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우리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가에 의해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는 가에 따라 교회의 방향이 결정된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교회는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는가? 성경은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같이 재물이 아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명하고 있다.
재물/이 세상에 소망을 둔 자들은 마치 곳간을 더 크게 짓고 곡식을 그득히 채우고는 내 영혼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외치는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와 같다. 이들은 어리석은 부자가 우선적으로 곳간을 더 크게 짓기에 혈안이 되었던 것처럼 좀 더 큰 아파트와 좀 더 거창한 예배당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고는 세상의 편안에 취해서 더 이상 하나님의 평안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기만족에 안주해서 더 이상 버려진 자들은 찾아 나서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없으면 형식적인 신앙으로 변질된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남의 눈을 의식해서, 즉 가족들의 비난을 의식해서 교회에 출석하고, 경제적이거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교회에 등록하며, 교우들의 눈치를 의식해서 봉사에 참여하고, 사역자들의 책망을 의식해서 헌금도 한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이 늘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하나님/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자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b-14)같이 찾아갈 본향이 있기에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간다. 나그네는 잠시 머무는 곳에서 백년천년 살 것처럼 거창한 건물을 짓지도 않고, 짐이 될 것들로 가득 채우지도 않는다. 이들은 모세가 그러했듯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5-26)처럼 소망, 즉 상 주심을 바라보기에 잠시 죄악의 낙보다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고,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긴다.
우리가 어떻게 소망을 계속 붙잡고 나갈 수 있을 가는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4-36)에서 같이 먼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을 분명히 알아야하고, 세상을 추구해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세상의 강력한 주장에 대해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하며,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끝까지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가 소망을 굳게 잡고 나갈 수 있는 근거는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 10:23)같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미쁘심, 즉 절대로 변치 않으시는 신실하심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 6:19)처럼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과 같은 소망을 소유하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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