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을 마음대로 했다는 사람은 아직 나는 모른다.
내래(나는) 이북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곳이 태어난 고향일 터인데,
어린 내 시절의 그곳 기억은 어렴풋이도 없다.
건쟁에 대한 내 기억은 그 이후의 미국 애들이 넘쳐나는 거리의 모습 뿐이다.
청진 푸른바다.
한번 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외국 여행은 하면서,
아니 얼마동안씩 아예 살기까지도 했으면서도,
정작 내 고향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맘때면 '상기하자 육이오'라 하며
우리들은 그 날들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지만,
내게는 '다시 기억하지 말자 육이오'라고 하더라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우리 가족이 설마 설마하며 망설이며 기다리다,
시기를 놓치고 남으로 피난을 내려온 때는
이미 한강 철교가 끊어져 기차편이 없는 때이니,
걷고 걸어서, 짐도 하나 하나 긴요한 것이 아니면 버려버리고,
끝내는 한강을 건너기 전에 인민군에게 남겨진 물건까지 죄다 빼앗겨 버리니,
맨 주먹 뿐이었다고,....
난 그 대열에서 내 것이 아니니 빼앗긴 들
뭐 그리 원통하고 아까울 것 없었으나,
나이 들어가니 내가 직접 잃은 것들도 아닌 터에
말로만 들어도 왜 그리 안타까운지.
6.25 당시
설마 설마하며 망설이던 그 당시에
우리 가족들은 서로 이런 의견들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야! 설마 공산당이라 해도, 모두야 죽이갔어.
괜한 짓 말고 여기 남기로 하자 야." 라는 의견.
"이러면 어떻했어. 잠깐 중국으로 모두 피신해 있다가 잠잠해지면 돌아오기로"하며
중국으로 갈 것을 말하기도 하고,
"아냐! 아무래도 남쪽으로 내려가자우야.
야! 옆 집도 어제 남쪽으로 갔다지 않겠어." 등의 분분한 의견으로 나뉘었다고,....
그 후 우리 가족들은 모이면 자주 이야기 했다.
"우린 그 쪽에 한사람 남기지 않고 남쪽으로 내려오길 잘 한 거라우야!
암만, 복받은 거지."
거기에 삼촌은 거들었다.
"아냐! '원참' 너는 북에 남았으면, 아마 인민무력부장 됐을지도 모르지."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인민 무력부장 좋아하지 마세요.
굶어 이제는 중국 땅이 되어버린 '간도' 땅을 헤메는 꽃제비되었을 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떠나온 우리 가족들은
조부모, 부모, 작은아버지, 삼촌 모두 모두 이승을 떠나시고
이제 내 세대만 남았다.
그래서 또 6.25를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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