이같은 오경에 관한 비평은 성경을 하니의

고전종교 문학작품으로 본 것이다. 5경을 문헌 분석에만 치우친 학자들과는 달리 고고학자의 학문

적 공헌을 뒷받침으로 문학의 지식을 빌려 구약을 문화적으로 비평 연구하였는데 구약 구전의 역사

연구와 구전의 종교와 종교사이에 비교연구와 문장의 양식 분석이 그것인데 소위 양식비판(Form

Criticism)이다. 혹은 종교사적 방법이라 한다.



2. 4대문서설의 주장과 근거

1) J문서(야웨문서, Jahwistic Document): 모세 이전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야웨(Jahweh)라 부른것

과 이 문서의 기록된 곳이 유다(Judah)였으리라 하여 첫 글자 J를 땄다. 야웨는 여호와(Jehovah)

이며 성경상에 하나님의 명칭은 의 글자만 있다. 발음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모음이 없는 글자에

발음을 찾아주기 위하여 학자들은 에서 모음을 따와 여호와라 하였는데 모음의 변화를 잘못 붙였다

하여 근일에는 야웨( )로 변경 호칭하고 있다.


2) E문서(엘로힘문서, Elohistic Document): 시내산 계시(출3: ) 이전에 하난미을 주로 야웨가 아니라

엘로힘(Elohim)이라 부른것과 이 문서의 기록된 곳이 북왕국 에브라임(Ephraim)이였으리라는 사

실에서 첫 글자 E를 따 붙였다.


3) D문서(신명기법전, Deuteronomony): 요시아왕 18년(621 B.C)에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

법서를 발견하게 되었다(왕하22:8,23:2). 그것이 현재 우리 성경의 신명기 중심부(신12:-26: )라 하

여 Deuteronomony의 D를 따랐다. 이렇게 주장한 학자는 1805년 데 베테(De Wette)이다.


4) 제사전법 P문서: 이말은 Priester Kolex 혹은 Priest Code란 말의 첫글자이다. 이 제사법전은 모세

5경 전체의 기초가 되어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으며 쿨 교수(Von Curt Kuhl)는 5경

의 기초로 보아 5경의 자료를 논할적에 P법전을 먼저 취급하였다.


결론적으로: 이같은 문서설 내지 비평은
(1)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되고
(2) 성경의 영감설을 부인하고
(3) 성경의 능력을 부인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성경은 하나의 문학작품이나 유전, 전설, 역사적 기록, 고전 등에 불과하게 만들었다.


OSWALD T. ALLIS의 문서설

오경의 자료 분해가 후펠트로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후펠트가 거의 1세기 전에 만든 일반적 원리에 의해 지배되어 왔으므로 그 역사를 상세하게 연구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드라이버(Driver)가 쓴 "구약문학서론"(Introduction to the Literature of the Old Testament)이 이론에 있어서 꽤 폭넓은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드라이버의 "서론"에 제시된 대로 후펠트의 이 세가지 문서설을 아스트록과 아이히호른이 제시한 두 문서설을 대조하는 것으로 족할줄 안다. 이렇게 함으로써 후펠트가 시도한 그 급진적인 변화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1> 첫 엘로힘 문서(P)가 독자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계속해서 오늘날에도 강조되고 있다.

창세기 제 20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둘째 엘로힘문서(E)는 첫 엘로힘문서(P)보다 여호와문서(J)를 훨

씬 더 닮았다는 것과, 여호와 엘로힘문서를 그 구성부분에 따라 여호와문서와 엘로힘문서로 분해하

는 것이 어렵거나 혹은 불가능하기 조차 하다는 것이 인식되어졌다. 또한 여호와문서(J)를 닮은 들

째 엘로힘문서(E)는 하난의 독특한 문체를 가진 첫 엘로힘문서(E)보다 두 배나 많음을 알 수 있다.

2> 문서들의 연관성을 세우기 위해 비평가들은 "중복이론", 즉 동일한 사건에 대한 소위 유사한 기사나

서로 충돌하는 기사에 대해 많은 강조를 하였다. 주제(主題)에 따라 J와 E로 분류하는 것이 특별히

강조되었고, 이것은 어구(語句)에 따른 분류 만큼 중요시 되었다.

3> 한 문단에 있어서 똑같은 구절

이 나온다면 이것은 편집자가 최소한 이 점에 있어서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 자료를 복사한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와 반면에 비평가들이 P에 돌리고 싶은 구절이 J나 혹은 E부분에 나온다

면 그것은 편집자가 스스로 판단해 본후 그의 자료에 수정을 가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변화를 가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문서설을 지지하기 위해 비평가들이 호소한 가정들을 검토해

볼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 주된 요점으로 압축할 수 있다.

<1> 창세기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다름
<2> 용어와 문체가 다름
<3> 평행 혹은 이중 기사(중복)
<4> 여러 자료들의 연속성

첫 두 요점은 주로 언어와 문체에 대한 질문이요 마지막 두가지는 특히 내용과 주제를 다루는 질문이다.

제 1 장 하나님의 이름이 다름
하나님의 이름의 차이점들은 오경에 관한 현대이론에 열쇠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문서설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창세기의 첫 34절에 엘로힘(Elohim--하나님)이 33번 나오며 그다음 45절에 걸쳐 여호와 엘로힘(Jehovah Elohim--여호와 하나님)이 20번 그리고 그 다음 25절에 걸쳐 여호와(Jehovah)가 10번 나온다. 이것에 대해 몇가지 요점을 간추려 보자.

1. 아주 뚜렸한 차이는 드물다.
창세기 초반부에 하나님의 이름들이 큰 대조를 이루며 그것이 사용된 것을 우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들이 창세기 전권(全卷)을 상세하게 분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다르게 사용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문서를 상세히 분해할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다르게 사용한 것에 따라 할 것이 아니요 다른 자료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2. 여호와 엘로힘이란 이름
창세기의 첫 부분에 엘로힘과 여호와가 제 2장과 3장에서 20번이나 함께 결합되어 있다. 이는 여호와와 엘로힘을 하나로 묶는 것이 오경에서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오직 한번만 출애굽기 9:30에서 나오며 구약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20번도 채 못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엘로힘은 창조주 하나님을, 여호와는 구속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창세기 2:4-3:24에서 여호와 엘로힘이 20번 나오는데 뱀과 여인의 대화에서는(3:1-5) 엘로힘이 4번 나온다는 것이다. 인류의 적이요 유혹자인 뱀의 입에서 여호와란 이름이 결코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3. 이름은 의미심장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름의 용법이 그 의미와 적용의 차이점에 근거하여 다르게 선택된 몇몇 경우들이 있다. 이들 중 가장 명백한 예(例)가 창세기 9:26(J)에 있다. 여기에서 여호와는 셈의 하나님으로 선포되며 엘로힘이 야벳을 창대케 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 예들을 통해 우리는 이름의 차이가 의미의 차이 때문이란 개념을 고정시킬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름이 다르게 사용되었다고 해서 바로 자료가 다르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그 차이가 그 이름의 의미와 의의에 근거한 용법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4. 자료분해는 본문을 절단해 버린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와같이 문맥에 따라 각자의 강조점을 가지고 사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가자고 확대된 분해를 시도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문을 절단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창세기 2장에서 여호와엘로힘이란 복합명(複合名)이 여호와와 엘로힘을 동일한 것으로 사용한것 같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비평가들의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이름때문에 짧은 문단이나 혹은 한절, 혹은 절의 부분 까지도 그 문맥에서 종종 절단해 버려야 한다는 결론까지 갈 수 밖에 없게된다.
상호 연관성을 분명히 지니거 있는 사건들을 하나님의 이름에 따라 분해함으로 본문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것을 야곱의 결론 기사와 베냐민을 제외한 그의 아들의 출생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출애굽기 6:3은 비평가들에 의해 잘못 해석되고 있다.
출애굽기 6:3이후부터 비평가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문서분해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오경의 마지막 네 권에 있어서 엘로힘보다 여호와가 훨씬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출애굽기에서 민수기 사이의 P기자가 여호와라는 이름을 자주 사용했던지 혹은 P문서가 이 책들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비평가들은 여기서 전자를 채택했다. 제사문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비 정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출애굽기 6:3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비평가들은 주장한다. "엘로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엘 솨다이(전능의 하나님)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

비평가들에 따르면 이 절(節)은 제사문서의 기자가 여호와란 이름이 모세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에게 알려진 것으로 믿었다는 사실을 밝히 말해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P기자)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시대 착오적인 것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여태껏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는 암시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절에 대한 비평가들의 해석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큰 난점들이 있다.


출애굽기 6:3에 대한 비평가들의 해석은 그 절 자체나 혹은 성경에 있는 다른 신빙성있는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론을 고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출애굽기 6:3을 가지고 여호와라는 이름은 출애굽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P문서가 엘로힘과 여호와란 이름을 사용한 것에 대해 무리한 설명을 시도할 뿐이다. 이것은 해석의 역사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6. 출애굽기 6:3 이후에 차이점들이 나타난다.
비평가들의 이론에 따르면 여호와와 엘로힘이란 이름을 사용함에 있오서 차이점이 출애굽기 6:3에서 끝을 맺는 것은 문서분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함에 있어서 출애굽기 6:3 이전에 발견된 것과 매우 유사한 것들이 출애굼기의 그 부분 이후에도 종종 나타나고 있음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7. 이와 유사한 차이점이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창세게의 하나님의 이름이 이와 같이 다르게 사용된 것이 구약성경에서 전혀 독특한 현상이 아님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몇몇 경우에 있어서는 그 다른 용법의 이유가 아주 단순하고 명백하다, 또한 그렇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이 차이점들을 두 가지로 대별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이름이 변한 경우: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이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이름으로 변화되었고

(창 17:5,15) 즉시 바뀌어졌다. 또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은 두번이나 고지된다.

그러나 첫번째 뿐 아니라 두번째의 고지 후에도 그 새이름이 일관성있게 사용되지 않는다. 왜 그런

지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이름에 주로 근거한 문서분석은 족장

의 이름이 두 가지로 사용된 차이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약간 유사한 것을 여룹바알이란 가명을 받은 기드온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여룹바알이

란 이름의 기원은 사사기 6:32에 진술되어 있다. 여룹바알이 9장에서는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7

장과 8장에서는 기드온이 거의 배타적으로 사용되었다.

2> 차이점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경우: 애굽의 왕은 오경에서 주로 "바로"로 불려진다. 여기서 우리는

어투의 차이점이 문서의 차이에 있다는 가정에도 불구하고 동일문서 속에서 J.E.P가 모두 있음을

보게 된다. 동일한 왕에 대해 다른 두 가지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름에 대해 철자를 두 가지

로 사용하는 이와 유사한 예로 오경 밖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8. 차이점에 대한 몇가지 설명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온 이와 같은 차이점들이 성경에 명백하도록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항상 분명하지 않으므로 몇가지의 설명들이 시도된다.

1> 이름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은 계속적인 반복의 단조로움을 피한다. 역대기 상하에서 "여호와의

집"과 "하나님의 집"이 상호교차적으로 표현된 것은 이것에 대한 아주좋은 예증이다.

2> 사무엘상 3:3에는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가 나타난다. "(만군의)여호와의 언약궤---하나님의 언약궤---하나님의 궤---여호와의

궤---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등. 이 구절들에서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동일시하려는 어

떤 의도가 있는지 혹은 그 차이점 자체를 제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지 분명치 않다.

3> 어떤 경우에는 이름을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측면과 관계들을 제시하고 있다.

4> 이와 반면에 정확하고 빈번한 반복은 단조롭기는 하나 인상적이고 강조적인 용법으로 사용된다. 창

세기 1장의 대 주제는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다. 엘로힘(32회)만을 계속 반복한 것은 강조점을 불

어넣기 위함이다. 이것은 창세기 2:4-3:24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에서 더욱 분명하다. 복합적인 이

름이 단지 2:4에서만 사용되고 여호와란 이름만이 2장과 3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타난다면 여호와

를 엘로힘과 동일시 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히 시사되었을 것이다.

5> 또한 성경에는 주어진 표현으로서 상투적인 표현을 만들고자 하는 아주 분명한 경향이 있음도 알아

랴 한다. 위에 제시된 예증들을 볼 때 좋은 표현의 용법을 결정하는 견고하고 확실한 규칙도 없고

두서너 개 이상의 원리들이 똑같은 타당성을 가지고 적용될 수 있는 경우에 한 구절의 정확한 형태

가 어느 문서에 속한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9. 편집자에 대한 호소
비평적 분석이 가진 치명적인 치면적인 결합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의 용법과 관련하여 이미 명백하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이제 그것은 편집자나 혹은 편집자들에 대해 호소하지 않고는 그들의 작업을 진행해 나갈 수 없다. 비평가들의 이론이 통하지 않는 곳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순전히 가정적인 편집자가 잘못한 것이라는 이 엉뚱한 비난으로 논리를 전개해간다. 그러므로 편집자에게 호소하는 것마다 그들의 이론이 그곳에서 난관에 봉착했음을 말없이 수납하는 것이다. 창세기나 오경 전체를 일차적인 기준인 여호와와 엘로힘의 이름으로 분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기 때문에 이 이론의 옹호자들이 복합적인 저작권을 시사하는 다른 것을 제시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두번째의 기준을 검토하기 위해 넘어가야겠다.

제 2 장 용어와 문체의 차이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과 여호와 두 이름의 차이로서는 출애굽기 6:3 이후의 문서분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다른 기준을 만들어 오경분해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상 창세기 1:1-2:4A를 제 1 부, 2:4B-4:26을 제 2부로 부르고 이것들을 검토하며, 또한 제 1부를 첫 엘로힘문서(P)로 부르고 제 2부를 여호와 문서(J)로 보면서 그 용어들의 차이들을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즉시 그 차이점이 괄목할 만하다는 관찰을 하게된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타나는 구절의 주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지 단어들에만 근거한 분석은 인위적이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쉽다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두 부분에 나타난 두 가지 창조기사는 그 어떤 점에 있어서도 상호모순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관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우리가 처음부터 기대한 바와 같이 주제가 그 어투를 주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단어가 주어진 구절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 주제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거나 혹은 필요한 때에 한해서만 의미심장한 것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즉, 한 구절에서 몇몇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주제를 살피지도 않고 문서 분해를 시도하는 것은 무모하다.

문서분해가 의도적으로 되지 않을 때마다 모든 책임을 편집자에게 돌려 그것이 편집자의 역할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비평가들의 전체적인 위치에 대해 치명적인 것을 교묘하게 빠져 나가는것에 대해 이미 위에서 지적한 바가 있다. 비평가들이 문서분해를 만족스럽게 처리하지 못할 때마다 원자료의 본문을 변경시켜버린 알지도 못하는 편집자에게 그 모든 비난을 전가시켜 버리는 것은 비평가들이 자기의 이론을 살리기 위해 원래 잇는 그대로의 본문을 임의 대로 변경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증거를 손질하는 것"으로 불려지는 것이다. 이와같은 방식으로 어떤 이론도 증명이 되든지 안되든지 할 수 있다.

제 3 장 오경의 용어에 관한 이론
비평가들이 오경의 용어와 술어에 집착하면서 그것으로 문서분해를 시도하고 있으므로 이 분해에 대한 마지막 두 가지의 논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문제를 마무리지음으로써 오경의 통일성에 대한 번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세 가지의 요점으로 간추린다면,

(1) 오경의 용어는 멋지고 힘이 있으며,

(2) 비평적인 분해는 그릇된 기초 위에 근거하고,

(3) 비평가들의 시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 오경의 문체는 멋지고 힘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양한 것을 제외하고라도 오경에 있는 용어와 술어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중점 (重點)은 그 차이점들이 특히 셈어적인 용법(Semitic usage)에서는 오히려 멋진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다루던 경우에서와 같이 세 가지의 특징이 다른 단어와 표현의 용법에서 다시 한번 더 나타난다. 즉 동일성과 다양성 그리고 상투적인 표현의 사용이 그것이다.


1> 용어의 동일성 혹은 일률성
한 단어나 구 혹은 구절을 자주 반복한다는 것은 단조로워지기 쉬운 경향이 잇다. 좋은 작가일수록

이 단조로움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똑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고 강

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것은 상업문서나 법조문, 공공문서 등의 문체에서 하나의 특징으

로 나타난다.


2> 다양성
오경에는 저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폭넓고 다양한 어휘를 구사한 구절이 많이 있다. 하나의 사

상이 확대되고 강조되어야 할 때 이와 같은 어휘의 다양성 요청된다.


3> 상투적 표현
자주 사용되는 구절이 상투적인 표현이 되기 쉽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이미

보았었다. 그러나 다른 표현에 있어서도 이것은 사실이다.


2. 비평적 분해는 잘못된 기초 위해 근거하고 있다.
어투와 문체가 다른 것은 저가가 다른것을 의미한다는 비평가들의 기본적인 주장을 조심스럽게 검토해볼 때 결국 우리는 비평적 분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원리 위에 서있었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좋은 작가일수록 풍부한 어휘를 구사한다는 점도 이미 지적하였다. 빈약한 어휘란 사상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며 개념들을 표현하는 능력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이론은 어투와 문체의 다양성이 저자의 다양성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경의 어휘들이 소위 말해지는 "조그만 변화"를 제외한다면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저자들 혹은 자료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한다.


3. 비평가들은 불가능한 것을 시도한다.
오경의 문서분해가 많은 점에서 봉착하는 난제들과 그 난제들을 억지와 모순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도 그들의 시도한 작업이 불가능한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좋은 예증이 된다. 하나님의 이름에와 같이 두번째의 기준에 있어서 언어와 문체의 차이를 주목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투에 관한 논쟁을 결론지으면서 유사한 표현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정확한 단어의 뜻과 그 차이점들을 결정하는 것이 결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부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경에 각각 두번씩만 나타나는 이 두 단어가 다른 문서에 속한 것으로서 한 명의 동일한 저자가 둘 다 모두 사용할 수 없엇고, 사용해서도 안되고 사용하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그 가정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비평가들이 이 가정위에서 그들의 직업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정확한 언어비평과 문학 비평을 버리고 그들의 가정 위에 작업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 독단성을 언어와 문학에 잘 연마된 학생에게는 너무나 명백한 것이 아니겠는가?


제 4 장 관점과 주제의 차이들
분해의 자연적인 결론이요 한 걸은 더 나아간 결론은 그 문서들이 또한 관점과 주제에 있어서 특징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이히호른은 창세기 5:1-28, 30-32; 11:10-32을 엘로힘 기자에게 돌리면서 전자(前者)는 족보를"연대기적으로"(chronological)구성하였으나후자는"우주적으로"(cosmological) 기술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4:1; 5:29; 11:9을 여호와기자에게 돌린 후 그는 이 기자가 고대시대의 역사를 씀에 있어서 "어원학"을 기록하는데 관심을 가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이히호른이 5:29을 여호와기자에게 할당한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음을 보게된다.

첫째, 언어학적 이유로서 여호와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과,

둘째, 특징적인 이유로서 노아라는 이름이 여호와기자의 어원에 대한 경향(penchant)을 보여주는 예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홍수 기사를 여호와문서와 엘로힘문서로 나눈 것은 상당히 많은 차이점들을 만들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전자는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을 구별함으로써 정결한 짐승을 일곱씩 방주 안으로 들여보내지만 후자는 이와같은 구별이 없고 오직 한 쌍만을 노아에게 이끌어 온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시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차이점이 강조되면서 쉽게 서로 충돌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와 문체에 있어서의 차이점에 일차적으로 기초한 분해의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후펠트가 1853년에 참 엘로힘기자의 문서의 한계를 더욱 정밀하게 규명하려고 시도하면서 원문서와 여호와문서와 다른 후대의 엘로힘문서가 있었음을 확립함에 있어서 그가 명백한 주제의 차이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일이다.

야곱의 생애에 대한 역사의 첫부분을 다듬으면서 후펠트는 28:19; 35:7; 35:9-15에 벧엘이라는 이름에 대한 세개의 다른 기사가 있음과 첫 두 기사는 그 작명을 야곱이 라반에게로 가기 이전에 놓여있음과 세번째 기사가 그 후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세번째 것을 원문서(P)로 할당하였고 나머지 둘을 여호와 문서와 두번째 엘로힘문서로 각각 배정해 주었다.

비평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오경에는 두서너 개의 기사가 따로 떨어져 있기도 하며 결합되어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중복의 두서너 개의 문서들을 결합한 결과이기 때문에 오경은 문서들의 복합체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 몇 개의 중요한 구별들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신약성경에서와 같이 구약성경에도 동일한 사건을 여러번 기술(記述)하거나 혹은 동일한 주제를 한번 이상 다루는 경우들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구약성경은 또한 동일한 것에 대해 괄목할 만큼 서로 다른 기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창세기에 있는 두 개의 창조기사도 상당히 다르다. 하나는 우주적인 것으로서 우주를 다루며 인간에게서 그 절정에 도달하나 또 다른 하나는 개체적인 것으로서 인간에게 중심을 둔다. 홍해를 건넌 산문체 기사는 (출 14장), 그 다음 장에 있는 운문체의 기사와 아주 다르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는 산문이요, 다른 하나는 운문이라는데 있다.


이와같은 경우에 있어서 두 기사 사이에 있는 차이점이 두서너개의 자료가 있었다는 이론을 요청한다는 것은 분명히 논쟁의 여지가 많은 문제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 자료들을 사용하여 그것들은 자신의 작품에 정리하여 삽입한 저자나 혹은 편집자가 그것들을 서로서로간에 조화있고 확실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가정할 수는 있다. 그것들 상호간에 있는 차이점들은 사실적이라기보다 분명한 것으로서 저자나 편집자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확실한 사실들을 우리가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경의 복합적인 문서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문서의 연속성을 세우는데 비평가들이 의지하는 중복은 두 가지 종류이다.

1> 독특하나 유사한 사건의 기사는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기술한 것으로 주장된다.

2> 동일한 사건을 너무나 같게 쓴 기사는 그 사건에 대한 두서너 개의 서로 갈등하는 기사들로 구성

되었다고 단언된다.



제 5 장 단언된 중복에 대한 설명
오경의 기사들 중 많은 부분이 여러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다른 요소들을 자료에 따라 분류해야 된다고 제법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문서설이 성경(히브리) 문체가 가진 두 개의 독특한 특징에서 거의 자연스럽게 설명이 될 수 있다.

이 특징 중 첫째 것은 구문론(syntactical)이다. 느슨하게 이어진 문장들과 그리고(and)로 묶여진 완전문장들이 구약성경에는 자주 나타난다. 창세기 1장은 이것에 대한 대표적 예증이라고 할 수 있다. 31절 중 거의 대부분이 완전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 중 몇몇은 하나 이상의 완전 문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장들은 접속사 "그리고"와 함께 느슨하게 묶여져 있다. 히브리어는 영어보다 종속접속사를 더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문장을 다른 것에 종속시켜야 할 곳에 "그리고"를 사용하여 절(節)을 자주 이어 버린다. 설화적 산문에 있어서 동사가 문장의 첫 부분에 있는 것은 규칙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설화체적 문체가 단순하고 통일성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비평가들이 쉽게 문서분해를 시도할 수 있게된 성경 문체의 두번째 특징은 성경 속에 나타나는 부연과 반복이다. 그것들은 너무 자주 나타난다. 물론 성경 문체가 종종 간단명료한 특징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놀랄만큼 짤막한 단어로서 성경의 많은 부분이 쓰여졌다. 그것은 청중이나 독자로 하여금 그것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설화에서 강조를 하는 가장 자연스런 방법도 확대설명이나 중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경 문체는 종종 너무 확산하는 듯하며 세부사항을 확대해가고 반복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이 중요한 특징을 예시하는 데는 몇개의 예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이 이론을 옹호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방법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경을 분해해 버리는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성경문체의 특징적 모습을 사용하는 것이 전혀 성경자체의 특징과는 상관없는 것들임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그러므로 결론을 내리자면 그들의 이론을 그 자체가 그릇된 편집이론이다.



제 6 장 문서의 연속과 범위
우리는 후펠트의 작업이 두 가지 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을 보았다.: 그는 창세기에서 문서적 자료들의 연속성을 일깨웠고, 그는 첫 엘로힘문서(P)와는 아주 다르나 여호와문서(J)와 닮은 둘째 엘로힘문서(E)를 인식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전에 엘로힘문서로 분류되었던 창세기 20-50장에 있는 자료들 중에서 대부분을 두번째 엘로힘문서에 돌렸다.

이 두 원리는 서로 적대적이다. 창세기에 세번째 문서가 있다는 것은 문서들이 서로 연속된 것을 증명하는데 더 어려움을 준다. 또한 첫 엘로힘문서(P)를 엘로힘 자료 중 아주 작은 부분에 제안해버린 것도 후펠트가 이론 수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연속성을 파괴하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중복이론에 대한 상당한 강조를 해준 바로 그 원리였다.


오경 안에서 중복되었다는 것으로 주장되는 문서들이 연속성을 지닌 것에 대한 질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응 이 자료들이 오경 범위 밖에도 적용이 되는지 그리고 적용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추적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아스트룩과 아이히호른이 그들의 분해를 출애굽기의 초반부 이상을 넘어 시도하지 않았는데 1822년 경에는 오경의 나머지 부분뿐 아니라 여호수아서까지 확장되었다. 결과적으로 비평학계에서는 "육경"이란 말이 오랫동안 쓰여오던 친숙한 단어"오경"과 주로 대체되어 버렸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이 여섯권의 책이 오경과 같이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평가들이 일반적인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여호수아서와 오경의 문서들 사이에 구분을 긋고 여호수아서를 전선지서(Former Prophests)의 나머지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면 후펠트로 부터 문서설의 옹호자들에 의해 그렇게도 강조된 그 문서들의 연속성은 대부분 파괴되고 결국 육경을 주장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그레이(G.B.Gray)가 그의 책 " 비평학개론"
(Critical Introduction; 1924)에서 드라이버의 "육경" 분해를 주로 따르면서도 자신은 "오경"으로 말하기를 더 좋아했다. 이러한 그가 육경이란 문서가 실제적으로 존재했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육경이론은 비평가들에 있어서 하나의 동의가 아니라 하나의 강한 경향이다. 그것은 오경에 대한 모세의 저작권을 반대할 논증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제 7 장 관점과 주제의 차이에 관한 결론
중복설에 대한 고등비평의 방법론과 결과에 대한 자연스럽지 못한 첫 반응은 비평가들이 만든 차이점과 상호 모순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차이점들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단순하고 간단한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수정 구슬 목걸이를 하나하나 짤라 하나하나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토론을 하고 이 구슬들이 모두 다른 동네에서 모여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오직 하나의 결정적인 반박은 그것들이 다시 꿰어졌을 때 다시 한번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결국 성경에 나타나 있는 성경 기사의 통일성과 조화가 이 자충족적인 기사는 몇 개의 다르고 상충적인 기사를 결합한데서 기인했다는 이론에 대한 가장 좋은 반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