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일어나십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을 한번 이상 가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열정을 맛보지 못하고 마감하는 분이 있는 반면 인생 전반에 걸쳐 열정 속에 살다가 마치는 분도 있다. 신앙생활하면서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이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신앙생활로 인해 헤퍼 보이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뜨거운 열정의 신앙을 아주 우아하게 멋있게 표출하는 분들이 있다.
성경에 열정 이란 단어가 구약과 신약에 각각 1회 씩 등장하는데 렘 51:39에 “열정(~h, 촘)이 일어날 때에 내가 연회를 베풀고” 즉 뜨거운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잔치를 배설한다는 뜻인데 뜨거운 열정이 어떤 상태이길래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것일까? 마치 집 나갔던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열정을 말하는 것일까?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사상에 따라 흘러가면서 정화되고 부흥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부흥은 교회 부흥의 개념이 아니라 작은 물줄기에서 큰 물줄기에 합류되어 점점 넓어지고 성숙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능수능란하게 전달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살전 2:17에도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evn pollh/| evpiqumi,a| 엔 폴레 에피뒤미아)으로 더욱 힘썼노라.”는 열정은 “많은 열정 안에 무엇을 동경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에피뒤미아는 다른 것에 대한 욕망(마 4:19) 영혼의 욕망(계 18:14) 욕심, 원한다. 정욕, 탐욕, 사욕, 욕망, 탐한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열정이란 영어 단어는 Enthusiasm인데 이 단어의 헬라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entheos (evnqeoj 엔데오스) ’하나님 안에서‘라는 뜻으로 하나님 안에서만이 진정한 열정이 나온다는 뜻이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활동해야 하는데 하나님 밖에 있으면 끊임없는 정욕과 욕심, 욕망과 탐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해서 그런 개인적인 사욕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심에 따라 움직이는 열정을 표출해 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가져야 할 뜨거운 열정이다. 이런 열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탐심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내 개인의 욕망에서 허덕이지 않는 것이다.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처음에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정에 따라 움직이다가 자신의 사리사욕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다. 마치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처럼 자기도 물 위에 걷기를 원했던 베드로가 무서운 파도에 놀라서 물에 빠졌다.
자신의 몸을 물 위에 맡겼다면 즉 하나님께 내 몸을 맡겼다면 그것을 의지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다른 것에 한 눈을 팔거나 위협적인 요소가 달라 든다고 무서워한다면 이미 하나님 안에 있어도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내 안에 하나님의 꿈틀거림이 일어난다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되는지 질문해야 되는 것이 만나를 먹는 것과 같다.
지난번에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하리케인 태풍을 조사하던 미국 공군 조종사가 하리케인의 실체를 알려고 태풍의 핵심인 태풍의 눈으로 들어갔더니 거기에는 바람도, 요동치는 천둥 번개도, 폭우도 없는 너무나 고요한 상황을 체험한 것을 간증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치 하나님의 품속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을 체험하는 것처럼 인생의 폭풍이 불고 내 삶을 위협하는 천둥번개가 쳐도 하나님 안에는 말할 수 없는 정숙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 주변에 무서운 돌풍이 불어 닥치고 집채 만한 파도가 내게 다가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한 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샬롬(평화)의 상태, 예수님의 멍에를 같이 진 상태, 평화와 멍에는 헬라어 단어의 뜻에서 같은 뜻으로 나타남(연결하다 to join)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요, 모세가 태어나 나일 강에 띄웠던 갈대상자가 바로 이런 상태인 것이다. 방주와 갈대상자의 발음도 뜻도 같은 상태인 “테바”라고 부른다.
초대교회 신앙인들이 이런 믿음을 가졌기에 사자들이 들끓는 원형경기장에 들어가도 십자가에 달려 초죽음을 당해도 샬롬이라고 서로 격려한 것이다. 또한 세계 1,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가스실에 들어가면서 샬롬이라고 인사한 것을 토대로 오늘날 현대 신앙인들이 각성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연결이 잘되어 있다면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고 이 상황을 통과하야 거기서 다시 만나자”는 뜻으로 샬롬이라고 했다면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당면된 문제에 봉착되지 말고 문제 안으로 들어가야 해답이 있다. 문제 근처에서만 맴돌지 말고 문제 깊숙이 들어가 해답의 본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애끓는 열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눈에 보이는 문자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문자를 사용하는 문자마저 비밀이 담겨 있으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은 그림을 찾듯이 퍼즐게임처럼 신비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신학교를 가기 전 성경을 읽다가 너무나 조선말기시대에 사용된 고어체로 문장이 되어 있어 쉽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라기를 쉬운 번역이 아닌 알기 쉬운 문장으로 고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끊임없는 열정 속에 이어져 온 것이 지금에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이 얼마나 귀한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하나님의 열심히 식어지지 않고 있다. 온전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욕심을 내가 갖고 싶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친다고 하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이제 겨우 알 수 있을 것 같다.(고전 9:12~19)
열정 속에 있는 많은 신앙인들이여!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뜨겁게 하나가 되어라.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테두리 안에서 마음껏 활보해라.
하나님 안에서 내 개인의 감정이나 사심들을 과감하게 버려라.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를 주신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 버려라.
내 안에서 부글부글 타오르는 하나님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라.
마치 화산이 폭발 하듯이 하나님의 열정이 무엇인지 간파해라.
내 의도대로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도하심대로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내 뜻이 반영되기를 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반영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해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도구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잡혀진 도구가 되어 사용되어지기만을 원해라.
하나님의 거룩한 욕심이 쉬지 않고 계속 일어나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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