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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교권전도에 대한 몇가지 생각

예림의집 2011. 4. 3. 06:01

    불교권전도에 대한 몇가지 생각     


  기독교인이 불교와 관련된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있어서 복음에  확고

히 서 있는가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첫째되는 문제일 테지만 사도 바울

도 그리이스 문화에 대하여 잘 알았던 것처럼( 사도행전 17:28 )  제가

불교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도달하게 된 몇가지를 여기에 적어  보려고

하여 펜을 들었습니다. 너무 주제넘는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미리  사과

를 드리겠습니다 : "미안합니다. 제가 주제가 넘었습니다. 이번만 쓰고

다시는 이와 똑같은 글은 안쓸 겁니다."


1. 불교도들은 헬레니즘 철학과 불교를 혼동한다


  아잔타 석굴로 대표되는 헬레니즘과 불교와의 만남은 아직도 문화 유

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에는 몇년 전에  조선일보  역사기행

사진에서 볼 수 있었듯이 불상을 지키는 자로 헤라클레스가 그 우상 옆

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이스 문화가 뒤섞인 것이  대승불교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승불교는 싯달타가 죽은 뒤에 몇 백개의 파벌로 나뉘어졌기에 아소

카 왕 때 팔리어라는 남방어로 불경 결집이라는 것을 할 만큼 어지러웠

습니다. 그 때를 연구한 사람들은 싯달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었는지

조차 규명하기 어렵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그런 소승불교가 알렉산더가 이끄는 동방원정  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이스 문화와 이러한 연결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 문화

유적이 아잔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조각품만 이렇게 관련이 있

을까요 ?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상과 철학  및  생활방식까지도

영향이 있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헬레니즘 당시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스도이고(스토아 학파)와 에비

구레오(에피쿠로스 학파)는 물론 디오게네스 류의  견유학파(견유학파)

도 포함이 됩니다.


  스토아 학파는 제논에서 시작되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서 보이듯

이 매우 관념적이고 견인적이라고 불립니다. 사상의 체계가 거대한  피

라밋을 연상시키는 구조입니다. 여기서는 금욕주의가 강조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평정상태를 최고로 칩니다. 이 사상체계는 그  평

정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에 따라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스토아적 방식

을 택하여 정신적인 평정에 기울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 쾌락에 젖어 버

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견유학파는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의 대화에서 보듯이 빈

통속에서 살다가 왕이 가까이 오자 "왕이여, 햇볕을 가리니 춥소."  하

는 식입니다.


  이러한 사상과 대승불교라고 불리는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관념적으

로 다음과 같은 계산을 해보시라는 것입니다.


             대승불교 - 헬레니즘 철학 = ?


  뭐가 남을까요 ? 우상 ? 미신 ? 중얼중얼거림 ? .......  헬레니즘은

결국에 복음에 의해서 구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스토아, 에피쿠로스,

견유학파 같은 그리이스 철학은 신학의 시녀가 되었습니다. 복음에  의

해 새로와지자 스콜라 철학이 되고 종교개혁을 지나서  더욱더  새롭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헬레니즘에 의해 변모된 인도의 불교라는 철

학(?)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 교회사는 이미 이 싸움을 겪어둔  것이

아닌지요 ?


  다만 여기서 하나 더 기록해두고 싶은 것은 이 당시의 세계 문화사에

있어서 비판되어야 할 것은 페르시아 문화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

겨낸 배화교 문제랍니다 ). 이것은 다음에 연구를 더해야  되겠습니다.

불교를 잘못 물고 늘어지면 자칫하다가 배화교와 섞이거나 힌두교나 브

라만교와 아주 잘 뒤섞이고 심지어 회교까지도 뒤섞이니까  조심하시기

를 바랍니다. 지식에는 절제를 지니고 넘어질까 조심조심해야만 되겠더

군요. 물론 책보다는 제 생각으로 연구해온 것이지만.


2. 불교도들은 주문이나 부적을 선호한다


  불교도들이 신성시 여기는 숫자가 있습니다. 108이라는  숫자입니다.

이것을 생각해다보니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의 2승 곱하기  3

의 3승이 바로 108이다( 소인수 분해를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


  그런데, 싯달타가 살던 B.C. 5C 경에는 지금의 생각을  초월할  만큼

인도에는 수학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당시에 벌써 엄청나게 여려운  수

학이 있었음을 지금 발굴되는 각종 자료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

다. 그러니, 어쩌면 108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

을 것입니다.


  혹시 마방진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어떻게

더해도 값이 같은 숫자표 말입니다. 서양에서는 한 때 그것이 부적이었

답니다. 불교도들은 108이라는 숫자가 일종의 부적이지요. 그러나,  그

수치가 당시에 발달한 인도수학의 배경에서 보자면 그리 대단한 게  아

니라는 겁니다. 지금도 마방진이 부적입니까 ? 그처럼 108이라는  숫자

가 뭐가 그리 대단할까요 ?


  이 세상에는 수도 묻지 못할 만큼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현대인이

겪는 문제들이 2를 두번곱한 것과 3을 세번 곱해서 나온  수치를  두개

곱한 수치만큼만 있겠습니까 ? 오히려 2와 3을 더한 수를 2와 3으로 더

한 수 만큼 곱한 수치가 중요할 테요( 5의 5승은 3125 ), 2와 3을 곱한

수를 2와 3을 곱한 수만큼 곱한 수치가 더 중요할 것이요(  6의  6승은

46656 ) 등등 .. ! 결코 108이라는 숫자는 신비할 수가 없는 숫자인 겁

니다.


3. 옛날 삼국시대 때 절간 등이 거대했다는 것은 주목할 게 못된다


  이 문제는 여러분들께 맡겨두겠습니다. 당시에 인구가 적었다는 사실

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한번씩 그런 규모의 일을 일으키려면 아

무리 계급제와 종교적 열심이 있었다지만 ........ 생각해보면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고작 만든 것이 우상이었으

니 ! 예컨대, 고려왕은 팔만대장경을 죽도록 만든 뒤에 몽고에  항복해

서는 100년동안 속국이 되었었지 않습니까 ?


  결론적으로 정말로 가련한 중생( 이것이 짐승의 어원이라니 ... !? )

이 도대체 누구이겠습니까 ? 우리 주변에 너무 많지요 ? 1년에  절간에

한번이나 나갈까 말까 하면서도 불교도라는 불쌍한 사람들 말입니다.

출처 : 예림의집
글쓴이 : (운영)은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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