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자의 기도(잠15:8)
정직하다는 것은 네 가지로 구분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일반적인 정직이 있고, 법을 따라 사는 법적 정직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별 문제가 안 되는 정직입니다. 그 다음 한 단계 더 높은 양심적인 정직이 있습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도덕적인 정직입니다. 그 다음 성경적인 정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청교도들의 삶의 자세와 원리 중 첫째가 정직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의 후예인 미국 사람들은 지금도 부정직의 죄를 가장 큰 죄로 간주합니다.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 사람들도 비교적 정직합니다. 왜 청교도들이 정직을 삶의 자리에 대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을까요? 청교도들은 “하나님 존전”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코람데오 (Coram Deo) 즉 “하나님 존전에서”가 그들의 삶의 모토였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는 하나님의 눈과 얼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업을 해도 정직하게 했고 정치를 해도 정직하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에서 “정직이 최상의 청책이다” (Honesty is best policy) 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남을 짓 밟고서라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는 이기적인 탐욕이 발동할 때 그리고 하나님 존전 의식을 무시할 때 거짓과 부정부패가 자행됩니다. 그러면 사회는 병들고 무질서하게 됩니다. 우리 한국 사회 안에서도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다”는 말이 생겨나야 합니다 삶에 자리에 대한 정직의 자세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거짓말이란 얼핏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요,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잘해서 위기를 피해 가는 것이 세상사는 지혜라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농담처럼 하는 거짓말이나 선의의 거짓말이나 사소한 거짓말이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큰 거짓말이나 큰 죄를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옛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나중에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짓말을 큰 죄로 여기기보다는 전술과 전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거짓말을 섞어서 정치를 하고 목회도 합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정당화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사회가 있다면 폭력의 사회보다도 거짓말의 사회일 것입니다.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나 부부관계를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신뢰를 잃어버린 목사나 성도관계를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지옥 그 자체일 것입니다. 모든 죄악의 뿌리에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사단의 거짓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 인간은 언제나 거짓말의 위험과 유혹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도 거짓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은 거짓말을 멀리하고 거짓말을 미워해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진실된 것을 추구하고, 거짓을 내 자신이 미워하고, 그 거짓을 나에게서 멀리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질 때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순결과 거룩성을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즉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정직한 기도라고 하기보다는 기도하는 그 인간이 정직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정직한자의 삶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정직한 자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자입니다. 그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의와 정직을 지키고 행하기를 힘쓰는 의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바에 합당하므로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제 성도 된 우리들은 세상에서 정직한자로 살면서 그 속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 그 응답의 축복을 받음으로 넉넉히 세상을 이기며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정직한자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정직이란 사전적 정의는 “거짓·허식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은 거짓이 없고 마음이 바른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삶 없이 기도는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실은 진리에 끊임없이 자신을 합치시킨 상태입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 그것에 대한 확신, 그것에 대해 언제든지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복종, 그리고 진리의 음성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진리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진실이라는 것이 도대체 서푼 어치나 가치가 있습니까? 돈을 잘 벌고 재주 있는 것이 진실을 대신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도 그와 같이 진실을 버린다면 세상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까? 교회 안에서 통용되는 인간의 가치는 세상에서 유행하는 한 인간의 가치와 동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과 교회에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거짓말 하지 않는 정직함이 교회 안에서 정말 가치 있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삶은 진실하지도 않고 진실은커녕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자신이 깎이려고 하는 의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기도하라고 재촉하는데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삶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기도는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항상 "오직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내 기도가 어떻게 들려질까?"를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사람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했나?"는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아야 되지만 내 기도가 남에게 불안감, 혐오감, 불편함을 주지 않는가?"는 신경 써야 합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면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살피는 기도가 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도가 없다면 그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놀라운 축복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때 먼저 기도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 기도하는 삶은 믿는 사람의 진실한 신앙을 나타냅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것은 진정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기도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진실한 신앙을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생활속에 건강 진단은 복잡한 진단이 필요하지만 기도의 건강 진단은 간단합니다. 기도 해 보면 압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온 마음으로 부르짖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으면 외치는 소리는 예배당 공간을 휘돌아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자 애쓰는 삶이고 부족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생명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대단하게 부르짖는 육체의 고함소리는 없어도 소리로는 잠잠하나 여러분의 마음속은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자의 기도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자의 기도는 주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입니다.
열왕기상3장10절에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무엇을 구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기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꺼히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보너스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기도하는 사람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정성을 드려 기도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5장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공적인 기도자는 주의 뜻을 원하며 그 뜻대로 순종하려는 자가 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기도 내용이 내 욕심, 내 이익, 내 만족, 즉, 내 뜻을 기준 해서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유익을 중심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강한 역사하심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편37편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6장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직한자의 기도는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요 주님을 기뻐하는 기도요 주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2.정직한자의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말과 기도를 들으십니다.
430년 동안 애굽의 고통스러운 노예생활을 하면서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의 간구를 들으시고, 출애굽 지도자 모세를 보내 주셨습니다.
한나의 술취한 듯이 중얼거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자의 몸에서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칭찬받고 예수님의 오시을 예배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술의 모든 말을 들으십니다.(시편19:14)
【찰스 캡스의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라는 자서전적 신앙서적이 있습니다.
거액의 합작 사업투자에 실패하고 낙심하여 영육 간에 깊은 병이 들었다가 이로 인해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성경공부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자신의 실패의 원인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불평불만적인 말"에 있음을 깨닫고 "말과 혀와 기도에 관한 성경적인 영의 훈련"을 시작하여 몸의 질병과 인생의 절망과 사업의 실패를 극복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
인간은 범사에 실수와 허물이 많지만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자입니다. (야고보서3:1-12)
마음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말을 통해 입 밖으로 토해 놓는 것과 토해 놓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서류를 작성하고 자필 싸인(도장)을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차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18:21)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말(언어)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이사야57:19).
온유하고 겸손한 말은 에덴동산과 같은 축복과 형통과 평강의 삶과 가정을 건설하는 창조적인 힘이 있지만, 어리석고 교만한 말은 자기 자신과 가정과 자식과 다른 사람까지도 파멸시키는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며 구한 것 이상의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신앙생활이란 살아 계신 하나님께 구하며 응답을 받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며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바쳐지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요한계시록 8장3-4절에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제단이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단입니다. 제단에는 희생 제물을 즉 소나 양과 같은 짐승을 태워서 드리는 성전 마당의 번제단과 향을 태워서 드리는 성소 중앙의 분향단이 있습니다.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 즉 향을 피우기 위해서 만든 금 그릇을 가지고 향을 받습니다. 향은 성도의 기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8절에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습니까?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드디어 향에 나오는 연기가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에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향을 피워 향의 연기 즉 향연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은 제사가 드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향의 연기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은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의 기도가 이 향의 연기와 함께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것은 성도의 기도가 단순히 요구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즉 예배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필요한 것을 달라고 하는 청구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장이 아닙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탄원서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셔야 그 예배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도도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응답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요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응답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일단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지를 않으신다면 우리의 기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받으십니다.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는 기도로 하나님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정직한자의 기도는 성도의 기도입니다.
기도 중에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가 있고 들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시편 32편6절에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경건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고 진지한 기도와 회개의 눈물을 보이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탄식하는 사람은 훨씬 깊은 경건의 자리에 이른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 그를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 얼굴에 새긴 사람은, 그리하여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발견하며 모든 사역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알아보며 매사에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 소원마다 은혜의 보좌를 찾으며 간구마다 자비의 보좌를 구하며 하나님 없이는 못사는 사람, 하나님으로 기쁨을 삼고 하나님을 자기 얼굴을 도우시는 분으로 삼고 하나님 안에서 거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세토록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할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경건한 사람인지 스스로를 한번 판단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 자신을 평가하도록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32편6절은 우리가 경건한 사람 가운데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를 제시합니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여기서 우리가 맨 먼저 알 수 있는 사실은 기도는 경건한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신앙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면 그에게 일어나는 맨 첫 번째 변화는 기도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첫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표가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기도하기까지는 우리는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정직한 기도, 올바른 기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에게 가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특별히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기도가 어렵다고 대답을 합니다. "기도가 제일 힘들어요. 어떻게 기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1분만 기도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요. 목사님 기도를 꼭 해야 됩니까?" 이런 이야기들을 가끔 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 기도 때문에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어찌도 그렇게 부러운지, 또 기도를 응답 받았다는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사람을 보면 보통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신령한 사람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하기도 합니다.
기도의 거장인 바운즈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까지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를 대신할 만한 것도 없고 기도에 버금갈 만 한 것도 없다." 옳은 말입니다. 정말 기도를 빼버리면 신앙생활은 심장이 멎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또 기도할 때에 바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 할 때에는 뜨겁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바로 해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바른 모습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복된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우리에게 기도할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기도할 환경도 주시고, 어떤 사건도 만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기도가 중단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우리에게 기도의 문이 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복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두려움과 걱정대신에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응답의 기쁨이 올 것입니다. 마음엔 큰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길이 있어야 됩니다. 성도에게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영적 힘이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소금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렇습니다. 자고로 소금은 짠 맛이 나야 합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소금이 아닙니다.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 데도 쓸데가 없습니다. 그저 바깥에 내버려져서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에게도 매 한 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 매력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강한 영적 힘이 없다면 세상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요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강력한 영적 힘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매력을 세상에 마음껏 발산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만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이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능력 있는 성도의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의 힘을 발휘하면 능력있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생활정보신문 ‘벼룩시장’을 아실것입니다.
생활정보 신문 벼룩시장의 회장은 주극남장로님입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시작한 벼룩시장은 자회사인 대원인쇄(주)에서 인쇄를 시작해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4면짜리 정보신문을 만들면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연매출 1천억원, 종업원 1천명의 어엿한 중견기업이 되었습니다.
벼룩시장이 이렇게 크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기도의 힘”입니다. 주극남장로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생활정보지 영역을 개척하며 이토록 번창한 데에는 기도의 힘이 가장 컸다”고 말합니다. 부천감리교회 장로인 주회장님은 벼룩시장을 발행한 뒤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해오고 있습니다. 벼룩시장의 성공요인에는 주장로님의 기도가 녹아 있습니다. 주장로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의지를 움직이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정직한자의 기도는 성도의 기도입니다. 즉 성도가 정직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정직한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ε♡з하나님께로..ε♡з > 기도의횟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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