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살아야 내가 삽니다
어제 저녁 한국을 방문 중인 사랑하는 아내와 통화를 했습니다. 통화를 하면서 나는 “당신이 없으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아이들 밥 해주고 학교 보내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다. 당신이 없으니 집안이 텅 빈 것 같다. 교회도 당신이 없으니 성도들이 풀이 죽은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와 통화하면서 “엄마가 없으니까 모든 것이 힘들다. 밥맛도 없다.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왠지 허전하다.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의도한 말들이었고 또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한국을 방문 중인 아내에게 나와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한국에 갔는데 잘 쉬고 올 수 있도록 “아이들과 나는 밥도 잘 해먹고, 아이들도 학교에 잘 가고, 교회도 평안하다. 그러니까 이곳 걱정은 하지 말고 편하게 쉬다가 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나와 아이들은 아내가 없어도 더 맛있는 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만 만들어 주니까, 그리고 엄마처럼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말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나 햄버거 등을 만들어 주니까 아이들은 더 좋아합니다. 나는 심방을 가지 않으면 거의 서재에서 나오지 않으니 아이들은 모처럼 집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 좋습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도 사랑의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듣지 않아 편합니다.
그런데도 나와 아이들이 엄마에게 죽는 소리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아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였고, 아내는 나를 못 믿겠다는 눈치를 보이며 시드니 공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한국에서 전화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세끼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잘 먹이고 있다. 학교도 잘 가고 있다. 당신 없이도 아이들과 나는 잘 지내고 있다. 그러니 편하게 있다가 오라.” 물론 아이들에게도 이와 비슷하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엄마가 없는데 아이들은 엄마를 보고 싶다고 해야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없으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가,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까 아내는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자신의 자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가 없어도 내가 아이들은 잘 데리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도 엄마 없이 아빠 손에 의해 학교에 잘 갈 것이고, 다시 말해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내가 없어도 집안은 잘 굴러 가는구나! 그렇다면 아내로서, 엄마로서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것에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었다는 것을 아내가 시드니로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자신과 이스라엘을 위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죽이기까지 했는데도 사울 왕은 다윗을 수없이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블레셋인 100명의 목숨을 요구하였는데 다윗은 오히려 200명의 목숨을 갖다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사울 왕은 두 번이나 단창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윗을 죽이기 위해 수많은 부하들을 보내기도 하며 직접 자신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한 이유도 사실은 사울 왕이 자신의 왕의 자리에 대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사울 왕이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불안감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갖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길에 모든 성마다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은 만 만이로다”(삼하18:7) 다시 말하면 사울 왕이 죽인 자는 천 명인데 다윗이 죽인 자는 만 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들은 사울 왕이 기분 좋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니 사울 왕은 이러다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의 자리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합니까?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상실 때문입니다. 나는 이 사회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고, 가정에서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고, 이러한 생각들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그것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혼란한 현 세대를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성도를, 이웃을 그들의 존재 가치로 인정해 주고 세워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상대방이 살아야 가정이 삽니다. 상대방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상대방이 살아야 사회가 삽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살아야 내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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