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하늘 Heaven's sky
세 번째 이야기
그로부터 2주가 흘렀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정은은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정은이 하는 모든 일이, 정은이 가는 모든 곳이, 잊자고 그토록 노력했던 성제에 관한 모든 일을 떠올리게 했다. 오늘도 어느 손님이 차가운 헤이즐넛에 설탕 하나를 주문했다. 성제가 그토록 좋아했던 커피였다. 향이 좋다면서 자기 방에도 헤이즐넛 향주머니를 걸어놓았었다.
단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쓰지 않게만 해달라며 항상 설탕을 하나만 받았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뜨거운 걸 잘 못 먹는 그는 냉커피로 마셨다. 여름방학 때, 더운 날이면 으레 여길 찾아와 냉커피를 마시고 정은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는 한 시간 쯤 죽치고 있다 나가곤 했다.
항상 손에 뭔가 먹을 걸 사들고 와서 가게 사람들 모두 좋아했다. 정은은 그 생각을 하고 있다 손님에게 헤이즐넛을 주는 것을 깜빡했다. 손님이 재촉을 하고 나서야 정은은 손님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고는 헤이즐넛 커피에 설탕 하나를 넣어주고 건네주었다.
잊으려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아직 2주일. 아무 것도 잊은 게 없었다. 잊으려고 할수록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날 뿐이었다.
성제도, 정현도 한번도 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 내심 그래도 얼굴을 비추기를 바랬던 두 사람이지만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성제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현까지!)
정은이는 정현이 괜히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속삭일 때는 언제고 말이지. 지쳐서 앉아서 냉장고에 기대 우울해하는 정은이에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은이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정은이를 찾았다. 정은이가 놀라 일어나보니 거기엔 아주 반가운 얼굴이 서 있었다.
“지…지훈아!”
“잘 지냈어? 집에도 안내려오고 말이지.”
“바빴지 뭐야. 어서 와, 뭐 마실래. 내가 살게.”
“뭘 사, 사긴. 알바주제에.”
“왜 이래, 그래도 힘 좀 있는 알바라구.”
정은이 팔을 들고 힘자랑 하듯 으쓱거리자 지훈은 하하하 웃어버렸다.
이지훈. 정은과 같은 나이.
정은과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꽤 잘생긴 얼굴에 속하는 정은의 소꿉친구이자 아주 오래된 이웃사촌이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교인 S대 법대에 다니는, 정은의 말로 표현하자면 ‘괴물’이다.
같이 공부를 해도 지훈은 전교 1등을 달렸지만 정은은 반에서 10등 이내에 겨우 들었다. 그래서 정은은 항상 지훈을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무시무시한 ‘엄마친구아들’의 포스를 옆집에서 아주 강력하게 느끼면서 자랐던 정은이었던 것이다.
“뭐야, 올 거면 미리 연락을 해주면 좋잖아.”
“서프라이즈다, 서프라이즈.”
지훈이 피식 웃자 정은도 웃어버렸다. 지훈은 정은의 카운터에 과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앗, 버터와플;;”
“너 이거 좋아하잖아. 오다가 보이길래 사왔어.”
“고마워, 지훈아~.”
울먹이는 정은을 보며 지훈은 씨익 웃었다.
“나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 먹을래.”
“그래, 잠깐만 기달….”
그 순간 지훈의 옆에 서는 남자. 정은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니까 그새 바람을 피우시는 건가?”
“다…당신은!;;;”
정현는 빙그레 웃었다.
“뭐야, 기억은 하네? 내 말은 기억 못하고 나만 기억나는 거예요?”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정현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하는데 정은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자니 옆에서 난감해진 지훈이 정은에게 물었다.
“…이 사람 아는 사람이야?”
“어.” - 정현
“아니야!” -정은
“그렇게 간단히 부정하지 마!;;” -정현
정현은 그렇다고 하고 정은은 아니라고 하자 정현은 바로 당황하면서 정은을 쳐다보며 쏘았다.
“그…그 때 도와준 건 고맙지만 이건 다른 일이에요.”
“어라? 다르지 않을 텐데?”
“다…달라요.”
지훈은 정현을 쳐다보다 정은에게 시선을 옮겼다. 정은은 애써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훈이 난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자 정은은 아앙- 하고 어깨를 수그렸다. 지훈은 피식 웃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요, 바람이라뇨?”
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현에게 묻자 정현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지훈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 정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은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본 지훈은 다시 정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쟤 남자친구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지훈아.”
정은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급하게 지훈을 불렀다. 지훈이 고개를 돌리자 정은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만해.”
정은의 표정이 자신이 알고 있는 표정에서 벗어나있는 걸 보고는 지훈은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헤어졌어?”
“그만하자.”
지훈은 한숨을 쉬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언제?”
지훈이 묻자 정은은 이마를 문질렀다. 그 옆에서 심드렁하게 정현이 대답했다.
“한 2주 전?”
“그걸 당신이 왜 알고 있는 겁니까?”
정현은 풉- 하고 웃었다.
“어떻게 알았냐가 아니라 이번엔 왜 알고 있느냐고 묻네.”
정현은 서글서글한 눈을 휘어가며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저 여자가 채일 때 내가 옆에 있었거든.”
“이봐요, 김정현씨.”
“그리고 바로 내가 걷어왔지.”
그 말에 지훈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새겨졌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정현을 쳐다보던 지훈은 고개를 돌려 정은을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뭐야, 이건. 언제 꼬인 거야?”
지훈이 어깨너머 정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정은이 피식 웃었다.
“어라, 어라. 이거라니?”
정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정은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2주전에. 그런 게 있었어. 하여튼 저 사람이랑 나는 사귀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어.”
“이젠 대놓고 아니라고 하시네.”
“네네.”
정은은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계산대 위에 놓았다. 그걸 정현이 가져가려고 하자 바로 지훈에게로 넘겨주었다.
“자, 먹어.”
“훗, 고맙다.”
정현은 알 수 없는 원망의 눈빛을 정은에게 쏘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정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정현을 쳐다보았고, 정현은 체- 하는 소리와 함께 ‘나도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하고 궁시렁거렸다. 정은은 ‘네네~.’하고 성의 없이 대답해주었다.
곧 정은이 커피를 만들어주자 정현은 받아들고는 뒤의 탁자에 앉고는 지훈과 정은이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빨대로 얼음과 커피를 휘휘 저어 한참 들이키던 정현은 정은이 환하게 웃으며 지훈의 말에 응대하자 결국 벌컥벌컥 마셔버리고는 다시 일어나 계산대로 다가가 계산대를 쾅! 하고 두드렸다. 놀란 정은이 ‘엄마 깜짝이야!’ 하고 돌아보자 정현은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 언제 끝나요?”
“왜요?”
“저번에 도와도 줬으니 밥이나 얻어먹을까 하고 있습니다. 아, 아니다. 저번에 내가 여기 와서 했던 말 기억나요? ‘정말로 차이면 내가 밥이라도 사 줄게요’라고 했던 말. 밥이나 같이 먹죠. 언제 끝나요?”
그 말에 정은은 콧방귀를 뀌었다.
“글쎄요, 아주 늦게 끝날 것 같은데. 폐점까지 있을 지도 몰라요.”
정현이 고개를 돌려 문가에 걸려있는 개점시간과 폐점시간에 시선을 두었다.
“밤 10시? 기다리면 되죠, 뭐.”
씨익 웃고는 정현은 지금 시간이 3시 반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정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0시. 도망가면 안되요.”
정은은 흥- 하고 대꾸했다. 지훈은 피식 웃었다. 정현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하면서 커피점을 나갔다. 지훈은 곧바로 다시 정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
“…성제오빠가 바람피우고 있었는데 그걸 저 사람이 봤다나봐.”
“뭐?”
지훈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놈이 바람을 피울 만큼 간이 큰 놈이었어? 왜 그걸 몰랐지?”
“그 얘긴 그만해. 이젠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걸 다 잊고 싶어.”
“…그래라.”
지훈은 빨대로 커피를 마시다가 아- 하고 미소를 지었다.
“게임을 해보는 건 어때?”
그 말에 정은이 놀란 표정으로 지훈을 쳐다보았다.
“워, 엄친아도 게임해?”
“뭐야, 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너 만큼 내 주변에서 엄친아 포스를 풍겨대는 애도 있어?”
그 말에 지훈은 피식 웃었다.
“시끄러. 너도 좀 열심히 하지 그랬어.”
“열심히는 했지. 근데 내가 너 같은 천재녀석이랑은 머리가 달라서. 근데 무슨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너도 해봐. 아, 나 수업시간 다 되어간다. 가볼게. 달라란으로 와!”
“뭐? 달나라?!;;;”
무슨 소린지 도통 알아듣지 못한 정은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달나라로 오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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