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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고난과 사순절

예림의집 2011. 3. 5. 14:35

     제  목 : 십자가의 고난과 사순절
     자료원 : 배성산목사 서울교회 기장
     구  절 : 슥 9:9-12 고전 1:18-25
    

    옛 언약의 말씀 = 스가랴 9:9-12
    새 언약의 말씀 = 고린도전서 1:18 - 25

    오늘 주일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이며 다음주일은 고난(종려)주일이다. 사순절 다섯째 주일에서 고난 주일까지는 죽음의 준비 주간이다. 그러므로 사순절 다섯째주일에서 부활주일까지의 2 주간은 교회력 가운데 가장 의미 깊은 주간이다.

    예수는 권위와 영광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고 고난과 슬픔의종으로 오셨다. 이사야는 고난의 종으로 오 시는 메시야의 모습에 대하여 생생하게 예언하였다(이사야 53장)

    그는 실로 무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질병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 으려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인함이라 그가 징 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메시야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질고와 슬픔을 당하신것을 말하였다. 또 그는 우리를 위하여 질병 과 고난을 당한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위하여 찔림과 상함을 받고우리의 평화와 나 음을 위하여 징계와 채찍에 맞는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슬픔과 죽음에 대하여 생생하게 묘사 하였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복종은 십자가 상에 절정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를 주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 도의 고난과 슬픔과 죽음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길은 하늘의 영광과 이 세상의 행복을 누리 는 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영광과 행복을 누리기전에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도 훌륭한 유대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헬라로마의 수많은 학문과 지식을 익혔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믿음을 가진 이후부터는 지금껏 지니고 있던 지식의 한계와 어리석음을 철저히 깨달았 다. 구원의 진리는 인간 이성에 의하여 깨달아지는것이 아니다. 하나님안에서 약하고 어리석음이 세상지혜와 세 상의 강한 힘보다 더 낫다. 당시 십자가의 도(道)를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부류도 있었다. 하나는 헬라인들로 철학적 사고와 수사학 웅변술등을기초로 한 언변 최고의 지혜로 여기는 자이고 또하나는 유대인들로 표적이 하나 님의 뜻을 발견하는 최고의 수단이라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이것은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되고 불신자에게는 심판이된다는 진리는 철학적 사고와 체계있는 논리 적 학문에 익숙한 헬라인들에게는 매우 우습게 느끼는 것이다. 또 십자가의 수치와 고통을 당시 화려한 헬라문 명의 혜택을 누리던 헬라인들에게는 도저히 용납될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기적이나 이적을 체험 하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불신이었을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불신하는 이유는 무었일까? 예수는 미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일평생 집한칸 마 련하지 못한 무주택자였고만 인류의 구원이 된다고 예수의 가르침이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는부합하지 못하였 고 예수가 메시야일자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십자가에

    서 죽음으로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원의 진리는 이성과 철학적사색으로 깨달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 믿는 이들에게 예수는 자기의 생애를 십자가로 훤히 내어 보이신다. 예수의 생애는 고난으로 일관했 다. 예수의 탄생 자체도 고난이다. 하나님께서는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그 자체가 바로 고난인 것이다. 마 굿간에서 태어나 갓난아기인 두살때 애굽으로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피난을가셔야 했고 30년간 목수의 아들로서 가사를 돌봐야 했고 공생애 3년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둘곳이 없다고 고백하셨다.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의 피와 땀을 흘리는기도와 로마 군인에 의해 체포되어 헤롯법정, 빌라도 법정으로 끌려다니면서 재판을 받 으셨고 판결에 의해 십자가를 지시고 12번 넘어지면서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는 고통을 당하셨다. 마지막 십자가 의 처형에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다 이루었다]는 말을 남기고 운명하셨다. 예수의 생애 전체가 고난의 생애였다. 그래서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라고한다. 그러면 예수께서 죄가 있어서 고난을 당하셨는가? 그것은 진리와 정의를 위해 당하신 고난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이세상에서 정의롭게 진리대로바르게 살려고 하면 고난이 따르게 된다. 이 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야 된다. 모든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 태어난다. 어떤 생명이든 고난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다. 인간이 태어날때에도 모체는 고난을 겪는다. 산실은고통과 신음 소리로 꽉찬다. 동물뿐만 아니라 초목도 그렇다. 한 국가나 사회가 태어날때도 그렇다. 어떤 제도나 질서가 창조될때도 그렇다. 고통과 고난없이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 고난은 인간 생명 의시작이다. 모든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 성장한다. 그리고 성숙해 간다. 고난을 겪지 않은 인격과 고난을 통해 연단 받은 인격에는 큰차이가있다. 한국교회는 고난보다 안일한 축복속에 자리를 펴고 안주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복을 잘파는 사람들이 인기가 있다. 기독교는 집안에서 안주 하는 주인(Insider)보다 그 집을 지키는 파숫군(Outsider)이 되는데 본질적 사명이 있다. 조직을 잘하고 관리를 잘하는 지배적이고 관료적인 체제가 되어질때 기독교는 안으로부터 썩어갔던 경험들을 하였다. 복음은 들판으로 뛰어나가도록 유도되어야 한다. 세례요한이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고 바울이 그렇다. 그 이유는 구주예수 그리수도가 그렇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안일해져서는 안된다. 고난의 종들이 하나님이 쓰시는그 시대의 종들이 되어야 한다. 고난을 잊지 않고 기념하는 사순절에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더욱 기념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그리스도의 왕국이 들어있고 세상을 이겨나가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