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와 경건훈련
저는 올해 10월 21일로 결혼 만9년을 넘어섰습니다. 저희 가정은 아주 잠깐 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제 아내가 제대로 시집살이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2주 전부터 제 친할머니를 저희 집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1917년생이시니까 거의 90세가 되신 분이신데 시골에서 땀흘려 일하는 농사꾼으로 일평생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쉬지 않고 몸을 놀리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정정하시죠.
이 할머니의 임재(?)가 어느새 제 아내를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의 처지로 이끌었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물론, 할머니는 대놓고 잔소리를 하거나 꾸짖는 분이 아니십니다. 마음씨도 착하시고, 손자인 저와 제 아내를 마음으로부터 깊이 사랑해 주시며, 증손인 제 자녀들을 너무나 귀여워해 주십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분 자신의 삶이 탁월하게 훈련(!)되어 있으시므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저희들의 삶에 지속적인 역동과 압력을 가하고 계신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거실에 떨어져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두고 보지 못하시고 손수 비질, 걸레질을 하십니다. 세탁기 속에서 제대로 빨아지지 못한 양말들은 당신이 손수 손으로 빨겠다고 나서셔서 결국 그저께 밤늦게 대형마트에서 손빨래 장비를 급히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구요. 손주들이 밥을 부실하게 먹는다 싶으면 배불리 먹이라고, 억지로라도 먹이라고 부탁을 하십니다... 이런 지경이니 아내만 울상입니다. 마음에 부담이 큰 것이죠. 모두 틀린 말씀이 아니라 지극히 옳으신 메시지들이니 거부하거나 설득할 수도 없고... 자신도 좀더 부지런히 살림을 살아야 한다는 내적인 부담이 이전에도 없었던 것이 아닌데, 지금은 그것을 매일 실천해야 하는 엄청난 압력이 성육신하여 살아 움직이고 계시니... 전혀 의도하지 않으시지만 할머니의 존재 자체가 시집살이가 된 것입니다.
어제 퇴근한 저희 집은 그야말로 반짝거리며 윤이 나고 있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집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는 특별한 저녁의 풍경이었죠^^ 저는 속으로는 기뻤습니다만 겉으로는 아내의 노고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저는 제 직업(?)답게 경건훈련의 전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삶 속에 주님을 모시고 삽니다. 그분의 앞에만 서면 우리는 끊임없는 도전과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규정과 벌칙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분이 전혀 아니라, 우리 삶의 정결함과 풍성함을 너무도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훈련되신 분이시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끄십니다. 날마다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제 삶의 수준이 보이고 부끄러움과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때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곤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임재를 거부하거나 망각할 순 없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훈련되어 갑니다...
저는 주장합니다. 결혼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여, 적어도 얼마간은 부모님을 모시십시오!! 그분들의 일평생 익숙하게 훈련된 귀한 삶의 모본을 배우고 익힐 최고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부수업이나 요리법을 한두 번 수강하고 끝내지 마십시오. 체득하지 않으면 당신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지식만을 얻고 거기서 그치면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식은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에 들어가야지만 우리의 게으름과 거짓을 조금씩 청산해갈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우리는 게으르고 악한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알면서 행동하기 싫어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기에 우리의 내적 싸움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런 현장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으십시오. 그래야만 진정한 변화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쨌든 시집살이는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2005년 11월 30일 아침 묵상 중
교목실에서
허 경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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