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모범적인 목회
(고린도후서11:1-4)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쏟은 자신의 헌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런 자랑은 거짓 선생들의 간계에 쉬 넘어간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 교회를 위해 복음으로 헌신한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절에서 ‘나의 어리석은 것을 좀 용납하라’는 말로 이해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바울의 목자 상
5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역 자로써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과 비교하고 있는 지극히 큰 사도란 예루살렘 교회에서 존경받는 사도들로 예수님에 의해 사도 직을 받은 사도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바울이 이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는 말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수준의 사도인 것을 강조하려는 표현입니다.
바울도 주님에 의해 친히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요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도로서의 권능이나 계시는 오히려 더 권위가 있으면 있었지 모자람이 없다는 의미로 자기를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바울은 사도 직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비록 말에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졸하다는 말은 ‘이디오테스’(ἰδιὠτη)로 ‘평범한’이란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그는 특별히 훈련받은 웅변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므로 이런 웅변술에 뛰어난 거짓 선생들과 비교한 것입니다.
바울이 스스로 자신의 언변에 대하여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울의 겸손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말에 능한 능변가들이 많았으며 거짓 선생들 중에도 그런 인물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한 바울은 복음 전파를 말에 의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자신하고 있는 지식은 세상 학문에서 얻은 지식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존귀한 지식에 대하여 그가 받은 계시와 그의 연구를 통해서 터득했으며 이런 지식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자랑 때문에 1절에서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바울이 낮아진 것이 죄였느냐?
바울은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높이 평가하지 않은 일 중에 하나가 고린도 교회에서 겸비하여 최대의 너그러움으로 교인들을 대했고 다른 하나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일절 사례금을 받지 않았다는 일에 기인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7절에서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스스로 바울보다 자신들을 더 높여 권위 있는 사도로 인정받으려 했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해 온 것입니다. 그 반면에 바울은 지난날 고린도 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당시, 그들로부터 사례금을 받지 아니하고 어떤 금전적인 피해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일이 말썽이 된 듯 싶습니다. 바울은 사도적 권위가 없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값없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이 사용하는 경비는 이미 신앙이 장성하고 바울의 선교 사업에 자진해서 협력하는 다른 여러 교회 성도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바울의 대적 자들은 바울의 그 같은 행위는 성도들의 헌금을 탈취한 것이라고 모함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목회 할 때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떤 만족을 채우는 일에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복음이 그들 가운데서 왕성해지고 이 복음으로 인해서 구원받는 무리들을 더 많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비용에 대해서 교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아니했습니다. 바울은 아직 신앙이 연약한 그들로 이로 인하여 시험에 들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목회자가 교회에서 급료를 받는 일에 대하여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고전 9:7절에서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자랑을 내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 자랑이란 것이 값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재정을 자신의 급료를 위해 하나도 쓰지 않은 일을 밝히면서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런 일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9:15).
결론 : 바울의 선교 자금은 주로 마게도냐 교회에서 모금하여 바울로 복음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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