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신문은 매일 무서운 사건들로 그득하고 TV에는 참혹한 모습들이 넘쳐난다. 우리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험악해지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만 한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앞에 나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를 막아서는 만만치 않은 방해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바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바쁘게 돌려대는 이 세상의 구조에 휘둘리고 있다. 직장인이나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어찌나 바쁘게 돌아치는지 모른다. 해야 할 일로 인해 예배드리는 흉내만 내거나, 일이나 시험 또는 대회 등으로 예배를 등한시하기도 한다. ‘바쁨’의 대세는 인스턴트식(?) 예배라는 초간략 메뉴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둘째로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은 ‘재미’이다. 골프시간에 맞추려고 이른 아침에 간단하게 예배를 치루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재미에 푹 빠졌다가 예배시간에는 피곤해서 졸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라는 최신기기의 다양한 재미, 특히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재미’의 대세는 예능이 방송을 장악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설교와 예배까지도 재미본위로 변질시키고 있다. 셋째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지 못하게 공격하는 것은 ‘사탄의 송사’이다. 사탄은 ‘네가 남몰래 한 일을 다 알고 있어, 네 꼬락서니를 보라지, 이러고도 예배를 드리겠다고?’라며 우리의 약점을 공격한다. 특히, 주일 아침에 부부간에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생기거나 아이들의 늦장으로 큰 소리가 나면서 마음 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사탄은 이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이런 기분으로 예배를 드리느니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낫지 않겠어?’라고 유혹한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같이 ‘예수님의 피’이다. 우리들의 어떤 훌륭한 행위나 조건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예수의 피’이며,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처럼 가장 고귀한 그리스도의 육체로 열어 놓으신 길이야말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기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함께 나가야하며,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19-25)같이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모여야 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모이기를 방해할 것이므로 더욱 권하여 모이기를 힘써야한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기위하여 예수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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