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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십자가, 그 참된 사랑

예림의집 2010. 3. 27. 14:16

설교 제목: 예수님, 십자가, 그 참된 사랑

설교 본문: 마가복음 15:21-32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 (번역하면 해골의 곳) 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 삼 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 15:21-32).

 

오늘은 사순절 6번째 주일이자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이며 동시에 그것은 고난주일의 시작이기도 한 것입니다. 먼저 사순절, 종려주일, 고난주일의 뜻에 대해 알아야겠습니다. 사순절이란 부활주일로부터 거꾸로 세어 주일을 땐 40일 전부터 시작되며 이 기간 동안은 예수님을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죄를 회개하는 기간이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주님이 그 위를 지나가도록 하면서 주님을 찬양했던 것을 본 따서 그렇게 행한 의식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은 종료주일 을 포함해서 일주일간을 이야기 합니다. 그 일주일간의 행적은 따로 나누어 드린 프린트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15장 전체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15장 1절을 보니까 처음 시작을 '새벽에'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새벽은 고난 주간 중 마지막 날인 금요일 새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서 빌라도에게 잡혀오게 되었습니다. 붙잡혀온 예수님에게 빌라도는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이 말씀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한 마디만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비겁한 자의 침묵이 아닌 언어의 절제인 것이고 하나님의 뜻의 순종하는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유대 풍습 중에 명절이 되면 백성이 원하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죄수 중에 바라바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던 자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습니다만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은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바라바를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씩은 아무런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대중의 어리석음을 볼 때가 많습니다. 15절에 보면 빌라도는 백성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서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을 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흥적이고 깜짝쇼 같은 모습이 처음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라도 그것의 허구가 드러나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두려웠던 것이지요. 자기가 혹시나 잘못을 해서 백성들이 데모를 일으키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지요. 이제 예수는 붙잡혀 와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갈보리 산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번역하면 '해골의 곳'이었습니다. 이제 제 3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을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제 6시가 되어서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더니 9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제 9시에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크게 외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주님도 그 마지막 운명하시기 전에 인간적인 모습으로 탄식하신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예수님에게서 절대 고독의 순간이셨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모습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이미 모두 도망을 갔었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지켜본 자는 요한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했던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마저도 3번씩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까? 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전부를 언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그에게 나의 삶을 바친다는 의미일 텐데 정작 마지막에는 어떠했습니까? 물론 베드로는 마지막에는 성령의 체험을 하고서는 놀랍게 변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을 따르겠다던 주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정작 잡혀가게 되었을 때 도망을 간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입으로는 주님을 고백하지만 몸으로는 실지로 삶속에서는 주님을 고백하는 삶이 우리에게 있는가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그리고 죽으신지 4일이 아닌 3일 만에 살아나셨다고 하는 그 도식적인 것만 믿으면 우리의 믿음이 끝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믿음의 모습이 삶으로 평소의 자기의 삶속에 나타나야 되는 것이지요. 베드로의 고백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엄청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다가 그 반대로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하는 엄청난 큰 저주를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 고백 그것은 관념이자 말장난이지요. 그것은 진정한 삶의 고백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첫사랑의 순간적인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쩌면 그 감정이 식어지면 그리고 다른 더 좋은 대상이 나타나면 그의 고백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막 8장 마지막에 보면 '나와 내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참 빛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던 인간이시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던 예수님. 30년의 생을 마치시고 3년간의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공생애를 마치시던 날. 그날은 그에게 어떤 날이었을까요? 그 십자가에 높이 달리어 계시면서 주님은 무엇을 생각하셨을까요? 태양도 밑을 잃어버린 그 시간 주님은 무엇을 그리워했을까요? 십자가 밑에서 욕하고 저주하는 로마 군병과 또한 수많은 무리들의 저주를 들으시면서 주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참사랑의 의미일 것입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십자가를 함께 끝까지 지고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말로 지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삶 전체로 지고 가는 자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모른다 하지 말고 그분과 함께 십자가도 같이 지고 부활도 경험합시다. 예수님, 십자가, 그 참사랑은 부활에 앞서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십자가에 친히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가 살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삶으로 보여주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나님 저희 학생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