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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칼럼 모음 NO.11

예림의집 2011. 6. 12. 09:52

예림의집 칼럼 모음 NO.11

사단의 인기전략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나오신 예수님 앞에 나타난 사단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유혹합니다.

어쩌면 사단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예수, 지금은 당신이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야,

당신이 만약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게 되면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당신을 추종하게 될 거야.

그러면 모두가 당신의 능력을 믿게 될 거고 또 그렇게 되면 당신이 그 흉한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겠지?

이것은 일거양득이 아닌가?”

네, 이 같은 달콤한 유혹 말이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인용해서 유혹하는 사단의 음흉한 궤계를 꿰뚫어 보시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라고 단호히 대적하셨습니다.

사단은 오늘도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향해서 유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의 마음을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 하는 유혹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그 유혹에 굴복하게 되면 먼저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들일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모여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더 강력한 방법을 교회에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더 매달리면서

교회는 서서히 퇴락의 길을 걷게 되겠지요. 이것이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교회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인기에 연연하게 하는 사단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면서

말씀으로 변화 받아 이웃을 사랑하고 또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열매는 삶의 현장인 가정에서 먼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교회와 함께 부름받은 거룩한 사역 공동체입니다.

 

 

비판하지 말아야할 7가지 이유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외식하는 자여 먼저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1-5)."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5절까지는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단순히 평가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말의 뉘앙스로는 ‘심판 혹은 정죄’를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1. 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는 못한다
정당한 비판을 위해서는 모든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제한된 사실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제한된 사실만 알고 있다면, 우리는 비판은 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판은 사실에 기초해야 하는데, 제한된 사실로 어떻게 올바른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2. 우리는 그 동기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동기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말, 표정을 통해서 그 동기를 100%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동기란 내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동기를 다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우리는 비판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인간의 판단은 항상 객관성과 주관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각자의 판단은 늘 어느정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판단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판단을 할 때에만 그것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을 비판하고자 할 때 그것은 우리 자신의 주관성이 개입된 것이라는 점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4. 상황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어떤 사실이나 사건은 모두 상황맥락적입니다.
동일한 사실도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예를 봅시다.

미장이가 벽돌을 쌓다가 조수에게 “벽돌!” 하고 외치면 그것은 “벽돌을 가져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만약 공사장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벽돌!”하고 외치면 그것은
“떨어지는 벽돌을 피하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쉽게 누군가를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5.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우리의 인식은 늘 제한적입니다.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할 때 우리는 늘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부분들이 있고 그것이 칭찬받아야 할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쌍히 여겨야 할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이 정말 드러내기 힘든 장애를 가졌거나 남모르는 고통을 가졌다면,

우리의 비판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6. 우리는 편견이 있으며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편견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관성보다 훨씬 더 우리자신을 슬프게 하는 모습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비판하려고 하는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편견으로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비판하려는 상대방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이 평가를 내린 것이 편견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편견이 있는 한 우리의 평가는 사실에 근거한 평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평가를 내려놓고 거기에 필요한 사실들만을 열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7. 우리 자신은 불완전하며 일관성이 없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늘 불완전합니다.

특별히 일관성이 없습니다.
C S 루이스는 자신이 가르치던 옥스퍼드 대학원 학생이 일관성없는 태도를 가졌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저명정치인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파티에서 그 정치인이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칭찬하자,

그 다음부터는 그 정치인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완전하며 일관성이 없는 것이 그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중에 아무도 비판하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유혹 속에서 쉽게 험담과 비판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간단히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위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근거를 늘 생각하십시오.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온전한 신앙생활

 

그리스도인이 소망하는 온전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내가 하나되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금식이나 수도원 생활 같은 엄격한 규율에 자신을 복종시키려 하지요.
그렇지만 이같은 외적인 규율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외적인 공로를 내세우면서

자신의 경건한 신앙생활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증오와 분노를 드러냅니다.

이쯤되면 이들을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통과 아픔을 무시합니다.

이미 자기 자신을 외적인 경건함이나 선행만으로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진정으로 온전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깨닫고

자신의 악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같은 삶을 위해서는 바로 나 자신이 지닌 이기심을 극복해야겠지요.

내 몸을 유익하게 하겠다는 이 매력적인 이기심이야말로 외부의 어떤 적보다도 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단이 이 이기심을 충동질하여 공격하는 영적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요.

그리고 여기에 기도를 더하십시요.

순종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열매 맺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

 

사람들은 그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향하여 목표를 설정해 놓고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인내의 한계를 극복하며 노력을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남이야 어떻게 되었던 상관하지 않고 오르지 위에 군림하며 남을 짖 밟는 일을 서슴치 않고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너무나 많다.

혹자는 이것이 인생이고 생존 경쟁이니 어쩔수 없다고 합리화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하다고는 말 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목표를 이룬 후에는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 한다던가 그 자리까지 가는 과정의 온갖 비리와 잘못으로

사회의 심판을 받고 때론 옥고를 치르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우리는 목표가 결코 행복을가져다 주지 못한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삶에 있어서 불만이 없고 만족한 상태의 충만한 희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힘이들어도 고통이 닥쳐와도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할수 있는 삶이 행복아닐까?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답은 오르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만이 가능하다.

창조주를 떠난 그 어떤 만족이나 기쁨도 일시적이고 완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고향이나 부모의 품안에 거할 때 평안한 안식과 만족을 누리듯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창조주 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그 분이 주신 소명을 따라 사명을 감당할때 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될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달콤한 거짓 메시지'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는 마음, 입을 벌려 복음을 전하는 입술,
그리고 중보기도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두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듯이 그것의 10분의 1만이라도 경건하다면,
매주일 우리의 거리는 시온을 향해  힘차게 걸음을 내딛는 믿음의 용사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몸에 베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재를 뒤집어쓴 그들은
"어찌하여 교회가 추한 모습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고?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구나!"
탄식하며 머리를 흔들 것입니다.
독실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 우는 것만큼 우리가 기도의 골방에서 운다면,
부흥의 불길이 타올라 모든 더러운 것들을 전부 태워버릴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면, 우리도 사도들처럼 큰 일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전력투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의 뿌리인 우리의 '성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릎을 꿇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는 일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주님의 십자가를 겸손과 숭모의 감정으로 깊이 체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깨어질 것입니다.
먼저 교회가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제단 앞으로 몰려나와 회개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부흥의 세대여 통곡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