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인 유학생들을 통한 하나님의 비전
중국 한인 유학생들의 상황
1992년 한ㆍ중 수교 이후 중국을 찾는 한국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특히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선양(沈陽), 창춘(長春) 등 대도시에는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들어와 잇다. 이 중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수는 약 1만 2천 명 정도로 추측되는데, 애략 이들은 기업 주재원 또는 사업상의 목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5천여 명과 7천여 명 정도의 유학생으로 분류된다. 유학생들의 단기 언어연수의 경우 짧게는 6개월부터 보통 1-2년, 학부 과정일 경우 4-5년 정도 중국에 거주한다. 석ㆍ박사 과정까지 밟게 되면 기간은 더 연장된다. 최근 들어 한국의 조기유학 바람을 타고, 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비교적 나이 어린 학생들도 늘고 잇다. 중국의 각 대학에서도 한국인 유학생들을 유치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하이디엔취(海淀區)의 쉬에위엔루(學院路)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들이 밀집해있는 곳이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다. 한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과 술집, 카페, 노래방, 디스코텍 등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서는 심심찮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다.
해외에 나가 잇는 한인 유학생들의 부정적인 실태에 관한 ‘고발성’ 기사가 국내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 된 바 있다. 중국에서도 유학생활의 외로움과 긴장감, 학업에 대한 부담감 등을 견디지 못하여 방황의 길로 빠져드는 유학생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높다. 현지 유학생들에 따르면 의외로 현지 적응에 실패한 유학생들이 비교적 많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한국보다 여유롭게 시간과 돈을 쓸 수 잇는 환경이다보니 쉽게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다. 심지어 방 값을 나눠 내면 이득이라는 이유로 동거하는 남녀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한 유학생은 일부 학생들의 부정적인 행동 때문에 다른 한국인들까지도 불이익을 받는다며, “밤마다 술 마시고, 수업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이성문제가 문란한 유학생들로 인해 중국에서 한국인의 이미지가 아주 나쁘다. 심지어 한국 학생은 받지 않겠다고 한 학교도 있다.”고 푸념하였다.
물론 이것은 일부 유학생의 경우이다. 방과 후에 중국어 개인교습을 하고, 도서관에 파묻혀 학과 공부와 HSK(중국어구사능력평가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등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이 더 많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상황은 단지 믿지 않는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비교적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왔으나, 중국에 와서 세속적이고 향락적인 문화에 쉽게 빠져드는 젊은이들도 있다. 열심히 봉사해야만(?) 했던 교회 생활로부터의 자유, 부모의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감에 젖어 어느 새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다음에서 중국 유학을 마친 두 사람의 사례를 통해 한인 유학생들이 유학생활 중에 겪게 되는 방황과 조절, 그리고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례 1> ‘좋은 향기’로 기억되는 유학생활
나에게 있어 중국에 대한 기억은 향내가 좋은 모과와 같다. 모과는 못생기고 투박하지만 향내가 오래가는 열매다. 진한 향내는 모과의 못생김을 덮고도 남는다. 나의 중국 유학생활은 모과처럼 투박하고, 어떤 면에서는 잊고 싶을 만큼 못생긴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오래가는 모과처럼 나에게 짙고 그윽한 향기로 남아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신앙적으로 매우 경색된 분위기 였다. 내가 볼 성경도 다른 종이로 겉표지를 감춰서 가지고 가야 했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밝히는 사람도 드물었다. 식당에서 식사기도도 못할 만큼 얼어있는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눌려 있었다. 신앙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유학을 시작했을 때의 큰 다짐도, 신앙의 열심도 사라져 갔다. 캠퍼스에 동료 크리스천 학생들이 없어 영적인 생명과도 같은 교제를 기대하기 어려운 가운데, 내 안에 남아 잇는 신앙의 불시를 스스로 지피기에도 힘이 부족했다.
그런 가운데 유학생인 나에게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시간은 한없이 나를 세상으로 밀어붙였다. 점점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들과 동일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내 안의 양심은 끊임없이 나를 호소하고 자책했지만, 내 영혼은 풀린 고삐 같았다. 한국에서는 이런 나를 제어할 친구도, 교회도, 친척도 있었지만, 이곳에는 무너져 가는 나를 제어할 장치들이 주변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에 가졌던 선교의 꿈들이 부담스러워지고 멀어져 갔다. 말씀과 기도도 싫어지고, 교회로 향하던 발걸음은 어느새 끊겼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은 머리에만 머물렀다.
유학생활을 그나마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원 입학시험이었다. 시험은 보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를 지지해주었던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랜 동안 쌓아 온 신앙이 무너지는 데는 1년도 안 걸렸다. 큰 결심과 뜨거운 열정도, 수년간 쌓아온 영적인 훈련도 단 몇 개월 만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내 인생에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들이었다. 나는 중국 유학의 첫 해를 이렇게 보냈다.
이런 내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우연히 알게 된 한인교회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햇는데, 한국어로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니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듯 했다. 그 때 하나님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하셨고, 이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주셨다. 그러던 중,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 때였다. 화사한 봄날이었던 그 날, 목사님은 잃어벌니 양의 비유를 설교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셨다. 나는, 지금까지 죄 위에 죄만 더하고 있는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잠잠히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깊이 느껴져 한없이 울며 돌아섰다. ‘그 분이 나를 용서하셨구나! 이런 나도 다시 받아 주시는구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그 때 내게 다가왔던 예수님의 향기는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새롭게 주님을 만난 내 삶을 바뀌었다. 유학생활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교만했던 마음이 낮아졌고, 사람들의 연약함과 유학생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그 후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면서, 나의 유학생활을 향한 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작은 믿음의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그 때 알게 된 신실한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그 불시에 불을 당겨주었다. 내가 힘을 얻자 이 힘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함께 공부하던 중국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 중 한명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리고 몇몇 형제들과 중국어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사랑하는 동료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였다. 그들과 함께 중국을 위해, 동료 유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다른 많은 유학생들을 도울 수 있었고, 함께 하나님을 함께 체험하는 시간들을 누렸다. 참으로 멋있고 귀중했던 시간들이었다.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인 유학생, 특별히 그가 크리스천 이라면, 이것은 우리를 주의 복음이 필요한 중국 땅 가운데 부르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중국을 떠난 지 수년이 지났다. 한국의 복잡한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늘 중국에서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중국은 내게,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깨닫게 해주고, 동시에 주님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주님이신가를 배우게 해준 땅이다. 나에게 있어서 중국 유학은 학위취득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깨닫고 삶이 바뀌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내 아픈 실수와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 뒤덮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에서의 유학생활은 늘 ‘좋은 향기’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사례2> 유학생활 속에서 발견한 비전
중국어 공부에 대한 여러 계획들을 가지고 중국 유학을 결정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어렵게 진행시킨 유학이라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경험을 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중국은 결코 만만찮은 곳이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겪은 기숙사 문제는 넘어야 할 첫 번째 고비였다. 나는 저렴한 기숙사를 원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방이 없다며(사실은 방이 많았는데) 줄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비싼 기숙사에 묵게 되었고, 한 학기가 지나서야 겨우 방을 옮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지만 당시에는 너무 큰 장애물로 여겨졌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유학생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교회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나와 같은 시기에 오신 한 선교사님의 인도로 모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특히 종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예배당을 옮겨다니며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향한 더욱 간절한 믿음이 생겨났다. 청년부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분들과 교제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미 몇 년씩 중국에서 생활한 지체들의 도움은 중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청년 모임에서 나는 룸메이트와의 마찰, 중국어 공부에 대한 부담감, 생활의 외로움 등 힘든 문제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 안에서 친밀하게 교제하였다. 그러면서 점점 중국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내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이들과의 교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 머문 1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길지는 않지만, 내가 본 유학생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주변의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에 빠진 친구들도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 와서 대학에 입학하였고, 한인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갑자기 늘어난 자유와 공부에 대한 부담감, 외로움 등으로 인해 학교 수업은 거의 나가지 않았고, 세상의 즐거움에만 빠지게 되었다. 그 친구를 보면 무척 안타까워서 교회에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어떤 위로도 될 수 없었고 도움도 주지 못했다. 친구를 이끌어줄 누군가가 있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반면,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롭게 자신을 잘 추스르는 친구도 보았다. 그 또한 크리스천 이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에 부딪혀 처음으로 담배까지 피우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어려움을 모임에서 함께 나누고 기도하였다. 이 후 그 친구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이전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유학생활을 해나갔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국에서의 1년은 너무나 귀중한 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중국과 중국인들이 너무 좋았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가슴 아팠다. 중국어 공부를 목적으로 갔던 유학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선교사님들에게 제자양육을 받게 하셨고, 중국선교에 대한 비전도 주셨다. 중국에 잇는 모든 한인 유학생들은 중국을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학생들을 이끌어 주고, 이해하며, 사랑해 줄 전문 사역자들이 많이 세워지길 소망한다. 중국의 유학생들은 얼마나 이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중국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유학생들의 신앙의 전환점이 되는 한인교회
위의 유학생활 경험기에 잘 나타나 있듯이, 한인교회는 유학생들의 신앙과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중국에 있는 유학생들의 밝은 장래를 위해서는, 중국 각 지역에 잇는 한인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교회와 성도들은 따뜻한 시선으로 유학생들을 바라보고 실제적인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인 유학생들에 대한 부담을 갖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사역하고 있는 몇몇 한인교회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유학생사역에 있어서 무턱대고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만으로 이들을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해 온 유학생들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이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낄 만한 접촉점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 교회의 경우 성경공부와 중보기도 모임은 물론, 스포츠, 영화, 음악, 심지어 중국요리 동아리까지 개설했다고 한다. 또 다른 교회의 사역자는 날마다 각 캠퍼스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대화하고, 때때로 축구, 볼링 등으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명절이나 휴일에는 교회의 어른들이 돌아가며 학생들을 집에 초청, 김치 등 한국 음식을 대접하여 섬긴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사역 방식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성도들도 많았다. 그러나 점차 이런 가운데 유학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헌신하는 이들이 늘어가자,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유학생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고 있다.
90년대 이후 일찍이 유학생 사역에 헌신한 몇몇 한인교회들의 수고로 말미암아, 한인유학생들이 유학 생활 중 부딪히는 여러 가지 유혹에서 승리하고, 제자의 길로 나아갈 수 잇었다고 생각하낟. 한 명의 유학생이라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도 기도하며 수고하는 중국의 모든 사역자들을 축복하며 격려를 보낸다.
필자는 이전에 중국을 위한 중보기도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중국의 각 영역별로 중보하는 그 시간에 참석자 모두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기도가 떠오른다. “중국에 유학 중인 크리스천 한인 유학생들을 통해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문화를 이식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기도처럼, 이들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중국에 있는 모든 한인 유학생들이 하나님의 부름과 도전에 합당하게 응답하고 반응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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